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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산의 미화원
장수정 지음 / 로에스미디어 / 2022년 12월
평점 :


남편은 경찰이다.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지구대에 근무한다.
한주의 기억으로 남편은 화를 낸 적이 없다. 살갑게 말을 주고 받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빈말은 하지 않는다. 술김에 내뱉은 말도 반드시 지킨다. 아니, 술김에라도 빈말은 내뱉지 않는다는 게 맞다. 그가 좌파인지 우파인지, 주식계좌에 얼마가 있는지, 아니 주식을 하기는 하는지 10년을 같이 살고도 모른다. (-11-)
물론,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바람을 피운 한주도 부부의 도리라는 측면에서는 할말이 없지만 말이다. 아무튼 신발 없이 쫓겨나는 것보다는 홀라당 속옷까지 뺏겨 알몸으로 쫓겨나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13-)
직업상 남편은 사체를 접할 일이 많다. 사체를 접하는 빈도도 잦았거니와 교통사고나 추락 또는 오래 방치된 주검처럼 그 형상이 참혹하다 못해 사람인지 짐승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경우와 맞닥뜨려야 하는 순간도 많았다. (-16-)
그러자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몸이 달아, 앉은 채로 허리를 비틀기도 하고 힘주어 앞좌석 손잡이를 잡았다 놓았다도 하고, 이쪽저쪽 연신 다리를 바꿔가며 꼬게도 되었다. 여자의 몸을 아는 노련한 남자가 버스 뒷좌석에 앉아 한주를 지켜봤다면 필시 한주가 욕망으로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으리라 소소한 쾌락의 파도가 더 큰 파도로 이어져 마침내 버스 안에서 절정을 맞이하는 파국만은 막기 위해 한주는 등받이에서 등을 떼고 허리는 꼿꼿이 세웠다. (-53-)
석영은 한주가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듯 양손으로 한주의 뺨을 꼬집고 거칠게 한주의 상의를 걷어 위로 올렸다. 그리고 허겁지겁 한주의 젖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석영의 따뜻한 혀가 젖꼭지에 닿자 한주은 다시 뜨거워져 석영의 허벅지 위로 허겁지겁 기어 올라갔다. 석영의 입에 잦가슴을 물리며 다급히 석영의 바지 단추를 푸는데 갑자기 석영이, (-138-)
'아림이한테 더럽고 부끄러운 엄마로 남지 않는 방법은 이것 뿐이다.'
다시 문자가 오자 이내 날카로워져서 한주는 되물었다.
'내가 더럽고 부끄러운 엄마,라는 건 당신 생각이야 아림이 생각이야?'
한 시간이 지나도록 그러나 남편에게서는 더 이상의 문자는 오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봐야 받지 않을 것이다. (-261-)
소설 『그 산의 미화원』은 소설 표지나 제목과 이질적인 스토리가 반영되고 있다. 주인공 한주는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그런 엄마였다.더럽고 부끄러운 엄마가 바로 한주의 본모습이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딸로서,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성관계, 성 생활 뿐이었다. 마치 자신이 남자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 태어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마음에 드는남자에게 쉽게 몸을 허락하고 있었다. 본인 스스로 화양년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은 막장이지만 , 결말은 막장이 아니다. 소설에서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작가는 여성으로서, 남녀간의 성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꼽씹어 보게 된다. 오로지 이 소설을 한주의 남자에 대한 탐닉으로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단, 여성이라면 우리 사회가 만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남자만 타락하는 게 아니라 여자도 타락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런지. 한주의 사회적 통념에 맞서서 ,본인 스스로 흔들리는 심리적인 입장이 자세하게 묘사되고 있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여전히 여성에게 엄격한 태도를 보여줄 때가 많다. 특히 아이를 가진 엄마라면 선을 넘어서는 안된다는 것, 남편이 건실한 가장이면서, 번듯한 직장을 가진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한 사회가 만든 편견에 대해서,도전장을 던진 소설이 바로 『그 산의 미화원』이다. 한주가 보여주는 성에 대한 입장,이성보다 본성을 탐닉함으로서, 현실이 해갈해 주지 못하는 것을 남자의 몸을 탐하면서 얻고자 하였다. 그것에 대해서, 한주의 잘못으로만 덮어씌우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한주의 몸을 필요로 하는 남자, 즉 성에 대한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에, 한주가 그것을 ,남자의 몸을 이용할 수 있었던 거다. 죽고 싶어서 선택한 산으로 향한 그 길, 마치 한주에게 산이란 지옥에서, 천국을 가기 위한 연옥의 문이 아니었을런지,산에서, 자신의 습관에 대해서, 총을 들어서라도 한주의 잘못을 덮으려 했던 남편은 자신이 지키고자 하였던 사회적 명예의 본질이 무엇인지 재확인시켜 주고 있었다. 한주에게, 여자로서, 아내로서의 역할 보다는 여자로서의 자신의 권리를 더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