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실크로드 세계사 - 고대 제국에서 G2 시대까지
피터 프랭코판 지음, 이재황 옮김 / 책과함께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이 작은 진동들은 사방으로 뻗어나간 네트워크를 따라 전달되었다. 그 길을 따라 순례자와 전사, 유목민과 장사꾼이 여행하고 , 먼 곳에서 온 물건이 거래되었으며, 사사이 교류하고 수용되고 다듬어졌다. 이 길은 번영 뿐만 아니라 죽음과 폭력, 질병과 재앙도 실어 날랐다. 끝없이 뻗는 이 연결망은 19세기 말에 1차 세계대전 당시 최고의 전투기 조종사였던 '붉은 남작' 만 프레트 폰 리히트호펜의 삼촌인 저명한 독일 지질학자 페르디난트 폰 리히트호펜 Ferdinand von Richthofen 에 의해 명명된 이후 그 이름으로 불렸다. 바로 실크로드 SeidenstraBen 다. (-14-)
알렉산드로스는 똔한 현지 지도층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더 많은 영토를 자신의 지배 아래로 끌어들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아시아를 그저 지나가는 데 그치지 않고 보유하고자 한다면 그 주민들에게 너그러움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 제국을 안정적이고 영구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의 충성심이다." (-29-)
64년 5월에 예루살렘이짧은 포위전 끝에 함락되자, 동로마 세계에서는 거의 히스테리에 가까운 반응이 나왔다. 유대인들은 페르시아에 협력하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한 자료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악독한 짐승같이' 침략군 (이들 또한 흉포한 짐승이나 쉿쉿거리는 뱀에 비유되었다)을 도왔다. 그들은 현지 주민들을 학살하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주민들은 신앙을 위해서 기꺼이 죽어갔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살해당했고, 그리스도의 피 대신에 자신의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 (-125-)
1201년 3월 말, 그들은 노바 로마로 불리는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하기 위해 주어진 위치로 이동했다. 4월 둘째 주에 총공격이 개시되었다. 무슬림의 손에 있는 도시들을 공격할 때 사용하려던 사다리. 충차 衝車. 투석기가 세계에서 가장 큰 기독교 도시를 공격하는 데 사용되었다.이집트와 레반트의 항구들을 봉쇄하기 위해 설계되고 건조된 배들이, 해사에서 도시 동북쪽의 유명한 크리소케라스만으로 접근하느 것을 막기 위해 사용되었다. 하기아소피아 대성당이 훤히 내려다보고 있는 가운데 말이다. (-260-)
그러나 대부분의 말은 중앙아시아에서 왔다. 당대의 한 평론가에 따르면 돈이 인도로 흘러즐어오면서 말의 수요가 공급을 앞질러 가격 상승을 부채질 했고 이에 따라 이윤 폭이 엄청나게 커졌다. 수입이 늘면서 다리를 놓고 여행자 숙소를 개선하며 북쪽으로 이어지는 주요 도로의 안전을 강화하는 등의 투자가 늘었다. 그 결과 중앙아시아의 도시들도 갑자기 흥청대고 화려한 모습으로 변모했다. (-389-)
경제사정이 점점 좋아지면서 러시아는 페르시아의 만족할 줄 모르는 돈에 대한 갈증을 채워줌으로써 이 나라에 접근하게 되었다. 페르시아가 돈을 필요로 했던 것은 비효율적인 행정 구조 때문이기도 했지만 , 다른 한편으로 지배층의 사치스러운 취향 때문이기도 했다. (-501-)
이것이 의미하는 현실은 바르바로사 작전이 개시되기 불과 몇 주 전 베를린에서 열린 회의에서 설명되었다.'바르바로사 작전'은 소련 침공의 암호명이다. 5월 2일, 전략가들은 이 공격의 우선순위와 예상되는 결과에 대해 논의했다. 독일군은 진군해나가면서 식량을 현지에서 징발해야 했다. 약속의 땅은 공격 개시 시기에 수확을 시작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독일의 베어마흐트 (국방군) 는 국경선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소련으로부터 보급을 받게 된다. (-617-)
