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흄세 에세이 1
알베르 카뮈 지음, 박해현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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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와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거절이 있음을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여기서 앞날이라든지 더 나은 존재라든지 상황이란 말들은 무근 의미가 있는가? 마음의 짐과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내가 세상의 모든 '뒷날'을 완고하게 거부하는 것은 당연히 오늘 내가 누리는 풍요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 때문이다. 죽음이 또 다른 삶을 열어준다는 믿음은 즐거지 않다. 나에게 죽음은 닫힌 문에 지나지 않는다. (-32-)

산다는 것은, 당연히 ,어찌보면 표현한다는 것의 반대쪽이 된다.이탈리아 토스카나 미술의 대가들에 따르면, 그것은 침묵, 불꽃, 부동을 통해 세 차례에 걸쳐 드러난다. (-67-)

충동과 절망은 우리를 다른 삶으로 인도하지만 ,오로지 대지의 가르침에 대해 끓어오르는 애착을 드러낼 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어느 정도 의식이 맑아지면, 스스로 단호한 결심을 느끼고, 반항 의지도 요구 사항도 없이 지금껏 자신의 삶이라고 여겨온 것에, 요컨데 몸부림이라고나 할 것에 등을 돌릴 수 있다. (-86-)

티파사는 고대 페니키아인들이 지중해 연안에 세운 무역도시였다. 도시는 바다를 내려다보는 세 개의 언덕 위에 건설됐다. 이후 카르타고, 로마, 비잔티움 세력으로 주인이 바뀌면서 수 세기동안 여러 문명의 자취를 담은 유적지가 됐다. (-93-)

코로나 팬데믹으로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가 다시 읽혀지고 있된다. 그의 또다른 작품으로 『이방인』 ,『시지프의 신화』가 있으며,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문학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타게 된다. 그의 책, 결혼은 , 우리가 생각하는 결혼과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는 식민지 알제리에 살면서, 알제리인의 특별한 정서, 자신이 보고,듣고, 느끼고,사유했던 것을 문학으로 남겼으며, 1913년 11월7일 알제리 몽드비에서 태어나, 1960년 1월에 사망하게 된다.

그의 작품을 보면, 아버지의 죽음과 청작장애를 가진 엄마의 삶이 오롯이 반영되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간의 본성 뒤에 숨어있는 부조리를 말하고 있으며, 실존주의자로 널리 알려지고 있다. 지나고 보면,그가 살았던 1900년대 초, 프랑스인이면서 알제리를 삶의 터전으로 놓고 있었던 그가 결혼과 사랑, 삶과 죽음을 서로 연결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왜 살아가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물어보곤 한다. 단순히 결혼이라는 하나의 화두를 제시하여, 주인공들의 삶을 말하지 않았다. 1인칭 자기독백적인 소설이다. 그는 결혼을 주제로 한 자신의 사유를 말하고 싶었으며,그가 추구하였던 도덕적 가치, 성찰, 여기에 더해 알제르인이 프랑스인과 다른 점을 자신만의 느낌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그가 살았던 시기는 문명적 우월주의가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던 시기다. 어쩌면 프랑스인으로서, 알제르인을 약잡아 보았을 수 있다.하지만, 삶은 종족이나 민족성과 무관하게 보편성을 띄고 있으며,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우월하다고 말하지 않는다.특 히그가 머물렀던 티파사,그것에서 보았던 경취와 사람들 안에, 자신의 삶을 새롭게 하는 법, 내면과 외면을 서로 조화롭게 다루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 때에 따라서는 침묵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쁨과 평온을 꿈꾸면서, 나만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되, 삶의 덧없음을 일찌기 알아채고 만다. 즉 눈앞에 보이는 자연의 모습에서,자신의 삶을 동시에 나의 존재와 삶을 서로 엮어나가면서, 1957년 노벨문학상를 타게 되었다. 내면의 갈등과 고뇌를 문학으로 승화시킬 줄 알았다.

