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으므로 세상은 따스하다
김종해 지음 / 북레시피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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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여,

절실하지 않고,원하지 않거든 쓰지 말라.

목마르지 않고, 주리지 않으면 구하지 말라.

스스로 안에서 차오르지 않고 , 넘치지 않으면 쓰지 말라.

물 흐르듯 바람 불듯 하늘의 뜻과 땅의 뜻을 좇아가라.

가지지 않고 있지도 않은 것을 다듬지 말라.

세상의 어느 곳에서 그대 시를 주문하더라도 그대의 잘실함과 내통하지 않으면 응하지 말라.

그 주분에 의하여 시인이 시를 쓰고 시 배달을 한들 그것은 이미 곧 썩을 지푸라기 시이며, 거짓말 시가 아니냐.

시인이여, 시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대의 심연을 거치고 그대의 혼에 인각된 말씀이거늘, 치열한 장인 의식 없이는 쓰지 말라.

시인이여, 시어, 그대는 이 지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위안하고 보다 높은 쪽으로 솟구치게 하는 가장 정직한 노래여야 한다.

온 세상이 권력의 전횡專橫에 눌려 핍박받을지라도 그대의 칼날 같은 저항과 충언을 숨기지 말라.

민주와 자유가 유린당하고, 한 시대와 사회가 말문을 잃어버릴 지라도 시인이여, 그대는 어둠을 거쳐서 한 시대의 새벽이 다시 오는 진리를 깨우치게 하라.

그대는 외로운 이, 가난한 이,그늘진 이, 핍박받는 이, 영원 쪽에 서서 일하는 이의 맹우 盟友 여야 한다. (-14-)

나는 이런 시가 좋다.

아침에 짤막한 시 한줄을 읽었는데, 하루 종일 방 안에 그 향기가 남아 있는 시.

사랑의 온기가 담여 있는 따뜻한 시.

영혼의 갈증을 축여주는 생수 같은 시.

눈물이나 이슬이 묻어 있는 듯한, 물기 있는 서정시를 나는 좋아한다.

때로는 핍박받는 자의 숨소리, 때로는 칼날 같은 목소리, 노도의 새벽이 들어 있는 시를 나는 좋아한다.

고통스러운 삶의 한철을 지내는 동안 떫은 물 다 빠지고 시인의 마음 안에서 열매처럼 익은 시.

너무 압축되고 함축되다가 옆구리가 터진 시.

그래서 엉뚱하고 다양한 의미로 보이기까지 하는 선시 禪時 같은 시.

뿌리와 줄기도 각기 다르고 , 빛깔과 향기도 다르지만,최상의 성취를 빚어내는 하느님의 시 .

삶의 일상에서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있다가 세상사의 중심을 시로써만 짚어내는 시인릐 시.

시로써 사람을 느끼며,그래서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사랑하고 싶은 시.

울림이 있는 시, 향기 있는 시.

나는 이런 시가 정말 좋다. (-17-)

을지로 2가 지업상 골목을 끼고 장교동과 수표도이 있었는데, 1979년 문학세계사가 두 번째 이사를 한 곳은 이 수표동 골목이다.지업상 2층 문학세계사의 작은 사무실을 쪼개어 자가 집필실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이곳에 시인 정한모, 김과림, 이형기, 정진규, 이근배, 허영자, 이탄, 박현태, 신달자,유안진 ,이건청, 김종철 등과 작가 송영이 자주 드나들었다. 송영은 문인 가운데 최고의 바둑 실력을 뽐냈는데,이 방면의 실력자인 이근배 시인과 내기 바둑을 두었고,나머지 시인들은 술내기 고스톱을 치며 술판을 벌였다. (-78-)

70년대 중반의 이 기간 동안 해마다 시협에서는 신춘시화전, 연간사화집 간행, 야유회, 가을철 세미나에 이어 국민낭송시집 간행과 같은 주요 사업이 잇따랐다. 물론 시인협회 간사들이 일을 나누어 맡아 진행했지만, 일이 가장 많은 쪽은 이건청과 나였다. (-112-)

김종철은 부산시 초장동 3가 75번지 산동네에서 아버지 김재덕 님과 어머니 최이쁜 님 사이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다. 부두 노역자였던 아버지가 파상풍으로 젊은 나이에 일찍 별세하자 젊은 어머니 혼자서 식솔들을 먹여 살린다. 우리들은 충무동 시장에서 음식 장사를 하는 어머니를 위해 스스로 역할을 나나 우리를 도왔다. (-182-)

시인 김종해는 1941년에 태어나 어느덧 , 6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와 같은 삶을 살게 된다. 미당 서정주를 시인으로서 최고로 치는 시인 김정해의 산문집에는 시인의 사회적 역할 뿐만 아니라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진실만을 쫒겠다는 강한 의지가 피력되고 있었다. 1963년 《자유 문학 》지와 《경향신문 》신춘문예지에 시당선으로 시인이 되었으며, 자신의 삶을 켜켜히 모아서, 시로서 함축하고자 하였다.

먼저 책을 읽으면, 어릴 적 시인의 자화상이 오롯히 느껴진다. 문청시절의 시인의 모습 속에서, 60년간, 오랜 세월을 견뎌온 출판사와 그 주변의 문인들의 삶을 반영하고 있었다. 특히 부산 초량에서 태어나 2014년에 소천하였던 김종철 시인의 삶과 시를 소개하고 있어서,눈길을 끌게 된다. 시인이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배고프더라도, 절실하지 않으면, 시를 쓰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이상과 정직, 신념이 소멸되고 있는 현 세태에, 60년의 세월을 견뎌온 『항해 일지』, 『그대 앞에 봄이 있다 』로 대표하는 시인 김종해의 인생 메시지가 고스란히 느껴지고 있다. 젊은 시절 문청 사람들과 교류하였으며, 출판사 문학세계사 를 거점으로,시인들과 교루해온 시간, 바둑을 두면서, 술로 시름을 잊고 있었던 그 세월이 있었기 때문에, 시인은 지난한 세월을 온전히 시(詩) 장인으로 살아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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