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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립 사이드
제임스 베일리 지음, 서현정 옮김 / 청미래 / 2022년 12월
평점 :




그런데 나는 기다리지 않았다.
만약 제이드가 빅벤이나 크리스토퍼 렌이 설계한 바로크풍 건축들, 아니면 런던의 현대적인 도시 풍경을 보고 있었다면 청혼을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나와 결혼해줄래?'라는 운명적인 말을 내뱉었을 때, 하필 우리는 런던 감옥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제이드는 피투성이 광고판보다 내 청혼을 더 두려워했다.
"아니, 조시, 싫어." 제이드는 소름 끼칠 정도로 무표정한 얼굴로 내 눈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사랑해야 하는 남자, 같이 사는 남자가 아니라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인 듯이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13-)
아직 아침 9시고 안 되었는데 나는 잠기 깬 뒤로 벌써 17번이나 동전을 던졌다.
앞.일어나 , 꾸물거리고 누워 있지 말고. 윽, 싫다.
뒤. 몸 담그는 목욕 말고 대충 샤워만.
뒤. 치노 면바지 말고 청바지.
뒤. 죽 말고 달달한 시리얼.
앞. 사과 말고 오렌지 주스.
동전 던지기는 금방 익숙해졌다. (-50-)
할아버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나는 페이스트리를 마저 먹었다.
"어떻게 할머니 마음을 사로잡으신 거예요?" 내가 물었다.
"네 할머니가 마을 회관에서 춤을 배웠어. 나는 거기서 오르간 연주를 했고, 매주 연주를 하면서 네 할머니가 춤추는 걸 지켜봤지. 그리고 매번 수업이 끝날 때마다 네 할머니한테 언제 같이 춤을 추자고 청했단다. 결국 네 할머니가 내 청을 받아주었고, 나는 우리가 평생 함께 품을 출 거라는 걸 알았어."할아버지는 식물을 들고 돌아오는 할머니와 엄마를 쳐다보았다.(-179-)
"돋보기는 왜 가지고 왔어요?" 만난지 12시간도 채 안 되는 사람치고는 지나치게 다정하게 포옹하며 반기는 그녀에게 나는 신기해서 물었다. 그런데 같이 포옹을 하다가 나는 실수로 그녀의 모자를 떨어뜨렸다.
"탐정이라면 이렇게 입어야죠. 그쪽이 그렇게 입고 다닌니까 그 사람을 아직 못 찾은 거라고요." 에바가 내 청바지를 손으로 가리켰다. 나는 며칠 전부터 입었던 검은색 청바지에 후드 티셔츠 차림이었다.
"우리가 서점 몇 군데 들러서 내가 찾은 사람이 그곳에서 일하는지 아닌지만 확인하면 된다는 거 알고 있죠?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게 아니고요?" (-242-)
생수 하나를 고를 때도 동전을 던져 결정하는 내 입장에서는 종교를 선택하는 것은 결정 능력 밖의 일이다. 우리 가족을 보자면 언제나 일년에 두 번은 기독교인이 된다. 그래서 예수님 생일과 부활을 축하하지만 그외의 날들은 단 한순간도 예수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아빠는 이 두 번의 미사 때도 찬송가 가사를 축구 응원 구호로 바꿔 불렀고, 지방 의회가 임명한 "신이 벌 주셔야 마땅할"주차 단속 요원이 너무 열정이 넘쳐서 교회밖에 있는 이중 노란 선 안에 주차한 차들을 견인해가기 시작하자 그걸 핑계로 미사에 참석하지 라자고 했다. (-262-)
다들 이미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의 장례식을 알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이웃들에게 전화를 하자 다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보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살아계셨다는 사실에 더 놀라는 것 같았다. 심지어 자신이 할아버지 장례식에 참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예를 들면, 빅스 부인은 할아버지의 사망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고 자신 있게 우기기까지 했다. 결국에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사실을 받아들이며 '그분이 많이 그리울 거예요.'라며 말할 때도 그다지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1990년대 , 일요일 일요일밤에 의 한 코너였던 『 TV인생극장 』 이 있었다. 그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개그맨 이휘재였으며, 그가 『그래 ! 결심했어! 』 라는 멘트 하나로 자신의 도덕적 선택 하나가 인생을 결정하게 되는 상황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 대해서, 두가지 이상의 선택이 주어졌을 때,어떤 선택의 결과가 후회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리얼함을 예능에서 보여준다.이런 경우를 우리는 내 인생을 가지고 동전던지기를 하는 것으로 본다.
제임스 베일리의 로맨스 『플립 사이드』의 주인공은 이십대 조시다. 조시는 경혼을 약속한 배필이자 여자친구인 제이드가 있었다. 어느날 청혼하기로 하였던 결혼 준비, 사랑의 세레나데를 원하였던 조시는 , 제이드의 단호한 거절로 인생이 바뀌고 말았다 .여자친구도 놓치고, 직업도 잃어버리고,당장 살 곳도 없는 최악의 상황에 놓여진 조시는, 공교롭게도 그 순간에 동전 던지기를 하게 된다. 이휘재가 동전 던지기를 하는 것과 달리, 조시는 모든 선택을 동전 던지기로 선택과 결정, 판단을 하게 된다. 무엇을 먹고, 어디로 갈 것인지,어떤 옷을 입을 것인지, 등등 모든 것이 동전 던지기다. 하루 18번의 동전던지기는 이휘재를 울릴 정도다.
여기서 조시는 조금씩 인생이 바뀌게 된다.계획된 삶은 계획이 어그러지면 큰 상처를 받게 된다. 그러나 동전던지기는 운이며, 즉흥적인 선택이다. 실패해도, 그 실패에 대해 상처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동전을 던졌기 때문이다. 인간의 뜻이 아닌 신의 뜻이기 때문이다. 물론 성공도 신의 뜻이기 때문에,크게 기뻐하지 않아도 된다. 소설 『플립 사이드』은 그래서 역설적이다.
계획된 삶도 후회가 된다면, 즉흥적으로 살아도 후회가 될 수 있다. 차라리 후회를 덜어내기로 함으로서, 우연적인 일이 반복되고, 새로운 여자 친구를 만날 수 있다. 즉 조시는 비로소 전 여자친구였던 제이드에 대한 상처를 털어낼 수 있게 된다.물론 그 과정에서 할아버지의 지혜가 큰 도움이 되었다. 삶에 대해서,크게 의식하지 않아도, 내 삶을 행복할 수 있으며, 실패하더라도 그 실패를 긍정하게 된다. 상황은 바뀌진 않았지만, 행동과 생각이 바뀜으로서, 기회가 늘어나고, 운이 커지게 된다. 그것이 바로 조시의 삶이면서, 인생이 될 수 있다.그리고 이 소설은 우리 앞에 어떤 심각한 상황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그 상황에서 동전던지기 하듯 가벼이 다룬다면,내가 생각치도 못한 좋은 일이 얼마든지 생길 수 있음을 소설이 말하고 있었다. 운며은 계획된대로 바뀌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독특한 로맨스 코미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