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겨울의 색채 ㅣ 호밀밭 소설선 소설의 바다 8
서동욱 지음 / 호밀밭 / 2022년 11월
평점 :
"뭐야, 누구야? 준? 잠이나 자라고."
그러나 그건 준이 아니었다.준은 마리보다 먼저 들어와 자고 있었다. 마리는 열려 있는 방문 사이로 준이 코를 골며 자고 있는 것을 보았다. 마리는 비틀거리는 몸을 벽에 기댄 다음 귀고리를 풀어서 전화기 옆에 올려놨다.
수화기 목소리는 아버지가 죽었다고 말했다. 둔기로 머리를 수차례 맞고 살해됐다는 것이다. 마리는 지금 시간이 몇시냐고 물었다. 목소리는 마리 씨가 아니냐고 물었다. 마리는 맞다고 말했다. 잠시간의 정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보고 뭘 어쩌라고?"
목소리는 뭘 어쩌라는 건 아니었다고 대답했다. (-11-)
재규는 내가 한 말을 되풀이했다.
우리느 좀 더 지켜보다가 녀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재규가 청설모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이제 곧 해가 떨어질 것 같았다. 나는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나는 떡밥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생각했다. 얼마 없었다.기껏해야 한 번쯤, 최대한 아껴 쓴다면 두 번 정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정도면 충분할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67-)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죽기 직전에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의자 위로 올라가 목을 맨 다음 의자를 떠밀어 버리기 전에 그는 무엇을 봤을까? 후회했을까? 나는 고개를 젓는다. 그는 후회 같은 걸 하는 사람이 아니다. 공포에 질렸을 때 그는 눈을 감아 버리는 사람이다. 뒤이어 일어날 일이 더 끔찍한 일일지라도.
"나와 함께 있으면 넌 죽어갈 거야."
나느 그에게 말했었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우리가 헤어져야만 그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114-)
민호의 아빠가 주고 난 뒤에 나는 그의 집에 가지 않으려고 했다. 당분간은 가지 말아야 할 것 같았다. 민호는 며칠 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예전처럼 혼자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운동장을 가로지르고, 때때로 텅 빈 교문을 바라보았다. 민호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러나 내가 하 수 있는 일은 없었다. (-144-)
우리 모두에게는 생의 시기마다 자신에게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정서와 세계관이 있잖아요? 살아가는 방식이나 일에 대처하는 방식이 그런 것들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저에게는 물리적으로 각박한 현실 속에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집세, 전기세, 수도세를 내는 일이 정말로 큰일인 사람들이 중요했습니다. (-176-)
우리 인생에 삶도 중요하지만, 죽음 또한 매우 중요하다. 삶이 있기에 죽음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축복받으면서 태어난 아기가 죽음 앞에서,다양한 모습,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축복받지 못하는 죽음,고독한 죽음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인간이 태어남과 동시에 이어지는 삶의 편린들이 그 사람의 죽음 이후의 모습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축복받는 죽음을 꿈꾸지만 현실은 불행한 죽음으로 끝나버릴 때가 많다.
소설 『겨울의 색체』는 네 가지 형태의 소설이며,내가지 삶과 죽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인간사회에서, 상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었고, 각자 죽음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다. 특히 우리 삶은 언제나 죽음에 대해서,매우 타자화하고, 무감각할 때가 있다. 특히 연락이 끊어져 버린 가족,그 가족의 생사를 경찰에 의해서 듣게 될 때, 각자 다른 모습으로 죽음을 바라볼 때가 있다.보편적으로 슬픔과 아픔으로 죽음을 바라보지만, 때때로 가족의 죽음을 타자의 죽음으로 인식될 수 있다. 즉 우리 사회가 가족 해체가 본격화되고 있으며, 가족간의 단절이 회복되지 않음을 이 소설에서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사람마다 느끼고 있었던 것들은 내 가족의 죽음이 비극으로 끝나버렸음에도, 그 죽음이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고,살아간다. 그러한 형태의 가정이 만들어지면 안되는 이유에 대해서, 작가의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남의 일처럼 보이는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될 수 있고, 우리 사회는 점점 더 각박한 사회가 되기 때문이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우리 사회의 건가과 회복을 죽음의 관점에서 들여다 보고 있다. 어떤 죽음이 어떻게 나타나고, 발현되는지에 따라서,그 죽음이 나의 정서와 세계관이 깊이 각인될 수 있으며, 내 삶의 생애 주기에 많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만들어 낸다. 삶이란, 죽음 이후에 완성되며, 나에게 주어진 삶을 아껴 쓰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삶에 대해서, 평생에 걸쳐서 갚아 나가야 할 빚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