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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높다란 그리움
이상훈 지음 / 파람북 / 2022년 11월
평점 :
멀리서 보는 세상
가까이 보면 예뻐도
너무 가까이 보면 추해 보인다.
가까이 보아서 못나 보이는 사람도
멀리서 보면 그리움이 쌓인다.
사랑은 나이가 들수록 세상과 멀어진다.
세상과 멀어져 가슴에 그리움이 남는다.
좁게 보면 괴로운 일밖에 없어 보여도
머리서 보면 괴로움도 고만고만하다가
아름답게 보이기도 한다.
산 정상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면
쓰레기 더미의 도시도
인형의 집처럼 예쁘게 보인다.
어느 사진작가는 말한다.
인생은 줌아웃으로 살아야 한다.
줌인하면 모르는 것들이
뭄아웃하면 다 보인다고 했다.
세상의 일이 다 그렇다.
넓게 보면서 살면
모든 게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멀리서 보면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 (-21-)
첫 사랑의 청첩장
화사한 꽃들이 눈에 들어와 박힌다.
잔잔한 수면에 던져진 한 장의 청접장
갈 수 없다는 걸 몰았을까
알려야 할 의무감이었을까
오래된 기억들이 파문을 일으킨다.
청접장의 향기 없는 꽃들이
추억을 강요하듯 활짝 피어난다.
청첩장을 들고 바라보는 짙푸른 하늘
구름 속에서 그려졌던 그녀의 얼굴이
그녀를 향해 던져졌던 위선의 말들이
이내 허공에 흩어진다.
그녀 때문에 가슴 아파했고
그녀 때문에 잠 못 이룬 밤들
그녀 때문에 행복했던 순간들..
가시라, 부디 잘 가시라
행복하시라, 부디 행복하시라
진실을 담아 행복을 빌어볼 수 밖에. (-55-)
8호선 잠실역 할머니
잠실역 8호선 지하철에는
허리 굽은 할머니가 껌을 팔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할머니께 돈을 건네고 그냥 갈라치면
할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껌 한 통을 손에다 내려놓습니다.
할머니가 안 보이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어디 아프신 건 아닐가 걱정이 앞섭니다.
며칠 후 할머니가 나타나 반가운 마음에
만 원짜리 한 장 보이지 않게 두고 가려는데
그 순간 허리 굽은 할머니가 일어나
껌 다섯 통을 건네줍니다
할머니에게 겸연쩍은 웃음을 보냅니다.
할머니도 환하게 웃습니다.
잠실역의 할머니를 보면
돌아가신 할머니가 자꾸 생각이 납니다.
받기만 한 사랑을 되갚을 길이 없어
산소에만 가면 눈물이 흘렀습니다.
잠실역 할머니 때문에 출근길이 기다려지고
지갑을 확인하고 집을 나섭니다.
매일 아침 할머니를 만나는 것이
행복의 시작이었습니다.
몇 달 전부터 할머니가 보이지 않습니다.
며칠을 기다려도 몇 달은 기다려도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도 할머니의 빈자리를 망연히 쳐다보다
사람들이 붐비는 지하철 속으로 들어갑니다. (-93-)
시인 이상훈의 『아주 높다란 그리움 』 을 읽으면, 어린 시절 시골의 모습이 생각이 먼저 났다. 이젠 사라진 구 안동 시외버스터미널이 떠오르고 말았다. 『8호선 잠실역 할머니』의 이야기가 안동시외버스터미널 장애인 이야기와 겹쳐졌. 배우지 못해서, 장애로 인하여, 사회적 천시와 배타적인 삶으로 인해 그들의 삶과 생존이 우리 삶과 멀어지게 된다. 그땐 측은하게 생각했던 그 순간이 지금은 속상함이 되었다. 나이를 먹고 난 뒤, 그들의 삶을 보면서,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렇게 꼭 해야 할까, 쓸쓸함과 안타까움이 묻어날 때가 있다. 연민과 측은함으로 바라볼 것이 아닌, 가진 자들이 십시일반 모아서, 그들의 삶의 자립기반을 만들어 주었다면, 그등이 차가운 도로 바닥에, 지하철 바닥에서, 껌을 팔거나 구걸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두번째 시, 인생이란 그리움과 추억을 먹고 산다. 첫사랑의 청첩장를 받고 난 그 순간의 기분은 형용하기 힘든 그 뭔가가 있었다. 삶이란 행복한 순간보다 착찹함과 이어질 수 없는 간절함, 이러한 거들은 우리 삶의 대부분을 차지할 때가 있다. 어떤 갈등 속에서 선택과 결정의 갈림길에서, 선택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 결정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놓여질 때, 시인의 상념을 하나하나 담아보고 있다. 내 앞에 얼마든지 비슷한 상황은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 그럴 때, 시신의 『첫 사랑의 청첩장』 은 나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
『멀리서 보는 세상』 은 몸으로 기억하고 싶어지는 시다. 살다보면 보고 싶지않는 , 미운 사람이 있고, 자주 보고 싶어지는, 좋아지는 사람이 있다. 미워하는 사람을 줌아웃으로 본다면 덜 미워하지 않을까, 몸 따로, 생각 따로,덜 미워하고, 더 사랑하며 , 아끼며 살아가야 할 이유가 분명한 시였다. 인생을 줌아웃으로 살아가며, 때로는 줌인으로 살아간다면, 현재보다 좀 더 나은 삶, 좀 더 행복한 삶이 되지 않을까 상상하였고, 반성과 부끄러움이 사무쳤다. 짧은 인생 덜 미워하고, 더 사랑하며, 살아가는 법에 대해 꼽씹어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