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성, 학자입니다 - 고대부터 근대까지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은 여성 학자들
박민규 지음 / 빈빈책방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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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파티아가 가장 유명하고 뛰어났지만, 그녀 못지않게 이름을 날리던 다른 여성 학자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철학을 공부하고, 수학과 철학을 가르쳤다. 알렉산드리아의 '판드로시온'은 정육면체의 부피를 두 백가 되게 하려면 한 변의 길이를 얼마나 늘여야 하는지 계산하는 방법을 고안했다고 알려졌다페르가몬의 '소시파트라' 는 철학 교사 자신을 따르는 학생들을 가르쳤으며,예언자로서 신의 목소리를 전달했다고도 한다. 에페수스의 '막시무스의 아내'라고만 전해지는 이도 있다. 막시무스는 당시 유명한 철학자였지만 대중의 인기와 유명세에 점점 타락한 데 비해 그의 부인은 지위와 명예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순수한 지혜와 지식을 여성들에게 알렸다고 한다. 아테네의 '아스클레피게이아'는 히파티아의 학문적 맞수였던 아테네의 철학자 '플루타코스'  딸이었다. 그녀는 아테네에서 아버지를 도와 학생을 가르쳤고. 아버지가 죽은 후 에는 철학 교실을 물려받아 많은 젲바를 길렀다. 아 네 여성 학자에 관한 자세한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아마도 히파티아와 비슷한 어려움 속에서 자신의 길을 개척했을 것이다. (-19-)

에이다 러브레이스는 1815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조지 고든 바이런은 영국의 귀족이자 유명한 시인이었으며, 어머니 애나벨라 이자벨라 밀뱅크도 부유한 귀족이었다. 그런데 바이런은 사생활이 방탕하기로 유명했고, 결혼 후에도 나쁜 버릇이 고쳐지지 않아 두 사람은 결혼 1년 만에 헤어졌다. (-63-)

에이다는 겉으로만 보면 무엇 하나 부족하지 않은 환경에서 태어나 화려한 삶을 살았다. 부유한 귀족 출신에 천재로 이름을 날린 아버지와 능력있는 어머니. 어릴 때부터 최고의 가정교사에게 받은 훌륭한 교육,. 당대의 내로라하는 유명인들과의 교류.백작과의 결혼 등등.에이다가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환경의 도움도 컸다.하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에이다는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아버지인 바이런은 가정을 일찍 버렸기에 에이다는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 사교 활동에 바쁜 어머니는 외할머니에게 에이다의 양육을 맡겼으며,혹시 에이다가 아버지 바이런처럼 방탕한 삶에 빠져들까 두려워해 문학보다는 수학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며 아버지의 흔적을 지웠다. 애정 결핍 때문이었는지, 아니며 부모의 기질을 물려받아서인지 에이다는 예민한 성격에 자기 과시도 강했고,약물과 도박에 빠져들었으며, 결혼생활도 썩 행복하지는 않았다. 만일 에이다가 안정된 가정에서 사랑받고 자랐으면 더 훌륭한 업적을 남겼을지. 아니면 개인적인 불행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으로 성취를 이뤄낸 것일지 딱 잘라 이야기하기 어렵다. (-71-)

책 『나는 여성, 학자입니다 』는 고대에서 근대까지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은 여성 학자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열명의 여성, 학자의 업적을 분석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히파티아, 교회학자가 된 예언자 힐데가르드, 의학과 연관되어, 여성의 출산에 대해서,산파가 해왔던 일을 의학이라는 학문으로 확장한 루이즈 부르주아. 이탈리아 전재 여성 대학교수 라우라 바시, 진리의 아름다움을 꿈꾸었던 리제 마이트너, 문화인류학자이면서,베스트셀러 작가인 마거릿 미드(1901~1978) , 환경운동에 지대한 공을 세웠던 레이첼 카슨(1907~1964), DNA 구조를 밝혀낸 로절런드 프랭클린이 있었다. 그중 에이다 러브레이스와 마리 퀴리 이야기를 눈여겨보게 된다.

해마다 정보처리 시험을 치면 단골로 등장하는 인물이 에이다다. 컴퓨터 역사, 프로그래밍 역사에서, 에이다는 최초의 프로그래머였으며, 그녀의 업적뿐만 아니라, 그녀의 가정환경도 언급된다, 행복할 것 같았던 에이다의 삶은 따스한 가정이 아니었으며,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방탕한 생홯을 할 수밖에 없었다이후 , 컴퓨터의 기본 구조, 지금처럼 복잡한 수식을 계산하는 목적으로 쓰이고 있는 프로그래밍 언어의 원시 언어 에이다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으며, 에이다 러브레이스의 여성으로 사는 삶과 그녀의 IT와 관련하여 에이다 러브레이스의 위치를 우선하고 있다.

두번째는 마리 퀴리의 삶이다. 그녀의 삶은 남편 피에르 퀴리와 함께 해온 삶이기도 하다. 자신의 조국 폴란드의 이름을 딴 원소 폴로늄과 우라늄, 라듐을 발견하였으며,지금 핵무기를 개발하는데, 핵무기의 주요 역사에서, 아인슈타인과 마리 퀴리는 항상 등장한다. 당시 그 무거운 원소들을 '방사능'이 명명하였는데,그것이 자신의 면역체계를 파괴할 것이라고 마리 퀴리 본인조차 몰랐다. 사성 원소의 반짝이는 이상야릇한 모습은 내 몸에 붙이고 다니거나 액세서리로 널리 쓰여졌으며,그것이 마리 퀴리의 죽음에 큰 영향을 가져왔다. 피에르 퀴리와 결혼한 마리 퀴리뿐만 아니라에이다 러브레이스 또한 불행한 삶을 살았다. 누구에게 의지하지 못하고, 독자적이 삶을 살아왔으며, 스스로 만든 정답에 의존해 살아오면서, 삶의 부침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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