1967년의 전쟁은 경고 사격이었고,위력 시범의 한 사례였다. 그것은 앞으로 다가올 일들에 대한 징조였다. 서방이 세계의 중심부에서 권력과 영향력을 유지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이썼다. 영국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해졌다. 1968년 헤럴드 윌슨 총리는 영국이 수에즈 운하 동쪽의 모든 방위 책무를 포기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페르시아만 지역을 포함해서다. 서아시아에서 영향력을 유지할 책임은 이제 미국으로 넘어갔다. 미국은 그 자체가 위대한 유럽 제국 시대의 흔적이자 계승자였다. (-723-)
이에 따라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이후의 10년 동안 미국은 애매모호하면서도 동시에 야심찬 정책을 추구했다. 미국은 이라크 같은 나라들을 해방시키고 민주주의의 개념과 실체를 양성한다는 주문을 반복적으로 외웠다. 그러나 미국은 또한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서 열심히,그리고 때로는 잔혹하게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고 확대하고자 노력했다. 무슨 대가를 치러야 한대도 거의 상관없었다. (-810-)
시진핑이 2013년에 제시한 일대일로비전에 막대한 자원이 투입된다는 것은 중국이 미래를 계획하고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다른 곳에서는 트라우마나 곤란,난관과 문제들이 고통을 주는 듯하다. 새로운 세계의 조짐이 우리 눈앞에 떠오르고 있다. 다음 번 위협은 어디에서 올 것인지, 종교적 극단주의를 어떻게 다루면 좋을지, 국제법을 무시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나라들과 어떻게 협상해야 할지, 그리고 우리가 이해하려고 노력할 시간을 거의 또는 전혀 갖지 못한 민족, 문화,종교와는 어떻게 관게를 맺어야 할지를 곰곰이 생각하는 사이에 아시아의 등뼈 곳곳에서 네트워크와 연결망들이 새로 짜이고 있다. 아니, 복구되고 있다. 실크로드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 (-862-)
BC 356년에 마케도니아에서 태어난 알렉산드로스(Alexandros the Great, BC 356~BC 323; 알랙산더 대왕)가 있다.그는 마케도니아 왕으로, 페르시아와 인도를 점령하였으며, 동서를 하나로 이은,위대한 제국을 건설한 위대한 영웅이다. 페르시아, 그리고 실크로드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으며, 이제 미영제국의 입장에서 서술해 왔던 승리의 세계사가 아닌, 이라크,이란, 이집트를 중심으로 하는 실크로드 세계사를 통해,주앙아싱,이슬람사,유대인사를 이해하며, 세계사의 입장과 관점을 새롭게 하고 있었다.
책은 크게 25개의 항목으로 구분하고 있었다. 실크로드라고 명명된 이후, 우리의 역사에서 실크로드가 차지하는 비중을 고민하게 된다. 기독교도의 동방으로 가는 길, 실크로드 길을 통해서, 그들은 정복자들은, 미래를 약속하게 되었으며, 실크로드 하면, 이슬람,기독교, 유대인교의 성지, 그리고 예수, 유대인이 떠오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교약과 무역, 교통, 전쟁과 전염벼이 실크로드의 역사에 포함하고 있다.
혁명과 화합, 모피, 노에의 길, 죽음과 파괴의 길, 황금의 길,은의 길, 북유럽으로 가는 길, 제국으로 가는 길, 위개, 전쟁, 석유, 밀, 냉전, 초강대국으로 나아가는 길, 파멸과 비극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었다.오로지 낙타를 타고, 교역을 하는 유목민의 길이었던 실크로드는 이제 교통과 무역, 상인의 길로 바뀌고 있다.그로 인해 그 실크로드 길이 어떤 용도로 쓰여지는지에 따라서, 긍정으로 나아갈 수 있고,부정으로 엮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하나하나가 세계사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새로운 길,실크로드를 우리는 비단길이라 부르고 있다. 인도의 제품과, 도자기, 비단, 그리고 노예까지, 기회, 희망, 성공, 제구틔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혹사병, 페스트, 전염병도, 전쟁도, 죽음과 파멸도, 실크로드를 통해서,KTX 의 속도로 움직였다. 이제 앞으로 중국은 실크로드를 복원하고,회복하려고 한다. 미국을 잠재적 경쟁자로 삼고, 미국을 제압하기 위해서, 실크로드를 이용하고자 하였한다. 전쟁 이라는 하나의 주춧돌, 시진핑의 일대일로 전략은 ,전쟁이든, 무역이든, 교역이든, 문화교류이든, 이후 우리에게 긍정이든 ,부정이든 여러가지 세계사적 흐름을 만들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