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언니 시점 - 삐뚤어진 세상, 똑부러지게 산다
김지혜 외 14인 지음 / 파람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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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를 다쳤어요."

라며 가운뎃손가락 들어 보이면서 짐짓 모르는 척 '엿 먹일 수 있었다는 거였다. (아니, 그런 심오한 방법이 있는 줄 왜 몰랐던가). 역시 가운뎃손가락을 다칠 걸.맘에 안드는 인간한테는 모르는 척하면서 당당하게 가운뎃손가락을 날리고,내 사랑하는 노트북은 엄지 손가락으로 두들길 수 있었을 것을.

그러나 만사 역경이 닥쳐와도 얻는 것은 있는 법이다. (-16-)

흐음?

기분이 , 기분이 엿 같았다.

나는 한 마리의 젖소, 눈앞의 냉혈인은 목장 입장료도 안 낸 주제에 젖소를 구경하고 있다.수치스러웠다. 화도 났다. 더는 탐닉의 대상이 아닌 자기 아이를 먹일 젖가슴일 뿐이었다. 동시에 눈앞에 스물다섯의 팽팽한 가슴을 뽐내는 그 여자의 환영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P의 팔짱을 끼고선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이혼의 주체가 나로 바뀐 순간이었다. (-61-)

브래지어와 봉긋한 가슴에 대한 오랜 강박관념이 없어진 것은 독일에 온 뒤 부터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 여자들이 적지 않았다. 얇은 옷을 입을 수밖에 없는 여름철도 브래지어는 이곳 사회에서 선택사항이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다고 누가 문란하다고 평가하지도 않고, 처진 가슴이라고 비웃거나 흉측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없다. (-94-)

그녀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탄식했다. 오천 원 가지곤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집에 돈이 없느냐고 물었다.

800원이면 교내 식당에서 라면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나는 그 사람에게 되물었다. 왜 5천원으로 제사를 못 지낸다는 거냐. 제사상에 무얼 올리길래 돈이 그리 많이 든다는 거냐?그랬더니, 니 사람이 또 내게 벌컥 짜증을 부리지 않는가.나도 그만 짜증이 나고 말았다.에이씨! (-165-)

그래도 여전히 나는 글 쓰는 밤들이 참 좋다. 늦은 퇴근을 하고 늘 새벽이 다 되어서야 간신히 푸스름한 노트북 창 앞에 앉는다.나는 글쓰기를 사랑해! 나는 정말 네가 좋아! 혼자 고백하고 혼자 물드는 분홍빛 시간.그리고 그런 밤이 오면 ,그러니까 오늘 같은 밤이면,나와 같은 꿈을 꾸고 나와 같은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 자꾸자꾸 마래주고 싶다.

"쓰세요! 나고 쓰고 있어요. 아무나 하는 거 아니라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니까요. 써주세요.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가 받았던 고운 격려의 말들, 아름다운 응원의 말들을 나도 그렇게 전하고 싶다. (-221-)

2019년 10월 14일, 모 연예인이 사망했다. 전도유망했던 연예인, 언론이 그녀의 노브라 패션을 반복적으로 올린 이후 ,마녀 사냥으로 인해 벌어진 사건이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언니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려면, 그녀의 이야기를 적극 들을 준비가 필요하다. 공감과 소통,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성에 대한 관점, 젠더, 문화와 기질, 성향까지,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급선무다. 성에 대해 민감해지는 순간은 그래서다. 김지혜, 오희승, 이은주, 구경희, 김소애, 이의진, 한정선, 허성애, 박혜윤, 서은혜, 손경희,11명의 작가들이 각자 이야기하고 있는 『전지적 언니 시점』 을 읽어 본다면, 대한민국 여성으로 살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며, 어떤 조건과 상황이 발생하는지 이해가 된다.

여성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말을 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나의 말과 행동이 소문의 근거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책에서는 이해할 수 있다. 여성으로서, 모성에 대한 환상, 젖소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수치심,부끄러움을 가지고 있었다. 뚱뚱해도 문제가 되고, 날씬해도 문제가 되며, 키가 커도,키가 작아도 문제다.물론 여성으로서,가슴의 크기에 예민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불쾌하지만 말할 수 없다. 자칫 자신에게 불이익, 신체적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다. 손가락 욕을 하고 싶어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는 이유다.봉긋한 가슴에 대해서, 브래지어에 대해서, 유럽 사회, 독일은 관대하지만, 한국은 관대하지 못하다. 자칫 가슴 모양이 처져 있으면 ,옆 사람은 개입하고, 간섭한다. 30대 여성의 가슴은 60이 되어서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오지랖 때문이다. 한 권의 책에서, 언니들의 목소리 속에는 우리가 알고 가야 하는 한국의 문화, 경향,젠더에 대해서 알고 가야 하는 이유다. 특히 성소수자, LGBT 에 대해서, 다시한번 짚고 넘어가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소설이면서, 에세이였으며, 내 주변의 언니들의 인생 희노애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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