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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이 소란하지 않은 계절 ㅣ 현대시학 시인선 107
이경선 지음 / 현대시학사 / 2022년 11월
평점 :
소란이 소란히지 않은 계절
입하가 지난 지 오래지만
여름은 오늘에서야 온 것 같고
절기 중 아홉 번째라는 망종은 어제였다고 한다.
영월의 논밭은 모내기가 한창이라 했다.
완연한 여름이 반갑다 하고
무렵의 공기는 사뭇 무겁다고 했다.
뒷산의 언덕을 오르는 길엔
들숨의 무게에 숨이 덜컥 차오르기도 했다.
거리의 소란은 옛날과 같았다.
무거운 숨이 오가는 계절에도 소란은 일렁였다.
어린 생명이 있다,
여름의 무거운 숨으로부터 태어나
산달 체중이 사 킬로나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소서의 아이는
어미의 태 胎로부터 오랜 소란을 불러왔다.
태중으로부터의 환희
우량아를 품어낸 어미의 두 팔은
들썩이는 소란을 오늘도 잠잠히 감아내고 있었다.
소란이 소란하지 않는 계절이다.
여름이 왔다
방종은 어제였다 하고 이내 초복이 온다 한다.
초복이 오는 날엔
당신과 멀건 백숙 한 그릇 먹고 싶다고 생각했다. (-19-)
가무다방
엄마 처녀 적 명동
단골집 다방 창가는
어마 따라 나이를 먹었다.
나무창은 곳곳이 상처투성이
지나온 세월
엄마 손 밥힌 것만치 많다.
모진 풍파 견뎌 지켜왔나 보다
엄마처럼
오랜 동무 위해 기다렸나 보다
맛이 옛적과 같다고
식기도 그날 고것이라고
엄만 환히 웃고 덩달아 나도 웃었다.
삐거덕 창문도 웃고
너머 산들바람은
한가롭기만 하다
창 아래 괜이 저 작은 몸도
다 자라 새끼 밸 때 있겠다.
그날도 바람 불면 좋겠다
삐거덕 소리 들려오면 좋겠다. (-25-)
장터와 장닭
벅적벅적 장터의 기운 좋아하여
때없이 장터를 들르곤 하였다.
하루는 부침개 굽는 소리
맛있다 하여 부침개 몇 장을 사고
지난밤에 솔솔 불어오는 냄새에 홀려
치킨 한 봉지를 샀다.
다리가 삐쩍 마른 것이
장닭은 아니거니 생각하였다.
값싼 것이었으니 되었다 했다.
주름살 이고 앉은 노부에게
닭다리 내어주고
마른 것이나 맛은 날 것이라 했다.
한 입 베어 무니 경쾌한 소리가 났다.
잘 튀기어지었구나, 생각도 하고
남은 다리 한쪽 노부에게 건넬 새
네 처 妻 주라며 휙휙 손을 저으셨다.
오지도 않을 처 妻 보고 어찌 주노라며
퍼뜩 뱅글어 오라는 노부의 넋두리인줄 알았다. (-57-)
새로운 것이 시간이 지나 낡은 것이 된다. 낡은 것은 필요에 따라서, 온전히 보존되거나, 쉽게 버려질 수 있다.오로지 누군가에게 쓰여지지 않은다는 이유로, 자리르 차지한다고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만으로, 버려질 수 있다. 때가 탄 사물도, 때가 켜켜히 묻은 기억도 마찬가지다. 선명했던 기억이 흐릿한 기억으로 남게 된다. 그럴 때,우리에게 필요한 것은,기억을 재현하면서, 삶에 대한 새로운 지향점이다.
시인 이경선 님의 『소란이 소란하지 않은 계절 』은 책 제목부터 낯설고 이질적이랐다. 소란스러운 것이 당연한 세상 속에서, 소란이 상실되었다. 소란으로 첨철된 현재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 침묵을 느끼게 되는, 삶은 소란하지 않게 된다. 우리 삶에서 ,소중한 가치, 중요한 요소들 하나하나가 느껴졌다. 낡은 기억, 낡은 사물들이 하나의 합을 이루어서, 나의 기억을 재현할 수 있고,때로는 기억은 왜곡될 수 있다.누구에겐 너무 익숙한 기억,추억이 있다. 시인에겐 『가무다방』이다. 명동의 낡은 창문에 ,낡은 기억에 삐걱거리는 창문 사이에서, 자신의 기억들을 하나하나 새겨 나간다. 찬 바람이 송송송 들어오는 틈 사이에 기억과 추억은 스며들 수 있다. 엄마와 나 사이에 , 다방 커피 한 잔, 공통된 기억이 많을 수록 우리 삶은 풍요로워질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다.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서, 어떻게 살아가는가,왜 살아가는가에 대한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내 삶에 대해서,나의 삶을 새롭게 만들어 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