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라는 모험
신순화 지음 / 북하우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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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애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금방 좋아하게 되었다. 뒷마당 자두나무에 올라가 익은 것을 골라 따 먹는 재미에 빠졌고 , 잘 익은 보리수 열매 맛도 알게 되었다. 이른 봄에서 늦여름까지 매일 시냇가에서 첨벙거리고, 마땅한 나무 막대기를 찾아 들고 온 마을을 뛰어다녔다. (-13-)

다급하게 설명했지만 남자는 막무가내였다.

"집주인도 아니면서 외지인 주제에 앵두 가지고 사람을 무시해? 하여간에 외지에서 온 것들은 하나같이 건방지고 제멋대로야. 이 집 앞 도로가 다 우리 땅인데 당신하고 당신 애들, 앞으론 우리 땅으로 못 지나다닐 줄 알아. 이 마을에서 못 살게 한다고 내가 가만두나 봐라." (-67-)

집을 계약할 때 주인 어르신은 텃밭농사도 꼭 지어야 한다고 다짐을 받았다. 집 주변이 다 밭인데 놀리고 묵히면 땅도 집도 금방 망가진다는 이유였다. 당연히 그래야죠. 맞장구를 쳤다. 텃밭가지는 게 꿈이었다고. 염려하지 말라고 목에 힘을 주었다. 갓 딴 신선한 채소로 얼마나 많이 했던가. 텃밭 농사야 말로 마당 있는 집을 얻고 싶어 했던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주인은 미심쩍어했다.'어린애 셋애, 더구나 막내는 아직 돌도 안 지났다면서 이 애들을 데리고 큰 집 건사하는 일만 해도 벅찰 텐데 농사까지?' 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자신 있다고 방긋 웃었다. (-105-)

오백 사십 평 대지 위에 서 있는 집은 집터를 제외한 모든 곳이 땅이고 땅엔 무조건 풀이 돋는다. 시멘트를 부어버리지 않는 이상, 바닥에 벽돌을 깔든 인조석으로 덮든 세월이 지나면 다 똑같다. 안데르센의 동화에서도 새총에 장전되어 날아간 완두콩이 창틈에 날려 와 그 틈에 쌓인 보잘것 없는 흙에서도싹을 틔우지 않던가. 생명의 강인함은 금 간 콘크리트 사이로도 새싻을 밀어올린다. 마당은 인조석이 깔려 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인조석도 깨지고 사라져서 풀씨들은 한참 전부터 인조석 틈 사이로 기세 좋게 돋아나고 있었다. (-112-)

"노랑이가 아픈 것 같다고. 병원에 가야 한다고 제가 말했잖아요. 엄마가 죽인 거예요."

아들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내게 쏘야붙였다. 그 말들이 가슴을 찔렀다.

"노랑이가 이렇게 되어도 엄마도 정말 마음 아파. 진심이야.너처럼 아끼진 않았지만 엄마도 노랑이가 건강하게 잘 살기를 바랐어."

"그럼 바로 병원엘 데려갔어야지요. 동물을 사랑하라면서요. 엄마는 엄마가 말한 대로 행동하지 않았어요."

아들은 슬픔과 상실감으로 떨며 나를 비난했다. (-200-)

540여평의 대지 위해서, 시골 살이를 한다는 것, 낭만 가득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시골살이,귀촌 생활이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라 하더라도 말이다. 작가 신순화, 어린 막둥이를 포함하여, 세 아이와 함께 시골에 정착하게 된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생명과 함께 호홉하는 것, 담장은 형식에 불과할 뿐, 도시의 삶에 젖어 있었던 저자는 시골 살이를 겪으면서, 억울하고, 속상한 일이 반복된다. 즉 나와 타인 간의 거리를 두는 것이 미덕으로 생각하는 도시의 삶은 서로의 격이 사라진 시골의 삶과 차이가 난다. 내 집 앞에 나의 소유권은 주장하는 순간 동네 왕따가 되기 일쑤이고, 내 것과 네 것이 구별없는 시골에 대한 외지인으로서 겪는 당황스러움이 있다.

실제로 시골의 삶은 그러하다. 어느 집과 가깝다는 이유로,내 집앞에 쓰레기가 버려지고, 담배 꽁초가 버려진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 울타리를 친다는 것은 어이가 없는 행동이다. 도시에선 너무나 당연한 일들이 시골에선 당연하지 않은 일이 된다. 저자처럼 귀촌 귀농 후 공동육아를 하면서, 겪게 되는 첫번째 당황스러움이다. 내 삶과 타인의 삶이 분리되지 않는 전형적인 모습이 책속에 묻어난다. 장작을 패고,그 장적으로 집안 온기를 따스하게 녹여내는 그 과정에서,군고구마를 먹을 수 있는 낭만, 자연 그대로의 친환경적인 삶이, 실제 현실과 동떨어져 있음을 보여주는 책, 모험과 도전 가득한 집에서의 삶이 책 속에 묻어나 있었다. 커다란 '마당에서 아이 키우기'는 만만치 않은 노동과 시간, 돈이 투자되는 삶과 현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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