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장편아
이인휘 지음, 조은 그림 / 목선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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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지는 가을이 안개를 몰고 왔습니다. 새벽마다 짙푸른 눈빛으로 일어나는 부론 강에 안개구름이 피어올랐습니다. 안개로 뒤덮인 구름 강이 마을 담벼락을 넘어 도둑눈처럼 스며들었습니다. 도로와 집까지 안개로 점령당한 부론면이 신비스럽습니다. 부론 강으로 흘러드는 법천천으로 안개가 가슬러 올라갑니다. 천변에서 너울거리던 수양버들까지 덮어버리며 맹렬하게 올라갑니다.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천변인지 알 수 없도록 함정을 파놓고 질주합니다. (-7-)

"멋진 놈!"

장편이를 가슴에 안고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뜀박질한 가슴이 펄떡펄떡 뛰고 있었습니다. 부리부리한 눈알을 굴리며 장군처럼 으씃해 하는 모습이 귀여워 입맞춤도 해줬습니다. 장편이도 조막만 한 혀를 내밀어 내 손을 핥고 용트림했습니다.

"자, 얼른 가서 밥 먹으렴." (-59-)

법천사지 위로 천년의 시간이 흐르고 있습니다. 절도 잃고 승려의 발길도 끊겨 적막합니다. 인간의 욕망으로 세우고 탐욕으로 쓰러트린 허망한 절터에 주춧돌만 흉터로 남아 있습니다.

상처로 뭉친 폐사지가 몸을 낮추라 하고,마음을 비우라고 합니다. 역경의 세월을 건너온 느티나무의 텅 빈 몸속처럼 폐사지의 허공엔 생명을 살리는 기운이 넘쳐납니다. (-101-)

욕심이 가득한 세상에서,그 욕심에서 거리를 두게 되는 책, 부론 작가이며 소설가인 이인휘의 『달려라 장편아』는 원주에서 활동하는 조은 화가의 작품이 따스한 스케치 삽화로 엮어낸다. 새까만 강아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애교철철 장편은 부론면의 땅의 내음새를 닮아 있었으며, 소설가 이인휘 또한 부론면의 딸이 안고 있는 성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동화소설 『달려라 장편아 』를 읽으면서, 영혼이란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즈음 ,나의 사유는 나의 삶을 하나하나 해체하여, 나의 삶을 톺아보게 될 것이다. 숨결이 있는 동화소설,,문학적 영혼이 느껴지는 『달려라 장편아 』는 『부론강 』에 이어서, 쓰여진 작품으로서, 사람과 관계를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당위성을 말하고 있으며, 언젠가 소멸해가는 꺼져가는 우리의 생명에 눈길을 담고 있었다.

폐사지, 부론면, 부론강, 얼마전 전라도 군산으로 가던 와중에, 제천에서 원주로 가는 길을 잘못들어서, 우연히 발견한 도로 표지판,부론면이 보였다. 내가 소설가 이인휘님과 『부론강』 을 읽지 않았다면,그 도로 표지판은 단순히 스쳐가는 도로표지판에 머물렀을 거다. 안개가 낀 부론 에 대해 느껴보지 못한 아쉬움, 고향에 대한 청취와 전원적인 삶과 대조되는 폐사지 법천사지를 보면서, 삶의 황혼기를 지나간다는 것에 대해, 작가의 의도를 상상하면서, 상념에 잠기게 되었다. 언젠가 우리의 삶이 폐사지처럼, 한때 번창하였던 불교적인 가치에서 벗어나 ,쓸쓸하게 돌과 흙, 풀로 채워진 그 흔적만 남아있는 폐사지에서, 중년을 지나가는 삶의 그림자가 아련히 남겨져 있었다. 마지막 자신이 세상에 무언가 하나 남기고자 하는 삶의 천착이 느껴지곤 한다. 삶이란 그렇게 우리에게서 가까워짐과 동시에 조금씩 조금씩 멀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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