꽃기린 편지 - 아동문학가 이수경의 동화 같은 일상 이야기
이수경 지음 / 대경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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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만한 진돗개와 아파트 뒷길에서 마주쳤다. 중년 여성 견주가 앞으로 내달리려는 개 줄을 황급하게 감았고, 나는 잔뜩 수꿀해져 화단에 붙었다. 나도 강아지를 기르지만 대형견과 마주치니 위협적이었다.

개가 지나가길 기다리는데 바로 내 정강이 뒤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거칠고 울림통 깊은 크르릉 그르렁 소리...

엄마야! (-21-)

공동 현관 문이 열리기 전에 봉지에서 시루떡과 인절미 두 팩을 건네니 얼마나 놀라던지, 걸레를 든 채

"이걸 와 날 주오?"

라고 물었고,

"출출할 때 드세요! 떡을 많이 샀어요!"

웃으며 너스레를 떤 기억이 난다. (-55-)

오늘 차를 타고 가다가 차창 밖으로 수희를 봤다. 너무나 밝은 모습으로 다른 친구와 걸어가는 모습이었다. 누구나 자기립방에서 말을 한다. 내일은 오늘 들은 이야기를 리셋시킨 뒤 수희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입장이 돼 보지 않고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편견은 나도 죽이고 상대도 죽이는 일이니까. (-87-)

우리 동네에 허름한 세차장이 있다. 심한 당뇨에 머리카락이 듬성듬성한 남은 지긋한 아저씨가 주인이자 직원이다. 나는 고객이라고 할 것도 없다. 일년에 두 어 번, 세차를 맡기는 게 고작이니 말이다.

주행거리 24만 킬로미터가 되는 낡삭은 차, 명절 즈음이나 찾는데도 아저씨는 그때마다 살갑다.

칠이 벗겨진 곳도 색깔 맞는 페인트로 칠해주며

"그냥 두면 녹슬어요. 언제든 부담갖지 말고 오세요. 칠해드릴게요." (-102-)

"우리도 사실 집에 가고 싶어요. 이 추운 날 운동장에서 떨고 싶겠어요? 집에 가도 아무도 없으니까 마음 맞는 친구들 만나는 거예요. 친구들은 내 고민 다 들어주잖아요. 아빠나 엄마나 다 우리를 위해서 돈 번다고 하지만 우리는 아빠 엄마가 집에 있는 따뜻한 집을 원해요.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고민해 주고..."

여학생이 추운지 자꾸 코를 훌적이며 조용조용히 속마음을 내 비쳤다. (-172-)

밤 열시가 조금 넘어 마트에 갔다.

1층 시식 코너를 지나는데 얼른 검지만한 커다란 햄을 이쑤시개에 끼운 채 돌아서는 아이가 있었다. 이제 막 학원에서 나왔는지 묵직한 가방을 메고 있었다. 한참 배고플 시간, 햄을 든 아이의 표정이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저렇게 큰 햄을 시식으로 내놓았을 리느 없었다. 시식은 말 그대로 맛보기다. (-227-)

아동문학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책으로서, 부드럽고, 순화된 문장이 쓰여질 때가 있다. 자극적적이고, 불편한 단어 대신 자연과 일상, 위로와 치유가 되는 단어들이 필요하다. 아동문학의 본질은 아이들에게 교육이자 교훈이어서다.

아동 문학 저서를 다수 쓴 이수경 작가의 『꽃기린 편지』 는 우리 일상을 깊이 이해하고자 한다.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고, 내 이웃, 내 가까운 곳에 생겨나는 생활의 모습 속에 너무나 당연해서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이야기에 감동과 진정성을 찾아내고 있었다. 흔하게 쓰여지지 않는 우리말을 본문에 적어놓고 있으며, 가댁질, 각다귀판, 갈바래질, 감물다 등등의 우리말에 대한 이해를 도모한다.

우리 삶은 생로병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삶의 변화 속에서, 놓치고 있는 것이 너무 많았다. 일상속에서, 그리움, 미안함,고마움, 오지랖,어리광, 나눔, 너그러움이 필요하다는 걸, 『꽃기린 편지』에서 느낄 수 있다. 사랑이 희망이 되는 순간을 많이 만들어 내는 것,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 가 우리에게 필요한 소중한 미덕이다. 물질적인 풍요로움으로 인해 진부하고, 낡은 것을 버려두는 삶이 우리 스스로 탐욕과 집착,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책에서 절망을 희망으로, 텃밭에 마음이라는 씨앗을 소소하게 뿌려서,함께 나누는 마음의 공동체가 필요한 이유, 돈으로 대체할 수 없는 우리에게 필요한 사랑의 가치에 대해서, 소소한 의미와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따스한 온정이 느껴지는 『꽃기린 편지』에서, 개울가에 빨래를 하며,일상속의 경험과 삶을 주고 받는 여인이 상상되는 이유가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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