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드 오피스
말러리안 지음 / 델피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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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에게 영광을!'

만약 이런 순간 없이 매서운 일사의 소용돌이에 몸을 맡기고 달렸더라면, 과연 잠시라도 이런 소박한 평온을 느낄 수 있었을까?

그런 찰나의 깨달음으로 그 존재는 모든 걸 얻었다는 듯이 아래도 순식간에 낙하하기 시작했다. 역광에 비친 그 모습은 갑갑한 누에에 싸여 있던 껍질을 벗고 날개를 펼치며 땅속으로 날아가는 나비처럼 보였다.

하늘 높이 날기만을 바라는 모든 어리헉은 존재의 욕망을 비웃으며 말이다. (-9-)

디자인팀 직원의 자살 사건으로 회사 분위기는 한동안 어수선했다.

하지만 회사는 그런 사실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관련 정보를 엄격히 통제했다. 수차례의 관리지침이 회사에 배포되었고, 이번 사건은 개인적인 일로 발생했으며 회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그리고 조직 단위로도 은밀하게 회사의 관련 지침을 전달했으며, 임직원의 동향을 지속적으로 보고 하도록 했다. 하지만 회사가 그렇게 행동할수록, 임직원들은 동요하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10-)

이미 전승완과 약속한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핸드폰에는 온통 전승완의 부하 박철민이 건 부재중 통화 내역과 끔직한 협박성 문자 메시지가 가득했다. 심각한 상황을 직감한 이제욱은 지난 번 끌려갔던 그 장소와 상황이 다시 생생하게 떠올랐ㄷ. (-13-)

'사람들은 스스로의 모습을 잘 몰라. 하지만 뭔가에 집중해서 원하는 걸 이루려고 기를 쓸수록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지.. 그 사람이 천사나 괴물이 되는 건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어! 그 사람이 벌인 행동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그 순간 단순하게 판단한 결과일 뿐이야. 그래서 우리는 이제욱이를 천사로 만들어야 해.'

이제욱을 그대로 풀어주는 것을 의아하게 여긴 박철민에게 전승완이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17-)

그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전승완의 사무실이다.그곳에 도착하자 사무실 불은 아직 환하게 켜져 있었다. 차를 세우고 사무실로 들어가려다 , 건물 앞의 CCTV 가 차에서 내리려던 제욱의 눈에 들어왔다. 깜짝 놀라 주변을 살펴보자 건물과 도로 여러군데에 CCTV 가 설치되어 있었다. (-53-)

"욕망이 많다는 건 그만큼 많은 제약이 생기기 마련이지요." (-71-)

그가 밟은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놀란 제욱은 그 사람에게 다가가 몸을 흔들어 깨웠으나 이미 죽어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한 것은 아무도 이 상황에 신경 쓰지 안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마치 익숙한 듯이, 시체를 피해 자신의 갈 길만 걸어갈 뿐이었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 옆에 있는 골목길을 보니 거기에도 듬성듬성 사람들의 시체가 보였다. (-74-)

이제욱을 보자 마치 새로운 공격 목표를 바견한 것처럼 조 회장이 말했다. 그러자 윤덕술이 조 회장에게 조그맣게 귓속말로 얘기했다. 그제서야 알겠다는 표정을 한 조 회장이 이제욱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번엔 무슨 시식이야?"

"지난 번 말씀하신 만두 맛 보완 테스트입니다." (-89-)

"혼자서 윤덕술 일당들에 저항하는 투사라도 된 것처럼 얘기하고, 우리 앞에선 그토록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더니만 그 새끼들보다 더한 놈이었어. 내가 몬게 딱 맞았지."

