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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들
신주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2월
평점 :

예술이란 무엇으로 존재 가치를 유지하는가.
햄은 자덥했다. 어떤 논리나 철학이 아니라 실험적 행위들을 통해서만 유효한 답을 얻을 수 있다고.나는 오랫도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평안해 보였다. 고통으로 굳어 있던 턱이 느슨하게 벌어져 있었다. 검붉었던 반점도 활동을 멈춘 화산처럼 서늘하게 식어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몸을 집어삼켰던 지금의 냄새가 말끔히 사라졌다. 햄은 겨우 몸을 일으켰다., 침대 귀퉁이에 기대어 팔과 다리를 가슴에 붙였다. (-16-)
자매인, 자매님도 고양이를 좋아하시나 ㅘ요?
네? 아. 네.
얘네 어미가 없어요. 어디서 죽었나 봐.그래서 우유를 좀 가져왔죠.
너무 불쌍해요. (-43-)
지금이라도 아이를 데려오지 그러니.
그럴 형편이 아니에요.
형편이 무슨 상관이야. 죽이든 살리든 제 새끼는 무조건 어미가 키워야지.
숙모는 나무라듯 나를 매섭게 바라봣습니다. (-81-)
그렇게 보니 이렇게 실명이 가득한 소설도 괜찮을 것 같았다. 친구의 뒷담화를 하는 애, 뒷담화에 자꾸만 좋아요, 를 누르는 애, 좋아요 때문에 기를 쓰고 뒷담화에 가담하는 애들의 이름,거기에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뒷담화에 가담하는 애의 이름까지. 어쩐지 누군가를 고자질하는 느낌에 묘한 쾌감이 일었다. 그때였다. 혼자 빙글거리는 나와 블리의 눈이 마주쳤다. (-111-)
그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규림은 윤희가 하이힐을 모으는 취미가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규림은 또각또각 정확한 발소리를 내는 윤희의 하이힐을 내다봤다. 어딘지 아기를 갖고 싶어 하는 사람과는 대조적인 느낌을 주었지만 동시에 가파른 높이를 그러낸 윤희의 발등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그런 구두가 얼마나 많아요? (-133-)
쥐약을 들고 선 영도는 혀뿌리가 뻐근함을 느꼈다. 침이 고였다.이제 영도는 화장실에 앉아서 아르바이트에 대해 생각했다. 월세를 셈하고 밥값을 계산하느라 더는 기은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다만 방안에 누워 잠이 오지 않던 언젠가. 천장을 보면서 이 작은 방을 ,상자와 다를 바 없는 이 공간을., 기은은 뭐라고 할까 생각해본 적은 있었다. 영도의 나이는 열아홉 살.이곳 청년들처럼 영도도 이제 그런 것에 꽤 깊은 슬픔을 느낀다. 그런데,쥐약이라니, 쥐약같은 것은 애초에 사지 말아야 했던 게 아닐까? 내게 편지를 쓴 이 소녀에게 이걸 줘도 될까? 정말 이런 것이 유용할까? (-165-)
엄마와 함께 걷던 남자가 어마의 허리를 부드럽게감쌌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입술이 엄마의 입술이 가닿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엄마, 하고 소리르 지를 뻔했다. 손이 떨렸다. 숨이 막혔다. 눈가가 시큰거렸다. 나는 엄마에게 달려가는 대신 조용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193-)
『너는 네 인생이 마음에 드니? 』, 『같은 하늘, 각자의 시선 』,『국경을 넘는 그림자』을 읽은 바 있다. 세 권은 신주희작가의 에세이,공동 소설이다. 소설 속 여린 문체 속에 격정적인 느낀을 잘 표현하고 있는 소설가이다. 그리고 일곱 편의 단편 이야기는 『햄의 기원』,『저마다의 신』,『허들』,『휘발, 공원』,『잘 자 아가, 나무 꼭대기에서』,『소년과 소녀가 같은 방식으로』,『로즈쿼츠』 는 한편의 소설 『허들』에 채워진다.
일곱편의 단편 속에 어둠과 죽음이 나오고 있었다. 인간은 죽음을 기억하고, 사유하하며 개념화한다. 죽음이 있기에 영혼, 유언, 신, 기억, 존재, 회상, 복수, 증오,중독 를 필요로 한다고 본다. 이 일곱 단편 소설에서, 주인공들에게 죽음이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고, 나의 선택과 결정에 대한 기준이 되고 있었다. 어떤 중요한 선택과 결정에 있어서,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것이 삶,그리고 죽음이었다.
삶보다 죽음을 더 많이 생각하고,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자 생존방식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내 앞에 놓여진 고통도 누군가의 죽음을 회상함으로서,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될 수 있다. 슬픔도 고통도 죽음으로서 , 펴온해질 수 있다. 산다는 것이 죽음보다 고통스럽다고 말하는 이유,그 말에 공감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이기적이게도 인간은 타인이 죽음에 대해서 자신을 취유하려는 속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떤 것에 집착하고, 어떤 것을 수집하고, 술이나 마약에 중독되는 원인도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와 공포에 내재되어 있었다.하이힐을 모으는 윤희, 쥐약을 들고 있는 영도, 엄마가 낯선 남자와함께 했던 시간을 바라보는 놀이터가 익숙한 아이의 마음, 이들이 응시하는 죽음에 대한 실체가 바로 우리 앞에 놓여지는 문제와 고민, 삶의 조건이 되고 있으며, 햄의 죽음을 응시하는 화의 깊은 내면 속에는 자신도 햄과 같은 운명을 살아갈 수 있다는 착각 속에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햄의 과거를 회상함으로서, 스스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을 구하고자 한다. 일곱 편의 단편소설을 읽은 뒤, 작가의 해설을 통해 소설 속 주인공의 인생에 중요한 선택과 결정에 있어서, 결정적인 단 하나의 힌트를 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