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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버 - 어느 평범한 학생의 기막힌 이야기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 지음, 한미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10월
평점 :
크나큰 신뢰에 제베린은 몸을 움츠렸다. 그는 주목받는 게 싫어서 심지어 노력하는 것도 대체로 삼가는 눈에 안 띄는 학생에 속했다. 눈에 안 띄는 학생은 노련한 부정행위로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구두시험은 언제나 운이 좋아 통과해 어느 날 졸업 시험 합격 판정을 받는다. 보통 연초에 유리한 상황을 이용하는데, 일단 좋은 인상을 주는 데 성공하면 그 다음엔 걱정할 필요가 없다. (-49-)
해마다 그의 성적표는 매우 우수로 도배되가시피 했는데 특별히 더 빛나는 과목이 없고 모든 과목에서 똑같이 빛났기에 오히려 전혀 빛나지 않았다. 하지만 빛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느 노력파도 공붓벌레도 아니었으며, 기타 다른 비난도 할 수 없는 훌륭한 학생의 전형이었다.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있어도 성공한 그는 어느 모로 보나 천재였다. 그는 요제프 벤다였다. (-145-)
마지막으로 명백한 교칙 위방을 노린 쿠퍼가 허락한다.
"수업 내용에 관련된 건 아닙니다!" 벤다가 확인한다.
"말해요!" 쿠퍼가 참지 못하고 나직이 쉭쉭 거린다.
벤다는 느릿느릿 진지하게 말한다."아까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교수님. 오줌을 참아서 죽은 사람은 요하네스 케플러가 아니라 티코 드 브라헤 입니다."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옆으로 돌린 쿠퍼의 참담한 얼어굴에 처음 벌어진 일을 개탄하는 상심이 뚜렷이 어린 것을 모두 느꼈다. (-152-)
누가 낙제생인지 서서히 드러난다. 아이들이 그들을 에워싸고, 한쪽에서 소용없는 우울한 추측들이 침울한 기분을 퍼뜨리는데 다른 구석에서는 폴라크가 브로데츠키와 격하게 다투고 있다. 폴라크는 증오에 차서 브로데트키가 자격이 없는데 오직 교수의 비호 덕분에 매우 우수를 받았다고 대놓고 욕하고, 숄츠는 옆에 서 있다가 퉁퉁한 하마 머리를 흔들며 한마디 한다. 글쎄 뭐, 화나는 건 사실이라고...
어머니가 직접 쿠르트에게 문을 열어준다. (-229-)
그녀가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얼굴을 그의 얼굴에 바짝 들이민다. 바로 눈앞에 그녀의 도톰하고 붉은 입술이 있다. 붉은 색밖에 보이지 않는다. 엄청나게 동물적인 뭔가가 속에서 치밀러 올라오는 걸 느끼고, 피를 생각하고,깜짝 놀라서 눈길을 아래로 미끄러뜨리고, 블라우스의 파진 복 부분 크림색 피부와 피부를 감추는 새하얀 이마포 옷의 줄무늬를 보고, 봉긋 솟은 가슴의 첫 굴곡을 보고,계속 더 짐작하고, 바들바들 떨기 시작하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에 몸을 비튼다. 바들바들 떨면서 그녀의 손을 잡으려고 하지만 그녀가 장난스럽게 후회하며 몸을 돌린다. (-326-)
쿠르트는 머움을 추슬렀다.이제 통속소설은 끝이ㅈ다. 그러나 판에 박힌 학교 독일어를 늘어놓거나 위원회가 이해할 수 없느 해석을 하는 두 가지 가능성 사이의 좁은 길 위에서 균형을 잡으면서 더듬더듬 소심하게 시를 논하다가 마지막 연에 이르렀는데 예의 미지의 것이 다시 찾아왔다. 그것은 마음속에 밀려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쿠르트는 그것을 이해하고 규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다면적이었다. (-398-)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의 성장 소설 『게르거』는 1930년에 쓰여졌고, 1933년 나치 치하의 독일 정부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었다. 그건 저자가 유대인 작가라는 한계 뿐만 아니라, 이 소설이 그 시대에 맞지 않는, 시대적 미풍을 해칠 수 있는 성장 소설로 손꼽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질서를 우선하고, 법과 제도를 더 중시하였던 시대에는 그것에 벗어나는 이야기가 상당히 불편할 수 밖에 없다. 게르거가 보여주는 성장 과정 뿐만 아니라. 쿠퍼 교수가 추구하는 가치관을 훼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에 대해 지금의 시선과 그 당시의 시선이 매우 달랐으며, 졸업시험이 곧 학생들의 미래와 엮여 있었기 때문에,그 결정권을 가진 이들의 보이지 않는 힘은 무시할 수 없었다.학생들은 낙제생이 되는 것을 죽음보다 두려워한다.
소설은 독일-오스트리아 사회에서 생겨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게르거와 쿠퍼선생의 보이지 않는 긴장감, 그 주면 아이들이 보여주는 숨겨진 태도와 자세를 본다면, 오로지 혼자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게르거가 가지고 있는 무언의 압박과 억압이 그대로 느껴지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쿠퍼 선생은 게르거를 농락할 수 있는 충분한 조건과 상황이 있었다. 한 학급에 32명의 학생이 있었으며 ,그중에 한 학생이 게르거 였다. 수업 시간에 딴청을 피우고 싶어도, 쿠퍼 교수로 인해 그럴 수 없었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쿠퍼선생의 말 한마디, 지적 사항 하나하나가 졸업시험과 연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선생님이나 교수님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때엔 오스트리아 사회의 교수는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는 면접관이나 다름 없었다. 그 와중에 게르거는 리자 베어발트와 가까운 관계를 가지게 되는데 , 그 당시 사람들은 창녀, 나병에 대한 혐오증을 가지고 있으면서, 혐오와 차별로 여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게르거의 비참한 운명은 졸업시험이라는 하나의 선택과 결정에 대해서, 권위적이면서, 완벽주의자인, 요제프 벤다의 지적에 대해 비참할 정도로 안색이 변하는 쿠퍼 선생에게 정면 도전함으로 물러서지 않음으로서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비극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