제욱은 회사가 이렇게 된 이상, 지금 벌어진 일을 목숨 걸고 해결해야 하는지 회의감이 들었다. (-96-)

"조 회장과 윤덕술 일당들이 이 상무를 어떻게 하지 못하는게, 뭐가 비밀을 알고 있어서 그렇다고 하더라구.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야.이 상무 기회주의적인 인물이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는 않지만, 외계인이 지구 침공했다면 북한과도 손잡고 싸워야 하잖아!" (-125-)

유성관 팀장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이내 피를 쏟아내며 힘없이 죽어갔다.마지막까지 부당한 압력에 저항하며 자신의 신념과 품위를 지켜냈고, 이를 죽음으로 증명해 낸 것이었다. 바닥에 나뒹구는 그의 머리는 떨어질 때 그 강한 충격으로 큰 원을 그리며 사무실을 한 바퀴 돌다가 멈추었다. (-146-)

이제욱과 김정수는 집행위와 팽팽하게 대립했다.

"우리끼리는 이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분쟁은 결국 윤덕술을 비롯한 경영진에게 유리할 뿐입니다. 우리가 이런 갈등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저들은 박수치고 좋아할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어떤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윤덕술이나 조회장이 아닌, 위도 모른 채 모두를 집어삼키고 있는 갈등과 반목, 의심입니다. (-189-)

전승완은 웃으며 말했다.

"당신에 대해 얘기 많이 들었지. 양아치 건달 출신에다가 돈만 밝히는 인간이라는 거. 그리고 내가 듣기로는 당신이야말로 성희롱의 전문가라고 들었는데 말이야. 그런 걸 보면 지금 집권하고 있는 세력들과 코드가 아주 잘 맞긴 해. 나까지 성희롱으로 묶었는데 나는 당신들과 어떻게 안 되나?" (-232-)

그 얘기를 듣자 미친개도 깆자이 풀리는디, 제욱의 말을 극기 위해 털이 무성하게 덮인 듯 큰 귀를 쫑긋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 큰 코를 킁킁거리며 제욱의 여기저기를 냄새 맡는다. 그러다 제욱의 점퍼 주머니 부근 냄새를 맡으려 다가오자 ,제욱은 그 길고 축축한 털복숭이 코를 '탁' 치고서는 말했다. (-273-)

"이 인간은 NR19 뒤집어써도 안 뒈지고, 총 맞아도 안 뒈지는 놈이야. 죽었다고 안심하면 안 되는 인간이라고, 꺼진 불도 다시 보는 심정으로 계속 죽었는지 살펴봐야 해! 안되면 이거 배터지도록 처먹어 보라고 보죠.이렇게 하면 먹다가 배가 터지기라도 하겠죠. 김과장 ,이 새끼 대가리 좀 잡아봐!" (-286-)

작가 말러리안의 『블러드 오피스 』는 경제사범에 대해서, 기업의 비리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독특한 형태의 사회 소설이다. 식품회사 마이푸드에 다니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 이제욱은 이 회사의 회장 조 회장과 보이지 않은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기업 내부에 음료와 만두를 만드는 과정에서, NR19 라는 정체불명의 감미료가 그 원인이었음을 직감적으로 찾고 말았다. 조회장과 윤덕술을 중심으로 하는 마이푸드 임직원에 대항하여, 신사원연맹을 조직하게 되는 이제욱은 점점 자신의 신체적 위협이 코앞에 다다르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아채고 말았다. 스스로 죽음에 임박하였다는 사실과 함께, 회사의 비밀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되는데,그 원인에 대해서, 기업 마이푸드는 자살방조죄에 대해 부인하고 있었다.

이 소설은 마이 푸드 조회장의 탐욕과 통제와 조종,그것이 불러들이는 참극을 잘 묘사하고 있었다. 진실을 감추려는 자와 진실을 드러내고자 하는 자,이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여러가지 상황들, 그 상황들이 작가 특유의 냉정함과 객관적인 묘사에 고스란이 나타나고 있엇으며,기업 비리를 저지르는 자본가의 힘에 . 상대적으로 약한 입장에 놓여지는 노동자 이제욱 주변 인물들의 분열과 갈등을 잘 묘사하고 있다. 즉 이 소설을 보면 자본가가 어떻게 자신의 경제 비리를 감추고 있으며, 노동자의 약한 힘의 연결고리를 어떻게 끈어버리고 있는지 하나하나 엿볼 수 있다. 결국 조회장은 자신의 탐욕에 무너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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