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꽃이나 열매를 맺지 않아도, 더는 자라지 않는다고 해도 그 가지들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에요. 작가님은 이미 단단한 뿌리와 몸통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보면 분명히 새로운 가지가 자랄 거예요. 잠든 것처럼 보이지만 새로운 꽃을 틔우려는 고요한 싸움을 하는 중일 수도 있고요." (-64-)
나른한 오후, 자리에서 지난 여름의 짙은 땀 냄새를 맡고 지난 겨울의 찬바람을 맞았다. 더는 함께 할 수 없는 이들의 뒷모습을 천천히 어루만진 후에야 폴더 속의 폴더를 빠져나왔다. 꽁꽁 숨겨 두었던 시절을 뒤로 하고 굽이굽이 빠져나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몇 촌였지만, 그곳에 남겨둔 장면들은 내가 다시 마주해야 할 고독의 시간을 견딜 힘이 되어줄 거다. (-94-)
머무름 없이 흐러가는 시간 가운데 어렵게 움켜쥔 것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찾아온다. 모든 게 이대로 저물어버린 것만 같겠지만 어둠 뒤에 어둠만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작업실에서는 사라져 보이지 않던 늦은 오후 의 해가 건물 뒤편에거 여전히 아름다운 빛으로 무르익기도 있었던 것처럼 다 끝난 것만 같은 순간에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가 있을 거라 믿는다. 많은 것을 떠나보내야 하는 나에게 가을이 값 없이 가르쳐 준 것이다. (-158-)
긴 시간 원고를 쓰고 난 후에는 욕조 안에 길게 누워서 보내는 시간으 보상처럼 누렸다.욕조에 물을 채우다 말고 모락모락 올라오던 김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기도 했다. 유안히 춥던 지난 겨울 아침에 목욕을 하기 위해 길을 나섰던 기억, 여행 중에 욕조가 있는 방에 묵을 때면 아무리 늦게 돌아오더라도 기어코 욕조에 몸을 누이던 기억, 누군가에게는 겨우 욕조일지도 모르지만 내겐 다 전할 수 없을 만큼 비밀스러운 감정과 상념이 흐르는, 가장 은밀하고 깊은 공간이 욕조다. (-181-)
저자는 '사계절의 전환이 없었더라면 내 몫의 문장은 절반도 되지 않았을 거다' 라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사계절에 대해 ,다양한 추억과 기억이 현존한다. 게절은 우리 삶을 규정짓고, 한국인의 의식구조에 침전하고 있었다.한국인과 이방인을 구별하느 기준이 되고 있다.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삶의 근원적인 질문이 이어질 수 있으며, 살아간다는 것, 관찰대상이 계절 그 자체가 될 수 있다. 나무 하나만 보더라도, 봄이 다르고, 여름이 다르며,쓸쓸한 가을이 달라지고, 겨울이 달라진다. 단조롭지 않는 다채로움이 나무 하나에 오롯히 그려지곤 한다. 다른 나라엔 없는 한국의 고유의 계절적 특징이다. 그것이 한민족의 민족서의 근원 그 자체였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민족성이 한국인에게 있었다. 즉 계절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 만족이 될 수 있고,우리 삶에 불평 불만인 끊어지지 않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흘러가는 강물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엔 나를 위한 삶이었다. 흐르는 강물처럼,비우고,채워지는 삶이 결국 나의 삶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다. 언젠가는 비워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되었고, 누군가의 삶 속에 숨어있는 인생 그 자체가 될 수 있다. 쓸쓸한 가을이 지나가면서, 추운 겨울을 마주하면서,우리는 결국 스스로 나의 삶을 흔들어 놓는 이유가 되었다. 잠깐 , 찰나의 순간에 스쳐지나가는 사계절,그 계절의 연속적인 흐름 속에서, 세상을 관찰하고, 사람을 보며, 누군가의 삶의 방정식을 내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이유를 만들어 나간다. 그 안에서 삶의 이치를 ,내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