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 - 전쟁이 끝나면 정치가 시작된다 임용한의 시간순삭 전쟁사 2
임용한.조현영 지음 / 레드리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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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대전이 지구를 뒤덮었던 1940년대의 가치관은 휴머니즘이 녹아든 현대의 그것과는 판이했다. 게다가 중동은 더 거칠었다. 또 서구민들이 보기에는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관습이 남아 있는 원주민 사회는 태고의 순박함과 이해할 수 없는 폭력성이 공존했다. (-53-)



게다가 남쪽에서 갑자기 나타난 알아지즈의 이집트군이 베들레헴까지 진출했다. 이들은 키부츠 야드 모르데하이를 점령한 뒤, 브엘세바를 지나 네게브사막으로 사라졌다가 갑자기 헤브론에 나타났다. 여기서 요르단군과 합세한 그들은 베들레헴 근교에 도달했다. (-138-)



소련과 이집트가 손을 잡자 이스라엘의 불안감도 더해갔다. 1955년 소련이 체코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이집트에 미그 15기와 T-34 전차를 제공하자, 벤구리온은 즉시 참모총장 모세다얀을 불러 이집트의 공격 가능성을 논의했다.

이스라엘 정보부는 이집트 전력이 종이호랑이라고 보고했다. (-210-)



연습과 실전은 다르다. 드리젠의 계획은 공격에 나선 11대의 전차 중 8대가 진흙에 빠져 기동 불능이 되면서 틀어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실전이고 , 실전은 지휘관의 판단과 분투로 극복해야 한다.철조망, 안테나 힐, 정문, 동문, 서문, 각 방향에서 종격이 혼자하게 진행되었다. (-330-)



이스라엘 공군은 미사일에 놀랄 만큼 무기력했다. 비록 격추된 공군기는 4대 뿐이었지만, 방공망 안으로 파고들지 못했다. 사정거리 밖에서 돌 던지듯이 폭탄을 투하하고 기수를 돌려 사라졌다. 유도 장치도 없는 폭탄을 그런 방식으로 명중시킬 수는 없었다. 지상에 이스라엘군이 거의 없거나 전차 안에 들어가 있기에 망정이지 , 보병들이 그 광경을 보았더라면 저주를 퍼부어도 할 말이 없을 상황이었다. (-420-)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한다 해도 이집트는 공세를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샤즐리는 방어를 자신했다."우리는 어떤 이스라엘의 공격도 격퇴할 수 있습니다." 한 번 더 공세에 실패하고 이집트가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하지 않는 것이 확실하다면, 정전을 강요할 것이 분명하다. 미국은 이집트를 다시 보고 사다트에게 생색을 내고 싶어 할 것이다. 그때 사다트의 염원인 미국과의 관계 개선과 경제성장을 추진할 수 있다. 사다트의 소련의 지원을 거부하지 않았지만, 나세르와 달리 공산주의와는 확실히 선을 그었다. (-503-)



임용한의 시간순삭 전쟁사 1편 병자호란에 이어, 2편 중동 전쟁에 대해 다루고 있다.이번 중동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히틀러의 유대인학살과 대량의 유대인 난민이 발생하면서, 그들이 생존 기반을 팔레스타인 땅에 정착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한된다. 즉 유대인은 유럽에서 살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있었으며, 뿔뿔히 흩어지기 위해 전세계 각 나라로 흩어지게 된다. 그러나 1945년 독일의 항복 이후,전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국적군이 선택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리가 시작되었으며,그 과정에서 아랍권(시리아 · 레바논 · 요르단 · 팔레스타인 · 사우디아라비아 · 예멘 · 오만 · 아랍에미리트 · 바레인 · 카타르 · 이집트 · 리비아 · 튀니지 · 모리타니 · 쿠웨이트 이하 아랍어를 쓰는 나라) 의 반발을 부르고 말았다.

순박한 팔레스타인을 전쟁을 위한 팔레스타인 국민으로 바꿔 놓은 것은 그 시대의 필연적인 외교전이 숨어있다. 이스라엘은 중동 전쟁에서, 아랍 권에 비해 절대적 열세 속에서, 아랍의 승리는 예산된 것처럼 결정될 것이라고 보았으나, 결론적으로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된다.이후 ,소련의 공산주의가 전세계에 퍼지면서, 제2차 중동전쟁은 에견된 거나 다름없었다. 미소 냉전이 달갑지 않았던 아랍의 이집트, 요르단, 팔레스타인과 같은 나라들은,이집트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함으로서, 그것을 빌미로 전쟁이 시작되었으며, 원시적인 전쟁으로, 잔인한 학살은 이어지고 말았다. 이러한 전쟁 양상은 21세기 들어서면서 지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과 영국군이 중동전쟁에 개입하고,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교적 내분이 이어지고 있다. 중동의 카타르 월드컵이 진행되고,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양 쪽에 위치하고 있는 지정학적 한계를 이해한다면, 왜 여전히 팔레스타인니이 중동의 뜨거운 화약고인지 이해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대한민국은 친서방권, 친미적인 성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대적접에 놓여지고 있는 팔레스타인이 처한 현실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막연하게 중동 전쟁의 흐름을 바라보고, 가자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팔레스타인발 테러가 필레스타인의 잘못으로 치부할 때가 있다.하지만 역사는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제2차 세게대전 이후 전쟁의 양상은 다국적군의 형태로 이어지고 말았다. 선유자원이 있는 중동이라는 하나의 지정학적 위치, 남한과 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는 항상 전쟁의 시작과 끝이 되고 있었으며,그 지역,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항상 죽음의 공포에서 벌벌 떨며 살아가야 한다. 이스라엘 정규군이 남녀노소할 것없이 전쟁을 위해 총을 들고 있는 모습을 가벼히 볼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임용한의 시간순삭 전쟁사> 는 병자호란, 중동전쟁에 이어서, 임진왜란을 다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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