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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의 크레이터 - 교유서가 소설 ㅣ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정남일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평점 :
한 침대를 쓰면서부터 세리에 관한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리의 잠버릇이나 살 냄새,성감대 등이 그랬다. 배꼽 밑에 두 개가 나란히 있다는 것도 얼마 전에 새로 알았다. 세리와 십 년을 넘게 알고 지냈지만, 같이 살게 된 하 달 조금 넘는 시간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세리의 모든 걸 알고 싶었다. 세리 역시 이런저런 사소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걸 좋아했다. 나는 그런 세리를 보며 행복이 이런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어젯밤 세리와 나눈 대화는 오피스텔에 들어온 게 후회될 만큼 충격적이었다. (-13-)
세리의 긴 설명을 드는 사이 초계분지에 도착했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운 뒤 세리를 쳐다보았다. 세리는 곧장 차에서 내렸다. 나는 세리를 따라 차에서 내리며 주변을 살폈다. 그 흔한 가로등 하나 없었다. 만약 차 전조등을 끈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거 같았다. 세리는 전조등 불빛에 의지해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나는 세리를 따라 걸으며 물었다.
"초계분지에 와보니까 어때?" (-23-)
옆집 남자와 처음 만난 건 며칠 전 아침, 엘리베이터 안이었다. 그 남자의 첫인상은 상당히 강렬했다. 곰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체구의 흑인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건 그가 행크와 닮았다는 거였다. 한때 유명한 격투기 선수였던 행크는 링 위의 야수, 그 자체였다. 또한 별명에 걸맞은 격투 스타일로 많은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상대방을 쓰러뜨려 눕힌 뒤 그 위에 올라타 주먹을 내리꽂는 모습은 지금도 잊기 어려웠다. (-39-)
민정은 곧바로 나에게 어디냐고 물었다. 나는 잠깐 아파트 단지를 산책 중이라고 대답했다. 민정은 집회에 가기 싫어 도망간 줄 알았다며 웃었다. 나는 집회 이야기를 듣자,이상하리만큼 짜증이 치밀었다.민정에게 집회 이야기 좀 그만할 수 없겠느냐고 되물었다. 민정 또한 목소리를 바꾸고 말했다. "그거 알아? 집회 이야기만 나오면 오빠가 나 집 값에 미친 년 보듯이 행동하는 거? 왜 그래? 우리 집이야. 우리 집 !" (-64-)
경기문화잭단 선장작 중 한 편으로, 소설 한권을 읽게 되었다. 100페이지 정도의, 소설로 치면 가볍게 느껴지는 . 정남일 작가의 『세리의 크레이터』 에는 「세리의 크레이터」,「옆집에 행크가 산다」 이 두 편의 단편과 뒷 부분에는 작가의 해설이 첨부되고 있었다.
첫번 째 이야기 「세리의 크레이터」 에는 주인공 세리가 등장하고 있었다. 세리의 이름은 소행성 세레스에 따온 이름으로서, 세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신이 태어난 날 운석이 떨어졌다고 세리 엄마가 말했기 때문이다. 미혼모의 딸로 태어난 세리는 또다른 주인공 남친과 함께 동거하게 되었으며, 임신하게 된다. 아이를 가지겠다는 세리와 반대의 입장을 보여주는 세리의 남친을 보면, 우리 사회가 생명에 대해서, 여전히 편견과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노골적인 언어 폭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재확인하게 된다. 둘은 초계분지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으며, 세리의 마음 속 복잡한 심경이 오롯이 느껴진다.
두번 째 이야기 「옆집에 행크가 산다」 이다. 이 소설은 내 옆집에 덩치 큰 흑인 행크와 닮은 남자가 산다는 것을 어필하고 있었다. 남편은 격투기 선수 행크에 대해서, 관심 가지고 있었지만, 민정은 행크에 대해 그닥 관심이 없다. 단 소설에서 민정은 집회시위에 뛰어들게 되는데, 그 이유는 개발,부동산 ,내집 관련 문제 때문이다. 즉 환경파괴 문제로 인해 내 집에 대한 자산, 권리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불안에 사로 잡혀 있었던 민정은 남편의 생각에 밍숭밍숭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두 편의 소설은 우리가 생각하는 인연과 소통, 갈등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일이나 사건이 일어날 때, 그 사건에 대해서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그 다름이 서로 갈등으로 표출되고, 너의 선택과 가까운 사람이 선택에 따라 달라질 때, 여러가지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그럴 떄, 우리 앞에 필요한 것은 소통과 이해,공감이며,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매개체가 필요하다. 스쳐지나가는 인연은 한순간에 생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