포기와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거절이 있음을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여기서 앞날이라든지 더 나은 존재라든지 상황이란 말들은 무근 의미가 있는가? 마음의 짐과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내가 세상의 모든 '뒷날'을 완고하게 거부하는 것은 당연히 오늘 내가 누리는 풍요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 때문이다. 죽음이 또 다른 삶을 열어준다는 믿음은 즐거지 않다. 나에게 죽음은 닫힌 문에 지나지 않는다. (-32-)

산다는 것은, 당연히 ,어찌보면 표현한다는 것의 반대쪽이 된다.이탈리아 토스카나 미술의 대가들에 따르면, 그것은 침묵, 불꽃, 부동을 통해 세 차례에 걸쳐 드러난다. (-67-)

충동과 절망은 우리를 다른 삶으로 인도하지만 ,오로지 대지의 가르침에 대해 끓어오르는 애착을 드러낼 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어느 정도 의식이 맑아지면, 스스로 단호한 결심을 느끼고, 반항 의지도 요구 사항도 없이 지금껏 자신의 삶이라고 여겨온 것에, 요컨데 몸부림이라고나 할 것에 등을 돌릴 수 있다. (-86-)

티파사는 고대 페니키아인들이 지중해 연안에 세운 무역도시였다. 도시는 바다를 내려다보는 세 개의 언덕 위에 건설됐다. 이후 카르타고, 로마, 비잔티움 세력으로 주인이 바뀌면서 수 세기동안 여러 문명의 자취를 담은 유적지가 됐다. (-93-)

코로나 팬데믹으로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가 다시 읽혀지고 있된다. 그의 또다른 작품으로 『이방인』 ,『시지프의 신화』가 있으며,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문학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타게 된다. 그의 책, 결혼은 , 우리가 생각하는 결혼과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는 식민지 알제리에 살면서, 알제리인의 특별한 정서, 자신이 보고,듣고, 느끼고,사유했던 것을 문학으로 남겼으며, 1913년 11월7일 알제리 몽드비에서 태어나, 1960년 1월에 사망하게 된다.

그의 작품을 보면, 아버지의 죽음과 청작장애를 가진 엄마의 삶이 오롯이 반영되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간의 본성 뒤에 숨어있는 부조리를 말하고 있으며, 실존주의자로 널리 알려지고 있다. 지나고 보면,그가 살았던 1900년대 초, 프랑스인이면서 알제리를 삶의 터전으로 놓고 있었던 그가 결혼과 사랑, 삶과 죽음을 서로 연결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왜 살아가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물어보곤 한다. 단순히 결혼이라는 하나의 화두를 제시하여, 주인공들의 삶을 말하지 않았다. 1인칭 자기독백적인 소설이다. 그는 결혼을 주제로 한 자신의 사유를 말하고 싶었으며,그가 추구하였던 도덕적 가치, 성찰, 여기에 더해 알제르인이 프랑스인과 다른 점을 자신만의 느낌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그가 살았던 시기는 문명적 우월주의가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던 시기다. 어쩌면 프랑스인으로서, 알제르인을 약잡아 보았을 수 있다.하지만, 삶은 종족이나 민족성과 무관하게 보편성을 띄고 있으며,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우월하다고 말하지 않는다.특 히그가 머물렀던 티파사,그것에서 보았던 경취와 사람들 안에, 자신의 삶을 새롭게 하는 법, 내면과 외면을 서로 조화롭게 다루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 때에 따라서는 침묵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쁨과 평온을 꿈꾸면서, 나만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되, 삶의 덧없음을 일찌기 알아채고 만다. 즉 눈앞에 보이는 자연의 모습에서,자신의 삶을 동시에 나의 존재와 삶을 서로 엮어나가면서, 1957년 노벨문학상를 타게 되었다. 내면의 갈등과 고뇌를 문학으로 승화시킬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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