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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심 씨의 인생 여행 - 너무 늦지 않은 때에 엄마에게로 떠난 여행
전난희 지음 / 메종인디아 / 2022년 11월
평점 :
오래전 이이다. 엄마다 군내 버스에서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자식은 얼매나 뒀소?"
"아들 하나 있고, 딸이 둘이제."
낯선 이의 물음에 엄마는 여지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어린 맘에도 우리 집은 딸만 둘인데 왜 그랬냐고 묻지 않았다. 속으로 왜 거짓말을 할까 생각하면서도 알 듯 모를 듯 이해가 되기도 했다. 혹시 아들이 없다면 무시라도 할까 봐 자신을 지키는 나름의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16-)
자식이란 오직 부모가 '밝음'만을 유지하길 바라고, 부모의 '흐림'에서 오는 서운함을 감내하지 못한다.당신의 육신을 건사하기도 힘든 늙은 어머니에게 내가 '햇살'이 되어 드리지는 못하고 늘 '맑음'만을 바라다니...내 마음도 금세 누그러졌다. (-70-)
우리 어머니 길심 씨의 쑥떡은 특별했다. 일반 쑥만 넣어 만든 것이 아니니까. 떡쑥이라고. 우리 시골에서는 일명 제비쑥이라고 부르는 쑥을 넣어 떡이 쫀득쫀득하고 찰지기가 피자치즈 저리가라다.식으면 탱탱해지고 쫄깃쫄깃해져 식감이 더 좋다. 이렇게 쫄깃한 식감은 제비쑥 덕분이다. (-141-)
이제 60년지기 혼수품은 낡고,신문물의 등장으로 오래 전에 제 할 일을 잃었다. 김심씨의 몸도 혼수품처럼 낡아져 허리가 굽고 햇빛에 그을린 검은 얼굴엔 주름이 깊은 골자기를 이루었다. 팔다리의 피부도 늘어지고 가늘어졌다. 하지만 할 일은 끝이 없다. 논과 밭에서는 작물들이 그녀의 손길을. 집에서는 성수 씨가 길심 씨의 손맛을 기다리고 있다. 자식들은 또 어떤가...
같은 60년지기지만 아직도 할 일이 넘쳐나는 길심 씨하고는 급이 다르다. (-211-)
시골 노인 성수 씨에게는 몇 가지 습관이 있다. 무슨 이이 있어도 같은 시간에 자고 같은 식단에 일어나는 것은 물론이요. 같은 시간에 삼시 세끼를 먹어야 한다. 틀에 박힌 일상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바꾸려 하지 않는다. 누구나로 인해 일상이 깨지면 참지 못한다. 화를 내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요구한다. (-274-)
나락 (벼) 을 볕에 널어놓고 어제 담근 파김치, 무김치와 생강청,대추청, 된장, 냉동생선,참기름, 볶은 참깨 등을 꺼내 놓는다. 나는 어머니의 사랑을 차에 싣는다. 길심 씨의 자식사랑은 끝이 없다. (-294-)
작가 전난희의 『길심 씨의 인생 여행』이다. 이 책은 한평생 『흙에 살리라』를 실천하신 길씸 씨 이야기다. 여기서 길심 씨는 여든이 된 작가의 어머니였다.우리네 삶 속에 감춰진 애틋함과 그러움, 추억이 켜켜히 묻어나 있었으며, 우리의 삶이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 많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에세이였다.
『길심 씨의 인생 여행』의 주 배경은 전라도 영암이다. 두 시골 노인(?) 길심씨와 성수 씨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다. 논농사는 성수씨 몫이며, 밭농사는 길심씨 몫이며, 글농사는 난희씨 몫이다. 오로지 그 시절 , 가부장제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시골촌부의 삶이 딸에 의해서, 그려낸다. 술이 찌들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퍽퍽함 삶을 견디는 것은 오로지 흙에 있었다.내리 사랑이라 하였던가, 흙에서 성장한 농산물을 캐내어, 음식으로 만들어서, 자녀에게 택배로, 소포로 보내는 삶을 살아간다. 나이 여든이 넘은 현재에도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삶, 밭이랑을 메고, 잡초를 매일 뽑아내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특별한 재료 없이 만들어진 음식이지만,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길심씨의 손맛이자 먹퍽한 삶이었다. 아들이 없어서, 아들이 있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던 건, 그 시대의 시골의 삶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옆집 숟가락 몇개인지 아는 삶이 나를 보호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너무 알아서 불편할 때도 있다.
잊혀진다는 것, 시간이 흐른다는 것, 소멸되어지고, 늙어간다는 것은 서글프다. 작가 전난희 님은 길심씨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언젠가는 지나가는 이야기, 누군가의 삶이기도 한 흙에서 살아가는 시골의 모습,배우지 못해서, 배울 수 없는 환경속에서 살아온 그삶이 그들을 지켜낼 수 있었고, 사랑으로 자녀들을 오롯히 사회의 일원으로 도시로 내보낼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온 일상 속에서,놓치고 있었던 사랑,기억, 추억과 그리움을 길심씨의 삶 속에서,후회르 남기지 않기 위해서, 사랑을 잊지 않으려는 , 그 무언가를 켜켜히 꺼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