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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히어로스 - 한국 반도체 산업의 도전과 성취, 그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
임형규.양향자 지음 / 디케 / 2022년 12월
평점 :
"팀장님 저는 왜 책상이 없어요?"
내가 양향자에게 관심을 가진 건 그때부터다. 고졸 신입사원으로 입사하여 팀의 연구원보조로 배정된 직후였다. 당돌한 질문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팀원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생각에 미안하기도 했다. 이후 15년간, 나는 부서장으로서 그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는 스스로 공부하고 기술자로서의 역량을 키워 최고수준의 반도체 설계 분야 기술자로 성장하였다. (-15-)
칩 슈링크,MOS 디바이스 개발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미국에서 개발한 제품을 생산만 하던 단계를 넘어 자체적으로 반도체 기술개발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메모리반도체 산업도전에 앞서 선진기업들과의 격차도 컸지만, 반도체 기술 경쟁의 속성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57-)
그 결과 기흥연구소는 1986년 7월에 1M D 램을 성공적으로 개발하여 D램 자체기술을 확립하였고, 이후 256K S램, 256K EEPROM,4M Mask ROM 등 다양한 메모리 기술을 개발하여 삼성의 완전한 메모리 기술자립에 기여했다. (-77-)
삼성반도체가 경쟁업체들을 큰 격차로 따돌리고 메모리반도체 산업의 압도적인 싱글 톱으로 우뚝 선 1994년부터 1999년까지 6년간의 이야기다. 1994, 1995년의 D 램 산업 초호황은 12개 경쟁기업 모두의 과잉투자를 불렀고, 이는 1996년부터 D 램 가격의 급격한 하락으로 이어졌다. 1998년까지 3년간 이어진 D램 산업 대공항으로 대다수 일본 기업이 이후 수년에 걸쳐 사업을 접었고, 5개 D 램 기업만 살아남는 산업계의 대 재편이 일어났다. (-108-)
1980년 ~90년대는 메모리 시장의 지속적인 성장과 함께 우호적인 국제환경과 정부의 적극적 지원이 있었다는 점에서 성공의 기반이 조성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이 기반이 성공의 필요조건이었고, 그 위에 삼성의 탁월한 경영이라는 충분조건이 더해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132-)
당시 삼성종합기술원은 약 1,200명의 연구원이 삼성그룹의 미래 기술 연구를 담당하고 있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디스플레이 -통신-멀티미디어 사업 분야의 미래기술 연구와, 에너지, 바이오 전자부품 및 소재 등 신사업 관련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삼성그룹 관계사의 위탁 과제는 많지 않았고 대다수 과제를 연구책임자가 직접 발굴해 기술원 내부 심사를 거쳐 확정하는 방식이었다. 그 뒤, 연구의 결과물을 삼성그룹 관계사와의 관련 사업부로 이전하는 것을 성과로 평가하고 있었다. (-162-)
지금까지 글로벌 반도체 산업지형을 정리해주셨다. 미국이 시스템반도체와 기반기술,한국이 메모리반도체,대만이 파운드리 산업의 강자이고, 유럽과 일본도 소재, 장비 중심으로 반도체 산업에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지난 50년간 반도체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정보산업 패러다임의 변화, 그리고 이 변화에 적응해야 했던 반도체 기업들의 치열한 경쟁이 만들어낸 산업지형이다. 이러한 현재의 반도체 산업지형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 미중 반도체 갈등이라는 새로운 환경아래에서 또 다른 변혁을 거칠 전망이다. (-203-)
1969년 삼성전자가 설립되었다. 경남 거제 출신인 임형규 연구원은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후 삼성반도체에 엔지니어가 되었으며,28년간 대한민국 삼성반도체의 성장과 성공의 살아있는 역사의 증인이었다. 현 무소속 국회의원인 양향자 의원은 광주여상 졸업후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에 입사하었고, 말단 연구원 보조에서 28년만에 상무 ,삼성전자 임원이 된다. 대한민국 반도체의 굴곡진 산업성장과 맥을 같이하고 있었으며, 내 삶의 모든 것을 삼성전자, 삼성 반도체에 쏟아부은 이들이다.
전자상거래 필기시험, 정보처리기사 필기시험 앞부분에는 항상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반도체 D 램에 대해서다. 계산,수식 뿐만 아니라, 정보처리 역사에서 반도체, 메모리는 빠질 수 없다. 1940년대,반도체에 대한 이해, 이후 군사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저장 기억 메모리가 ,1970년대 애플이 개인용 컴퓨터 산업을 일구면서, 새로운 도약을 이룰 수 있게 된다.이러한 산업 지형을 일찌감치 간파한 이제 고인이 된 삼성의 이병철 은 1970년내 대한민국의 먹거리는 반도체에 있다고 보았다. 그 후 일본과 미국주도의 반도체 산업을 한국으로 돌려 세웠으며, 1990년대 반도체 초호황기가 거품을 만들었으며, 반도체 대공화응로 이어졌다. 이후 12개 경쟁업체가 5개 경쟁업체로 재푠될 수 있었다. 1990년대 후반 반도체 암흑기였던 대공항을 지나 세계 최초 타이틀은 삼성 몫으로 떨어질 수 있게 되었다.
즉 1983년 64 K D 램 생산을 시작으로 , 1984년 경기도 기흥 1라인 완공, 1M D 램 자체 개발에 성공한 시점이 1986년이다. 그 당시만해도, 1.44, 1.2 플로피 디스크가 있었으며, 디지털 카메라를 저장 수단도 플로피 디스크였다. 소비자의 불편함을 덜어주었던 것은 삼성 반도체 산업의 성장과 맥을 같이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삼성반도체와 하이닉스가 있었으며, 일본이 주도하였던 반도체 산업을 한국과 대만 주도로 재편하게 된다.이후 18개월마다 두배의 반도체 저장용량이 커진다는 무어의 법칙에 따라서, 삼성전자의 반도체 생산기술은 꾸준하게 커져 갔으며, 메모리 저장기술도 커질 수 있었다.이제는 PC기반 전자 산업이 모바일 기반 산업으로 전환되었고, 테라급의 저장기술도 확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