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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이 순자 연대기
백시종 지음 / 문예바다 / 2022년 12월
평점 :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장장의 편지를 띄워 이혼을 요구한 것은 방글라데시 여성 따슬리마 나슬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이미 나슬린과 동거 중이었고 , 슬하에 아들까지 두고 있었다.
이름이 핫산이었다.상규보다 일곱 살 알였으니까,아버지가 방글라데시에 공장을 차리고 사업을 시작한 그 이듬해 핫산이 태어난 셈이었다. 그러니까 처음 발을 디딘 그해 벌써 나슬란과 눈이 맞았고, 비공식 부부가 된 테이스였다. (-15-)
밑이 찢어지게 가난한 형제 많은 집안의 장난으로 태어난 아버지의 이름은 서삼봉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강요당한 농사일에 찌들다 못해 검붉든 피부를 갖게 되었지만 , 실상은 치가 떠릴 정도로 그 일을 싫어한 사람이 삼봉이었다. (-39-)
삼봉이는 순자를 처음 봤던 순간부터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고 노골적으로 접근을 시도했는데, 그것은 훌쩍 큰 키나 집적인 외모 때문만이 아니었다. 삼봉이가 결정적으로 아,이 여자구나! 하고 혼자 탄성을 질렀던 것은 엉뚱하게 그녀의 영어 시력 탓이었다. (-63-)
차관은 십중팔구 미국에서 이뤄졌다. 유일한 경제 패권국인 탓이었다.그래서 영어가 필수였다. 믿을 만한 군인 출신 중에서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줄 아는 인물은 흔한 경우가 아니었다. 이주산이 그에 딱 맞아떨어지는 일꾼이었다. (-126-)
"나는 돈을 더 많이 빌려 줄 생가이야.계산법을 역으로 해석하는 거지. 원하는 대로 잔뜩 빌려 주는 대신 법률적인 장치를 저 촘촘히 해 놓 되면 결국 부도는 나게 되어 있고, 그렇게 되면 자동적으로 태산그룹은 내가 인수하게 될 테니까."
"태산그룹을 인수하겠다구?" (-203-)
그것이 로힝야족 어이들의 비참한 자화상이었다.실제로 미냔마에서 피난을 나와 치타고에 둥지를 튼 로힝야족의 아이들 대부분이 그런 막다른 길을 걷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뽀터 꼴리 대안학교 수업료는 거의 공짜였다. 따로 교과서와 필기도구, 그리고 노트를 구입하는 경우만 실비를 거출하여 겨우 충당하는 수준이었다. (-232-)
건강한 근육질 남자의 하루 일당이 고작 3달러 미만인 방글라데시가 아니면 절대로 가능할 수가 없는 일이다. 대한민국뿐 아니라 웬만한 나라치고 그 같은 노동력이 필요하다면 최소한 하루 50다러 아니면 구경도 할 수 없는 작업량이 단독 3달러로 해결할 수 있으니, 자본주 입장에서 보면 그 얼마나 끝내주는 사업인가. (-294-)
밀라노 명품 패션상표인 세르지오와 정식 계약을 맺고 주문생산에 들어갔던 그해 연말쯤이었다. 허름한 의류 생산에서 얻어지는 이익과는 비교가 안 되는 돈벌이였다.
삼봉이는 그 주문생산제 업무를 계기로 고급구두며 고급가방으로 사업영역을 넓혔고, 그 이익금을 로힝야 사람들을 위해 과감히, 그리고 통 크게 돌린 것이었다. (-345-)
상규는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보면 핫산은 방그라데시 사람이 아니었다. 외모만 제 엄마인 나슬란을 닮아 아리안 피부색이었을 뿐, 마음 씀씀이나 생각이나 말투는 영락없는 제 아버지 나라 사람이었다. (-379-)
소설 『삼봉순자 연대기』 는 주인공 서삼봉과 강순자가 증장한다. 삶의 흔적 하나하나에 켜켜히 묻어나 있는 가난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묻어났다. 서삼봉, 강순자 대신 ,공돌이 ,공순이로 부르는 이들에게 삶의 희망은 존재하지 않은 암담한 어둠이 드리워졌다. 소설에서 방글라데시를 인생새의 탈출구로 바꿔 나가기 위한 삶의 기회로 보았고, 그 기회가 여러가지 문제의 근원적인 문제가되고 있다.
소설은 가난에 찌들어 있었던 형제많은 가정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삼봉이 어떻게 순자와 만나게 되고 삶의 파고를 남어가는지 하나하나 들여다 보면,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역사적 흐름과 함께한다. 특히 소설은 방글라데시라는 기회의 나라에서, 오로지 영어 하나와 자신의 몸으로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나가는 삼봉의 개척정신 뒤에는 오로지 가난을 헤쳐 나가겠다는 목적 하나만 숨어 있었으며,지금처럼 공정과 평등, 생명 존중을 외치는 것은 사치에 불과했다. 이 소설을 보면 대한민국이 후진국에서,개발도상국으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으며, 한국 노동자의 희생도 함께 했다. 실제 이 소설에서 주인고의 마지막 비극적인 사건 또한 우리 사회가 경제적 효용가치를 우선함으로서, 경제 개발에 있어서, 원칙과 절차를 무시하고, 오로지 성과와 이익을 우선하고, 인간을 경제의 총받이로 씀으로 인해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엿볼 수 있었으며,그러한 모습이 후진국에서 선진국이 된 지금까지 구태를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놓치지 못한다. 즉 선진국이 되었지만, 여전히 안전불감증이 한국 사회에 만연하고 있으며,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과 사고 방식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갈등과 반목의 원인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