겔리시온 4 - 마지막 약속
이주영 지음 / 가넷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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윕실론은 퐁, 하고 보리얀의 품에 쏙 안기며 반갑다는 듯이 더듬이 같은 촉수를 그녀의 팔에 비비적댄다.

'자기야,내가 얼마나 많은 거칠고 험난한 여정을 거쳤는지 몰라. 응, 정신 차리고 보니까 어떤 커다란 날짐승이 자기를 데려가고 있길래, 아주 큰일 났다 싶었지. 그래서 일단은 괴물을 피해서 물고기들을 타고, 그 물고기를 잡아 먹는 물새들에 타고, 그 물새들이 자기가 나를 찾고 있다면서 멀미 날 만큼 빠른 까마귀에 태워준 거야! 그런데 자기는 또 어떻게 여기 위를 날고 있는 거지?'

"이렇게 다시 만나다니! 너를 영영 잃어버린 줄만 알았어." (-24-)

보리얀은 샬리타를 알아보고 달리기 시작한다. 문 앞에 서 있는 샬리타는 마치 그녀가 울지 않았다는 듯 미소 짓는다. 붉어지는 눈시울로 자신에게 뛰어오는 딸을 보며 그녀는 떨리는 두 손을 내민다. 보리얀이 엄마의 품으로 와락 안기자, 샬리타는 가슴 속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삼키며 마른 입술 사이로 속삭인다.

"힘들었지?" (-88-)

"푸드덕 , 푸드덕!"

시타다라에서 출발한 까마귀는 열심히 날개를 퍼덕거리며 구름을 뚫고 바르벨루스에 닿는다. 그곳에서는 방금 전까지 일어났던 전투가 무색할 만큼의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신성한 동물과 새들, 가축들, 자라트라의 병사들, 노예병들, 바르벨루스의 시민들,그들과 한편이 된 슈라문들 모두가 한마음이 된 것처럼 진주를 이고 나르고 있다. (-179-)

'자기야, 저기 쿠케뻬쩨르도 있어!'

모크샤의 발밑에 넙데데하고 통통한 물고기처럼 생긴 생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머리 위에는 작은 불꽃이 나오는 기다란 통 같은 것이 달려 있고, 검고 땡그런 두 눈을 데룩데룩 굴리며 할 말이 있는 얼굴로 모크샤를 쳐다본다. 모크샤는 그 작은 생물을 바라보고 마치 쿠케뻬쩨르의 마음을 이해하듯 말한다.

"네 동족이 한 일은 걱정하지 말거라.미안할 필요 없다." (-269-)

보리얀은 샬리타를 꼭 껴안는다. 세 사람은 밝은 햇살보다도 더 환한 기쁨으로 바르벨루스의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다. 어느 새 하늘 높이 날아오른 비샤다가 그 위를 선회하며 반가움에 들떠서 힘차게 날개를 펄럭인다. (-301-)

드디어 보리얀은 강인하고 담대한 에실린 여인 샬리야와 만남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시간을 기다리고, 슬픔과 고통을 견딜 수 있었던 건, 보리얀이 가지고 있는 순수함과 보리얀의 엄마 샬리타가 물려준 강인하고 담대한 성격, 사랑의 힘에 있었다. 드디어 무겁고 들기 힘든 괴물을 무찌르고, 평화의 사절 진주를 찾게 되는 보리얀은 지헤를 주는 수수께끼 같는 할아버지 아파라티 할아버지의 정체를 알게 된다. 2000년 동안 고통과 서글픔, 고독으로 살아온 아파라티 할아버지는 무리안이 저지른 과오, 폐허가 된 도시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때를 기다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된다. '시간 그자체'를 볼 수 있는 에르가 만든 태초의 생물 윕실론과 대화를 할 수 있는 보리얀은 악명 높은 물 속 생물 투케뻬쩨르 같은 괴물들이 인간을 괴롭히고, 인간의 떼 죽음으로 올고 가는 현실을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다.

소설 『겔리시온』 시리즈에서 작가는 세상의 기적을 바꿔 나가는 것은 사랑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있다. 물론 기적은 힘으로도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랑과 힘 ,그리고 시간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바로 수수께끼 할아버지 아파라티 할아버지가 침묵으로 삶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 권력의 하수인 제카르슘에게 비극이 찾아온 원인, 아끼던 이를 지키지 못한 사연을 애꾸눈으로 갚으려 했던 사타니크, 서로 다른 성향을 지니고 있었던 상처로 가득한 이들을 포용하였으며,사랑으로 기적을 완성해 나간다. '피의 초승달 사건',모테라의 저주에서 풀려게 된 보리얀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풀어나가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사랑과 인내로,평화를 만들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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