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기원, 단일하든 다채롭든 - 상상과 과학의 경계에서 찾아가는 한민족의 흔적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10
강인욱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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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의 가장 주요한 용도는 바로 제사였다. 이는 고대에 무기보다 더 강력한 기능이었다. 고려시대의 제사라고 하면 대부분 가장 면저 청동거울을 떠올릴 것이다. 그중에서도 혹 다뉴세문경이라는 유물을 본 적이 있는가? 아름답고 세밀한 잔무늬가 특징은 이 거울은 세형동검과 함께 2,300 년 전부터 남한 전역에 만들기 시작했다. (-59-)

따라서 금관이 등장하기까지는 다른 나라의 발전된 문명이 신라로 유입되고, 기술이 발달하는 등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또한 금은 신라가 중앙집권 국가로 발전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금이 어떻게 단순히 장신구 이상의 가치를 뛰어넘어 사회와 국가를 아우르는 상징물이 되었는지 지금부터 자세히 살펴보자. (-97-)

환동해는 정확히 말하자면 북한의 남쪽, 일본의 서쪽, 중국의 동북부,러시아의 극동아 감싸고 있는 동해 권역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위의 지도를 보자.

흔히 북방이라고 하면 고조선이나 만주 초원을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백두대간의 동쪽에서 연해주까지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는 동해안 일대 역시 우리가 잊어어린 우리 역사의 반쪽인 셈이다. 이 지여에서 떠오르는 나라가 있는가? 북한과 대한민국의 동해안을 따라서 이어지는 지역에는 어떤 국가가 자리했을까? (-142-)

고고학에서는 자체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물의 발견 과정, 유물 주변 상태, 유물이 놓인 위치 등 여러가지 맥락에 따라 유추하는 것도 필요하다. 마치 범죄현장을 수사하는 경찰관처럼 사소한 부분도 놓치지 말고 세세하게 봐야 한다. 대부분의 정보는 다 현장에 있다.(-190-)

북방 유라시아의 사람들의 선진적인 기술과 기마술은 당연히 한반도와 일본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수천 또는 수만 명의 기마인들이 험준한 산지를 뚫고 내려와 정권을 바꿨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나아가 일본이 주장하는 기마민족설의 핵심은 기마민족의 도래가 아니라 일본이 삼국시대에 한반도를 정복할 정도로 강력한 국가라는 환상을 심어주려는 데에 있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한국과 만주를 점령하며 아시아에서 벗어나 '탈아입구 脫亞入欧'하고자 했다. 기마민족설은 바로 자신들은 토착 동아시아인이 아니라고 하는 억지 주장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250-)

반만년 한반도의 역사의 출발은 단군왕검이 세운 고조선이다. 기원전 2333년경 단군왕검에 의해 세워진 고조선은 중국의 몇 나라에 의해 쇠퇴기를 거치게 되었고,그 과정에서 몇 부족국가가 생겨나고, 백제,신라, 고구려 , 세나라로 재편되었으며, 서서히 한반ㄷ의 여러개로 쪼개진 부족국가는 서서히 중앙집권적 국가의 기틀을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천천히 본다면, 고조선에 대해 재해석하게 되며, 저자의 전공인 고고학이 우리 삶의 기원을 밝히는데 어떤 역할을 하고자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신석기를 지나 청동기 시대로 접어드는 과정에서,우리 삶을 엿볼 수 있는 주요한 유적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고고학이 어떻게 역사의 퍼즐을 맞춰가는지,역사와 선사시대에 대한 이해는 우리의 문화와 정치, 언어와 민족에 대한 고취를 돕고 있다.

신라에 대해서 흉노의 후예라고 말한다면, 그 근거가 분명해야 한다. 백제가 옥저,부여의 후손이라고 말할 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유적이 ,유물이 어떤 국가와 연결될 때,그 유적과 유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살펴봐야 한다.그리고 문화유산은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주변으로 확산된다. 그리고 유물이 만들어진 목적, 세워진 이유에 대해 언급하는 과정 속에서, 한 국가의 리더는 어떻게 국가를 다스리고,국가의 생멸과 함께 , 개개인이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한걸음한걸음 앞서 나갈 수 있었으며, 잊혀진 역사, 언급하지 않는 역사, 놓치고 있는 역사까지,차곡차곡 동시에 아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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