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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얹힌 거야 - 담도암이 가르쳐 준 불행의 소화법
황영준 지음 / 위시라이프 / 2022년 11월
평점 :
돌이켜 보니 그 순간 담낭을 떼어내신 어머니가 떠올랐던 것이 아닌가 싶다. 어머니는 1년 전 담당을 떼어내셨다. 정말 별일 아닌라며 수술을 다 마치고 퇴원하신 뒤에 통보하듯 말씀해 주셨다. 그래서 정말 그런 줄 알았다. 쓸개가 떼어내도 아무 이상 없는 장기구나, 맹장 같은 존재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 생각이 바뀐 건 명절에 어머니를 실제로 뵙고 난 뒤부터였다. 어머니는 식사를 예전처럼 많이 하시지도 못했고,연신 트림을 하며 불편해하셨다. 덕분에 식사 후 한참을 걷는 건강한 습관이 생겼다며 애써 웃으셨지만, 몸에서 자꾸 하나씩 덜어내시는 어머니가 애잔해 기억에 남았나 보다. (-19-)
시람마다 각기 정량이 다르다. 암을 겪어보니 그 가상의 정상인 1인분 기준에 나를 끼워 맞춰야 할 앞일이 끔찍하다. 난 정상인이 해내는 야근도 못할 것이고, 아드레날린 뿜어가며 빠릿빠릿하게 일을 할 자신도 없다. 그래서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월급 좀 덜받아도 좋으니 반인분만 일을 달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반만 받으면 생활에 타격이 오려나? 그럼 2/3 인분이라도 .정상이란 개념 없이 반푼이 취급받거나 자존감 갂아가며 살지 않고 당당히 '제 몫' 만큼 일하고 대접받을 수 있을 텐데., (-112-)
만남과 이별
항암을 마치고 나니 사람들이 보고 싶었다.
새로운 이를 만나 힘을 얻기도 했지만,
대개는 그리운 이들을 만났다.
언젠가 찾아올 이별을 가깝게 생각해 보고 나니
만남이 각별해졌다. (-171-)
선배가 지키는 유익한 삶의 규칙 몇 소절은 통째로 일기에 옮겨담고 싶었다.
1.사는 목적은 나를 잘 돌보는 것이다. 이기적인 개인이 그저 소비할 때만 웰빙 운운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다.
2. 일기를 쓸 땐 형용사와 부사를 절제하며 간결하게, 그날의 부풀었던 감정도 같이 제어하는 데 도움이 된다.
3.배려할 줄 아는 사람과의 만남은 피곤하지 않다는 것. 다음 만남이 더 기대된다는 것.,그리고 그와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때문에 내 삶도 그 격에 맞게 노력하게 된다는 점. (-174-)
아내는 나보다 훨씬 애를 덜 쓰고 더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 같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면 해결책을 바로 궁리한다.인터넷 찾아보고, 알만한 사람에게 전화도 해보고, 이걸 해보자, 이런 장비를 사보자, 야단법석이가. 아내는 무슨 일이 발생해도 우선 지켜본다. 지금은 좀 불편해고 얼마 후면 아무 일도 아니게 된다며. 물론 , 아들이 진짜 아프거나 하는 위기상황은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다. 평소에도 아내 자랑하는 팔불출이지만, 이런 아내가 참 신기하다. (-201-)
사십 대에 암이 걸리는 건 흔하지 않다. 하지만 저자는 담도암에 걸리고 말았다. 책 제목 『마음이 얹힌 거야』에서, 앉힌다는 것의 의미는 , 소화가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담도암에 걸리게 되면, 더부룩하고, 소화가 되지 않는 상태에 놓여지게 된다. 중요한 것은 암에 대한 병상일기가 내 삶에 어떤 변화를 줄것인가에 대해서다.병을 견디면서, 이해하고, 연민을 느끼고, 공감과 아픔을 느낄 수 있다.
나의 외숙모 또한 아파서, 세상을 떠나셨다. 외숙모께서 오던 날이 8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어제에 일어난 것처럼 또력하게 기억되고 있다. 즉 아픔이 나 혼자에게 남아 있지 않는다. 아픔은 같이 느끼게 된다. 저자는 담도암이 걸리면서, 어머니를 떠올렸다.담담하게 암을 이겨냈던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을 느낀 것이다. 이 대목에서, 암이나 불치병이 내 주변에 흔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남의 일처럼 무감각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래서다.
동앗줄을 잡고 싶었을 것이다. 삶을 이어나가고 싶었을 것이다. 병앞에 장사 없다고 누군가 말한 적 있었다. 암이라는 무서운 질병 앞에서, 우리는 슬픔과 아픔 속에서 견디며 지내야 한다. 죽음 앞에서, 암에 걸린 순간에 다음으로 미루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내 앞에 놓여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다. 인간관계를 비우고, 물건을 정리하고, 건강할 때 꼭 해야할 것과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것이 분명해진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내와 가족을 위해서, 해야 할 것이 분명해지면, 망설여지지 않는다.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이며, 나의 선택과 결정 하나하나가 남겨진 가족에게 후회와 죄책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슬픔 속에서, 눈물을 감추고 냉정해진다. 즉 누군가의 병상일기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대해 소중히 여기는 것, 원칙과 선택, 남아 있는 시간동안 삶의 지혜로움, 남겨진 이들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삶을 견디는 것도 중요하지만, 만남과 이별애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볼여지가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