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에 읽는 내 운명 이야기 - 명운을 바꾸는 선택과 변화의 순간
강상구 지음 / 흐름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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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50에 맞는 인생의 위기는 차원이 달랐다. 회복 불가능한 타격이었다.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됐나' 싶었다. 궤도를 이탈한 내 인생이 다시 정상 궤도로 복귀하기란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운명' 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착하게 살지는 못했을지언정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결국 이렇게 될 팔자였나 싶었다. (-9-)

이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올 때와 마찬가지로 고통에 몸부림치며 떠나간다.

상대의 만류를 뿌리치고 기어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고집. 귀가 열려 있어 남의 말을 경청하지만 해법은 애당초 자신이 미리 생각해둔 정답에서 한 치도 움직이지 않는 융통성 없음, 이오의 이런 성격은 토(土)의 특징을 반영한다. 토에는 광대하지만 거친 황무지와 같은 무토(戊土)와 잘 가꿔진 비옥한 농토나 화분 속 흙과 같은 기토(己土) 가 있다. (-55-)

일반적으로 편인은 외로움이 싫어 예쁨을 받으려 노력하고, 예쁨을 받는 법을 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알고, 끼와 재주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할 줄도 안다. 다만 몸을 움직이길 싫어하기 때문에 게으르다는 평판을 듣기 쉽고, 무슨 일을 벌이더라도 용두사미로 끝나고는 한다. (-167-)

죽어가는 헤라클레스는 잠깐씩 고통이 가벼워질 때도 있었다. 헤라클레스는 온 세상의 괴물을 물리치고도 여인의 손에 죽어야 하는 사실에 화를 내고 , 자신이 고통에 무력한 여자 같은 모습을 하는 사실을 부끄러워했다. 죽어가는 와중에도 자신을 해친 아내를 죽이겠다고 고함을 질러댔다. 보다 못한 이들이 전후 사정을 설명해준 다음에야 자신에게 닥친 운명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헤라클레스는 에우리 토스와의 전쟁이 끝나고 '모든 노고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신탁을 들은 적이 있다. 노고가 끝나면 편안한 여생을 즐기라는 뜻으로 이해했지만, 속뜻은 달랐다."내가 지금 죽는다는 뜻이었어. 죽은 자에게는 노고가 없으니까." (-233-)

태어난 모습 그대로 죽고 싶다는 히폴리토스는 권력에도 관심이 없다."저는 운동경기에서는 1인자가 되고 싶어도, 나라에서는 고상한 친구들과 행복하게 지내는 2인자로 족해요." 왕자라는 지위를 누리면서 그냥 놀고먹겠다는 뜻이다. 관성(특히 편관)을 권력욕, 명예욕으로 해석한다면, 편관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히폴리토스에게 권력욕이 없다는 말이 좀 어색할지도 모르겠다. 관성은 말하자면 자리 그 자체다. (-276-)

나이 40대, 그리고 오십은 끼인 세대다. 오로지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는 2030 세대와 달리, 40대 이후의 삶은 나이의 영향을 크게 받고 살아간다. 더군다나 일에 대해서, 아픔 속에 견뎌내야 하며, 할 말을 다 못하고 사는 세대이기도 하다. 어쩌면 오십이 운명과 가장 직결되는 삶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고,그들에게는 상극과 상생을 최우선 가치로 놓고 있었다.그리고 그들의 삶은 물질적인 욕망과 함께 만사형통과 운수 대통을 꿈꾸며 살아갈 때가 있다.

남다른 고전 읽기를 취미로 하는 현직 기자 출신인 강상구 기자는 지천명에 대해서, 새로운 관점으로 분석을 들어가고 있었다. 『오십에 읽는 내 운명 이야기』는 통상적으로 자기계발서로 보이지만 깊이 생각하는 인문학이며, 고전 명리학과 그리스 로마신화를 서로 비교하는 과정에서,신들의 삶 속에 인간의 삶을 포섭하고 있었다.

즉 신의 삶은 인간의 삶이기도 하다. 제우스, 헤라, 그리고 일리아드,오디세우스 안에서 스토리의 주축을 이루는 인물들을 명리학으로 풀어가며,그 신들의 사주팔자를 이해하고 있었다. 소위 그리스 로마신화 덕후가 명리학을 공부한다고 보면,비유가 적절하며, 그리스 로마신화의 딱딱함과 명리학의 무거움을 서로 융합하여, 유연한 입장에서 인문학 수업, 인생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인간의 부끄러움과 수치심의 근원을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찾고 있다.

살아가다 보면 반드시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이 존재한다. 그 과정에서 ,나의 성향과 인간의 본성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다.과거에 비해 공부나 교육의 질이 높아졌음에도,우리 삶이 과거에 비해 나아졌다고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삶이 매우 다양해지었지만, 우리 사회는 소통과 이해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즉 내 운명의 중심에는 나에 대한 이해를 기초로 하여,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을 내포하거나. 그래서, 저자는 그리스·로마 신화 속 주인공들을 등장하고 있었으며,그들의 삶과 성향과 기질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상황과 조건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것이 결국 우리의 삶이며,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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