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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시전집
김종철 지음 / 문학수첩 / 2016년 7월
평점 :
베트남의 7행시
1
우리가 가져온 바다 하나가
벌써 메말라 버렸다.
마른풀의 비에
눈물의 끝의 작은 부분
마른 모래의 햇빛이
많은 것을 거두어 갔다.
그대의 피와 그대의 뼈마디의 말을
2
어두워지면 조국에 긴 편지를 쓴다
'라스트 너머 나직이 부르며
비애의 숲과 항생제의 여름
키스의 매음과 눈물의 잎사귀로 가린
수진 마을이
우리들 머릿속에서 심한 식물 병 植物炳 을 앟는다/
3
한 포기의 불모도, 작은 거짓의 죽음까지도
가장 인간적인 것으로 택하게 하라
가늠구멍에 알맞게 들어와 떨고 있는
맟선 운명과 숲과 소나기와 진흙
그대의 잔과 접시에 고인 정신의 피
만남과 만남 사이에 죽음의 아이들은
서너마리의 들개를 몰고 내려온다.
-『한국일보』 71년 8월 31일 (-59-)
소나기
몇 포기의 배추와 무를 흥정하다가
성큼 지나가는 소나기를 만났다.
배추와 무청은 두 팔을 들고
와아 하고 뛰어올랐다,
바보같이 우리들도 두 손을 저으며 달아났다.
소나기가 지나고 난 다음
채소 장수와 함께 다시 돌아왔을 때
배추와 무는 어디론가 가 버렸고
채소 장수와 흥정꾼만
배추 잎사귀를 한 장씩 벗기우듯
서로가 하나씩 벗기워지고 있었다. (-178-)
오늘이 그날이다. 2
장님은 볼 수 없음을 한탄한다.
눈을 원망하지 않는다.
앉은뱅이는 걷지 못함을 안타까워한다.
발을 핑계 대지 않는다.
귀머거리는 듣지 못함을 탄식한다.
귀를 탓하지 않는다.
벙어리는 말하지 못함을 답답해한다.
입을 가리키지 않는다
오늘이 그날이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고
한눈팔지 말고
한 귀로 흘리지 말고
침묵하라
오늘 우리의 손바닥 위에
이만큼, 요만큼, 저만큼 하며
기도하고, 사랑하고 노래하는 것이
부끄럽고 부끄럽다
저물녘 어머니가 장터에서 돌아와
둥기둥기 내 사랑
뽀뽀하고 어를 때
어느 누가 보고 듣고 걷고
말하는 법을 보여 주지 않았더냐?
오늘이 그날이다. -『못과 삶과 꿈 』 (-251-)
엄마 엄마 엄마
나는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른다
사십이 넘도록 엄마라고 불러
아내에게 핀잔도 들었지만
어머니는 싫지 않은 듯 빙그레 웃으셨다.
오늘은 어머니 영정을 들여다보며
엄마 엄마 엄마, 엄마 하고 불러보았다.
그래그래, 엄마하면 밥 주고
엄마하면 업어 주고 씻겨주고
아아 엄마 하면
그 부름이 세상에서 가장 짧고 아름다운
기도인 것을 이제야 깨닫다니!
내 몸뚱이 모든 것이 당신 것밖에 없다니! (-358-)
등신불
등신불 시편1
등신불을 보았다
살아서도 산 적 없고
죽어서도 죽은 적 없는 그를 만났다
그가 없는 빈 몸에
오늘은 떠돌이가 들어와
평생을 살다 간다. 『못과 삶과 꿈 』(-569-)
파본처럼
아내도 오십을 바라본다
이제 아내 몸 구석구석 더듬기에도
소녀경처럼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는다
어떤 때는 파본처럼 어머니가 나온다.
나이 마흔에 과부가 되셨던 어머니가
아내 옆에 파본처럼 따라 눕는다
아내가 나를 길들이는 동안
어머니는 동정녀처럼 얼굴을 붉히고,
오르가슴 없이 내가 태어났던 자국을
아내는 숨긴다.
그때마다 나는 배꼽에서 태어났다는
유년 시절 어머니의 말씀을
침 바르며 넘긴 제5장 임어편
갈피에 몰래 꽂아 두었다. (-587-)
어머니, 가난도 축복입니다.
이 시집은 어머니를 위한 진혼곡이자 어머니 예찬입니다.
이 작은 시집은 세상의 모든 어머니에게 바치는 기도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슬하에 사 남매를 두셨습니다.
그 사 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난 나는 보릿고개 , 춘궁.
흉년이라는 말이 예사롲게 쓰이던 시대에 그 시대를 아프게 컸습니다.
한 끼 굶고 냉수 한 사발 쭉 들이켜며 허기를 채우는 것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시대에
푸른 하늘만을 바라보며 성장한 것이지요.
그 가난은 진실로 축복이었습니다.
이 시집은 그 시절의 투명한 눈물과 마음을 모아,
당신께서 떠난 지 15주기 되는 어머니날을 맞아 펴냅니다.
요즘도 잘 익은 과일이나 별미를 먹을 때
문득 문듟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생전에 저지른 불효가 어떠했으면
이처럼 뒤늦은 깨달음에 마음 아파하겠습니까?
