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구미호 식당 4 : 구미호 카페 ㅣ 특서 청소년문학 30
박현숙 지음 / 특별한서재 / 2022년 12월
평점 :
"죽은 사람들의 물건이라고요.저희는 팔아달라는 의뢰를 받았지요. 아이고, 이런. 빵이 타면 큰일입니다. 그럼 찬찬히 구경하세요."
직원은 서둘러 주방으로 갔다. 고소한 빵 냄새가 카페에 가득 퍼졌다. (-11-)
"10퍼센트를 떼고 어쩌고 하지 않았나요?"
"그건 다이어리값이 아니야.그건 죽은 자들의 물건을 줍느라 애쓴 값이지. 물건 값은 따로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네가 다른 이의 시간을 가져가서 살듯, 너도 네 시간 중에 어느 부분을 지불하게 될 거다. 물건값은 오늘 가져갈 수도 있고 중간에 가져갈 수도 있고 마지막 날 가져갈 수도 있다. 하지만 억겁처럼 기나긴 시간 중에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니까 크게 아까울 건 없을 거 같다. 18 일을 명심해라." (-43-)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영어 선생님은 다이어리 주인이 죽은 걸 알고 있었다. 증빙 서류가 뭘 말하는지도 모르겠고 안다고 한들 내가 그걸 보낼 수는 없었다.
'미치겠네.'
영어 선생님과 주고 받던 문자는 거기서 끝났다. 나는 아침이 올 때까지 온갖 생각을 다 해봤다. (-80-)
재후는 오늘도 일어나지 못했다.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재후가 연달아 결석을 하는데도 지례는 재후에 대해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 듯했다. 궁금하다면 나에게 넌지시 재후에 대해 물어보기라도 할 텐데 내 앞에서 재후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내심 기뻤다. 아니 기쁜 정도가 아니라 세상을 모두 다 가진 듯한 기분이었다. (-131-)
영조는 온종일 열공을 하고 있었다. 공책에 뭔가 써넣고 또 써 넣었다. 옆을 지나가는 척하며 공책을 훔쳐봤다. 채소 이름이 잔뜩 적혀 있고 반죽하는 방법 같은 것도 보였다. 순대 만드는 비법을 공부 중이었다. (-190-)
'진작 다가갈 걸.'
나는 후회해봤자 소용없는 후회를 했다. (-211-)
박현숙 작자가의 『구미호 식당 』 시리즈는 1권부터 4권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구미호 식당 1권부터 읽으면서,나의 일상적인 삶과 타인의 일상, 나의 존재와 타인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인적이 드문 곳에 ,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은 공간에 구미호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 곳은 밤에 열고 아침에 닫는 그런 특이한 장소다. 실제로 우리에게 구미호는 전설의 고향에 등장하는 친숙한 한이 스며드는 존재이며, 청소년 성장 소설에 구미호를 차용하는 것이 색다르다.
소설 『구미호 식당 4』 편에서 주인공 오성우가 등장한다. 구미호 식당에 직접 찾아가게 되는데, 그 목적은 간절함에 있디 .누구나 인생에서 마법같은 일을 해결해 주는 곳이 있었으면 할 때가 있다.간절함이 마법이 될 수 있다. 서우에게 필요한 그곳, 그곳은 바로 구미호 식당이다. 단 죽은 이의 시간을 빌려서 나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준다는 것은 이 소설의 매력 포인트다. 특히 어떤 죽은 이가 이승에 소중히 여기는 물건을 저승로 가지고 간다는 것은 그 물건에 대한 신뢰와 믿음, 가치와 특별한 의미를 가질 때가 있다. 그 물건들이 하나 하나 모여있는 곳이 구미호 식당이며, 성우는 구미호 식당에서, 죽은 이의 다이어리를 사게 되는데,죽은 이의 20일간의 시간을 사는 대신 성우가 지불해야 할 것은 돈이 아닌 살아있는 사람의 2일, 성우의 2일이라는 시간이다. 죽은 이의 시간의 10퍼센트에 해당되는 살아있는 이의 시간과 맞바꾸는 것이다. 소설은 바로 시간을 맞교환하려는 성우의 내면 속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사람에게 시간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 애틋함 , 그리고 같은 학교에 다니는 지레를 염두에 두고 있는 성우의 마음,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그 간절함이 성장의 주춧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성우가 고민하고 있었던 것, 지레와 후 관계, 지레와 성우 사이에 미묘한 삼각관계를 통해서,서우가 다이어리를 사려고 하는 마음 씀씀이가 느껴진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들여다 보게 되었다.내가 성우였다면, 구미호 식당이 있었다면, 어린 소년의 입장에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무언가를 해결해 낼 수 있는 방법을 적극 찾으려고 했을 것 같다. 그러한 곳이 인적이 드문 곳이거나 밤에 운영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평소에는 전혀 관심 없었던 그 장소와 그 공간이 나개 필요한 공간, 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면, 내 삶은 새롭게 바뀔 수 있고, 마음은 단단해질 수 있을 것 같다. 『구미호 식당』 시리즈의 이야기는 성장에 맞춰져 있다. 그런 측면에서 박가 박현숙님의 상상력에 의해 쓰여진 스토리텔링 『구미호 식당 4: 구미호 카페』은 나에게 특별한 이야기로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