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장의사의 일기
아오키 신몬 지음, 조양욱 옮김 / 문학세계사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의사라고 하는 이의 성격상 그동안 다른 사람이 하던 염습과 입관 작업을 제법 자주 보아왔다. 그러나 막상 내가 직접하자니까 땀범벅이 된 채 좀처럼 일이 진척되지 않았다.시신의 팔이 딱딱하게 굳어 있어서 수의 소매에 잘 끼워지지가 않는다. 시신을 끌어안아 올리듯이 하지 않으면 수의의 끈을 아래로 돌려 묶을 수가 없다. (-12-)

그러나 어젯밤 아내가 외친 '더럽다'는 말에서는 날카로운 칼로 푹 찔린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말 한마디에 충격과 분노를 느꼈다는 것은, 자신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을 건드렸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평소 내심 신경이 쓰이던 것을 누군가가 드러내놓고 비난할 경우, 피가 거꾸로 치솟을 만큰 분노를 느끼기 마련이다.

특히 인간 존재의 심연을 도려내는 것 같은 언어의 경우 가장 격심한 반응을 드러내게 된다. 그것은 숭고한 '사상'이나 '말씀'이 아니라 신체의 일부가 되어 버린, 민족과 부족의 사회 통념에 뿌리를 둔 '비속어 언어'의 경우가 많다. 그 한 마디에 의해 때로는 살인이나 전쟁으로까지 발전하는 일마저 있다. (-40-)

다카이 준은 태평양 전쟁 패전 직후 폐결핵으로 죽음의 문턱에까지 갔었고 , 10년 세월이 흐르고 나서 암으로 다시 죽음을 기다리는 지경이 되었다.

내가 10년 동안 죽음을 지켜보며 살아왔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의 죽음이었다. 내 스스로가 죽음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지는 않았던 것이다. (-103-)

하지만, 숱한 사람들을 죽음과 직면시키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전쟁이다. 단지 전쟁에는 수많은 사람이 참가하는지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만은 살아남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은근히 품게 된다. 실제로 치명적인 총탐에 맞아 숨을 거두기 직전이 아니면 빛의 현상을 대하지 못한다. 오히려 총탄이 날아다니는 전쟁터보다 패주하던 미얀마 전선이나 시베리아 수용소, 아우슈비츠 수용소 쪽이 더 스스로의 죽음을 인식하고, 거기서 처음으로 죽음과 직면하게 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죽음에 직면한다는 뜻은, 죽음에 관해 생각한다든지 고뇌하는 정도의 레벨이 아니다. 인간 존재 전체가 죽음을 수용할지 말지 결단에 내몰리는 순간을 말하는 것이다. (-144-)

사진 아래에 조오다넬 씨의 설명이 곁들여져 있었다.

"이 소년은 동생의 시신을 업고 임시 화장장을 찾아왔다. 그리고동종생의 조그만 시신을 등에서 내린 다음 화장용의 뜨거운 잿더미 위에 놓았다. 소년은 군인처럼 똑바로 서서 턱을 잡아당겼으며, 결코 아래쪽을 내려다보려 하지 않았다. 오직 꽉 앙다문 입술이 자신의 심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화장이 끝나자 소년은 조용히 발걸음을 돌리고 떠나갔다."

자신 설명문을 읽는 사이에 내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197-)

근원적 현상을 대하면 감각적인 사람들은 경탄에 빠져들고,지성적인 사람들은 가장 고귀한 것을 가장 비속한 것과 연결지어 이해한 것으로 여기려든다. -괴테 『잠언과 성찰 』 (-221-)

죽음과 가까운 일,시신을 접하는 장의사가 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죽음앞에서 경건해지며, 어떤 사건이 일어난 그 장소에 직접 가기도 한다. 지하철에 치인 어떤 사람,형체조차 남지 않는 시신의 뼈조각 하나하나 담아내고, 흔적을 조심스럽게 쓸어서 담아내고 있을 때,그 느낌은, 그 감정은 장의사 밖에 알 수 없을 것이다. 삶, 그리고 죽음에 직면한다는 것은 전쟁 혹은 삶의 마지막 끝자락에 서 있을 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조용히 죽음을 응시하고,조용히 분노하고,슬퍼하는 이유다.

슬프믈 마주하는 장의사도 분노를 한다. 내 직업에 대한 경건함,숭고함이 무시될 때,그러한 상황에 대해서 분노한다. 누구도 대신하기 힘든 시신과 마주하는 순간, 누가 보든지 자신의 약할에 충실할 뿐이다.그래서 항상 조심하고, 항상 깔끔하게, 살아가려고 애를 쓰게 된다. 죽음과 시신은 사람을 겸손하게 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이 되고 있었다.

사람은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 어린 아이가 시신을 옮길 때,그 순간 어른이 보는 시선은 조심스럽다. 삶에 대해서,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음을 몸으로 느끼는 순간이다.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을,자신의 역할에 충실함으로서, 죽음에 애해서,자신이 해야 할 마땅한 의무와 책임을 하게 된다. 삶은 그런 것이다. 장의사가 건넨 말의 무게감,그 무게가 우리 삶의 무게이며, 죽음에서 얻는 성찰이자 잠언이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부끄러움과 마주하는 이유였다. 장의사의 일기 속 소소한 일상이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