아직도 청개구리처럼 저는 울고 있습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고
당신의 자식 사랑 말씀하시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오늘은 열 손가락 중 하나였던,
그 잇자국이 선명한 사랑 하나가 정말 보고 싶습니다. 김종철 (-647-)
창을 연다
중학교 때 처음 써 본 시의 첫 행은
'창을 연다' 였습니다.
내 시의 화두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슬프게도 뒷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청년을 지나 중년에 이르도록
셀 수 없이 창을 열고 닫았지만
끝내 잇지 못했습니다.
시 한 줄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꿈꾸었던 창, 창, 창, 창! (-752-)
펑펑 울다
소문보다 빠르게
암이 전이되었다는 사실을
나만 몰랐다
그래서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침묵이 변명 되어 버린 날
모처럼 마음을 추스리고 출근하였다.
사무실에서 업무 얘기를 하다가
소문에 들었던 '나'를
처음 내 입으로 말해 주었다
회사 살림난 우직하게 꾸려 왔던 우리 전무는
기다렸다는 듯이 펑펑 울었다.
늘 나이보다 더 들어 보였던 그가
팔소매를 훔치며
체면도 없이 그저 펑펑 울 때는
참 젊어 보였다.
나는 그저 흐느끼는 어깨만 토닥였다.
'아, 나는 언제 펑펑 울어보나.' (-876-)
스톤헨지에서
양들이 풀을 뜯고 있다
양들이 고개를 들지 않는 까닭이다.
양과 풀의 들판
스톤헨지만 고개를 들고 있다.
심심해서 들른 관광지
사람들은 없고
양의 소망만 바위가 되었다.
세상에는 쓸모없는 바위 같은
나도 많다. (-939-)
시인 김종철, 그는 부산시 서구 초장동 3가 75번지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1947년 2월 18일(음력)에 태어나 2014년 7월 5일 67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으며,그가 남긴 『김종철 시 전집』은 유고집으로, 2주기를 기리며 출간된 책이었다. 시가 가지고 있는 특별함, 삶을 시로 노랙하고 , 세상을 관조하면서, 나의 삶의 희로애락이 시에 투영되고자 한다. 시인의 삶이 가난한 이유는 가난 그대로 자신을 놓아두기 때문이었다. 물질적 만족에 도취하다 보면,자신의 삶을 내려놓고 현실과 타협을 하게 된다. 삶에 있어서,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시인으로서의 품격이 무너지곤 한다. 그리하여 시인은 시라는 이슬을 먹고 살아온다. 시인 김종철께서 살아온 그 시간의 편린 속에는 큰 못이 하나 박혀 있었다. 오롯히 내 삶 속에서 채워나가며, 갈망하고 있었던 그 무언가에 대해,어릴 적 나의 삶과 현재의 나의 삶을 비교하고, 관찰하고, 들여다 보며, 삶을 성찰하게 되는 힘을 시에서 느낄 수 있다.
그는 베트남 파병으로 삶을 살아오게 된다. 그것이 죄책감이 되었으며, 자신의 삶 속에 아픔과 슬픔이 시속에 오롯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상과 현실 속에서, 베트남 파병이라는 큰 담론은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고 있었으며, 나의 살의 허기를 채우고자 하였다.그의 작은 소망은 이 시대의 '창을 여는 ' 것이었다. 창을 열어서, 새 시대를 만들고, 삶의 마지막 순간 미소를 짓고 싶었다. 하지만 불현듯 찾아온 불청객, 그것은 암이었다. 시인은 끝까지 자신의 삶을 투영하고자 한다. 죽음 앞에서 불러서지 않겠다는 의지, 못이 내 심장을 관통하여도, 그것을 시인은 못의 명상이라 부르고 있었다. 아픔과 슬픔과 기쁨과 행복,그 모든 삶이 명상이 될 수 있다면, 어떤 삶이 내 앞에 놓인다 하더라도 성찰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피할 수 없기에 응시하였고, 나의 현재와 나의 과거를 시에 넣음으로서,세상의 밀알이 되고자 하였던 시인의 작은 소망은 , 환갑 이후의 삶, 60을 지나도, 엄마의 젖을 찾고 싶었다. 가톨릭 신자로서 살아온 그 지난날, 남자로서 중년을 지나 눈물의 삶을 그리고 있었다. 삶보다는 죽음이 익숙해지는 나이, 인생의 기억을 하나하나 지우고, 성호를 그리며, 그 사람의 명복을 기원하고 있었다. 삶을 응시하며, 죽음을 추모한다는 것, 그 안에서 인생의 걸음마를 시작하고 있다.
결국 그는 고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부산의 영도다리 위에서, 연어가 물길을 거슬러 올라오면서,고향에서 죽어간다고 하였던가, 그가 바라본 돛단배, 항구의 경적, 먼 바다에 오줌을 갈기던 그 어린 시절이 있었기데, 그의 삶의 마지막은 바다 소년이 되고 싶었다. 자갈치 판 위에서, 가난을 축복하며, 배꼽시계를 그리며 살아왔기에, 그는 시인이 되었고,시인으로서 이상향을 버리지 않았다. 그가 바라본 흑백사진 한장에는 많은 것을 담고자 한다.이제 기억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것, '하나둘 셋' 외치면서, 폐백실에서, 서너알의 대추를 던지면서, 삶의 복을 기원하고, 그 삶 속에 복이 열매를 맺길 바라고 있다. 그렇게 우리 삶은 피었다 지기를 반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