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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유토피아 - 에덴의 기억이나 예감이 없다면 숨을 쉬는 것도 형벌이다
에밀 시오랑 지음, 김정숙 옮김 / 챕터하우스 / 2022년 9월
평점 :

모든 인간의 활동은 유토피아의 반대 상황에서 이루어진다. 역사라고 부르는 것이다. 역사의 본질은 정체가 아니라 끊임없는 생성변화이다. 변화의 동력은 다양성이며, 단절이고 돌발성이다. 변화의 주체는 인간이다. 인간의 의식은 선택의 가능성을 열며, 자유를 갖게 하고 행동으로 나아가게 한다. 인간은 의식을,자유를, 지식을 포기할 수 없다. 인간임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
러시아가 모호한 눈에서 선명한 주도로 옮겨가려는 데는 근거가 없지 않다. 만일 러시아가 몽골의 침입을 중단시키고 소멸시키지 않았더라면 서유럽은 어떻게 되었을까? 러시아는 두 세기 넘게 굴욕과 예속의 시간을 살면서 역사에서 소외되었다. 그러는 동안 서쪽 유럽인들은 서로 물고 찢고 싸우는 여유를 누렸다. (본문)
나의 행운을 바라보는 당신의 부러움이다. 질투심에 대해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 않고는 편지를 끝낼 수 없습니다. 조국에 부리를 내리고 있는 당신 역시도 동경하며 추억하는 도시 파리에 안주할 수 있었던 '행운' 말입니다. 이 조시를 세상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파리는 내 불행의 근원입니다. (본문)
에밀시오랑은 1911년 카르파티아산맥 작은 마을 트란실바니아 출신이다. 그는 루마니아 출신 철학자로 소개하고 있는데,그가 태어난 시점, 그는 헝가리와 오스트리아에 속해 있었던 그곳에서 태어났으며, 1995년에 루마니아에서 사망하게 된다. 그는 성장하면서, 자신의 작품 대부분 프랑스어를 쓰면서,『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가 그의 대표작으로 남아있는 루마니아 철학자이며, 에세이스트였다.
책 『역사와 유토피아』는 인간의 삶을 철학적으로 조망하고 있으며, 인간은 유토피알르 꿈꾸면서, 현실의 본질적인 형태는 왜 역사를 쓰고 현재에 머무르며, 현실과 역사는 대부분 디스토피아로 엮이고 있음을 적시한다. 그가 살았던 20세기 초, 나치 독일이 유대인학살과 , 유럽 전역을 독일의 지배하에 놓인 히틀러가 지배하였던 시기였으며, 오스트리아 제국이 서서히 몰락해가는 시점이다. 그가 니체와 쇼펜하우어에게 심취하였으며, 쇼펜하우어의 창조적 염세주의가 그의 작품에 녹아있다.고야의 하푸을 느끼게 해주는 에세이를 주로 쓰고 있었다. 패자들의 애독서, 독설의 팡세, 존재의 유혹, 해체의 개설, 태어남의 불편함, 고백의 저주 등이 현재 남아 있다.
역사적 변화의 물줄기 속에서, 저자가 『역사와 유토피아』를 쓴 시점은 ,저지의 철학적 성찰이 돋보이던 1950년대였으며, 책을 쓴 시점은 양차 대전이 끝나고,6.25 한국전쟁이 끝난 시점이다.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지만, 사람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생존이 남아 있었다. 그가 그 고통스러운 삶 속에 어둠에 대해서, 허무주의와 염세주의적 관점에서 ,인간의 모순과 자가당착에 대해 하나하나에 대해서,인간은 역사 속에서, 담고자 하였으며, 에밀시오랑이 염세주의 ,허무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이유다. 인간은 의식을,자유를, 지식을 포기하지 못하고 항상 기록에 의존한다. 그가 살았던 그 시대의 암울하고, 어두운 역사의 중심에 있으면서, 해가 지고, 다시 해가 뜨는 여명의 순간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그가 생각하는 역사의 기록과 인간의 부조리함은 어떻게 기록되고 있는지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있다.그의 통찰이 엿보이는 책 『역사와 유토피아 』는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에 비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