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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보낸 7일 - 안기부에서 받은 대학 졸업장
신정일 지음 / 창해 / 2022년 10월
평점 :
그들은 카운터에서부터 내 소지품을 모아둔 지하실 계단의 작은 창고까지 찾아내어 소지품(그중에는 군대 생활 때부터의 습작품과 김지하의 《오적》 과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이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 신채호 선생의 《조선사 총론》 을 비롯한 여러 사람의 책들, 그들이 불온하다고 여기는 불온서적들) 을 다 챙겼다. (-26-)
그때가 1981년 8월 말의 어느 날이었다.그 무렵 나는 전북대학교 부근에서 시식 코너를 운영하고 있었다. 시식 코너란 중식, 양식, 한식까지 다 파는 음식점으로 1970년대 말부터 우리나라 곳곳에 유행하던 음식점이었다. (-34-)
"국민학교를 마치고 오로지 책만 읽다가 군대에 갔고, 그래서 정규 학교는 국민학교 6년이 다입니다."
신기하다. 계속 여러 사람을 통해서 반복적으로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느냐는 다그침을 듣고, 북한에 가서 김일성으로부터 돈을 받았지 않느냐는 다그침을 반복해서 듣자 내가 진시로 대학을 졸업한 것 같고, 북한에 가서 김일성으로부터 많은 돈을 받은 것 같은 착각이 들면서 대학을 다니고 졸업한 것 같이 느껴진다. (-132-)
죽음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빼앗아 가기 시작할 때, 죽음에 대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취하는 것과 다른 정당한 방식을 택하도록 하자. 죽음을 낯설게 여기지 말자. 죽음과 자주 접촉해야 한다. 죽음에 익숙해지도록 하자. 다른 무엇보다 죽음을 마음으로 자주 생각하자. 죽음이 어디에서 우리를 기다리는지 우리는 모른다. 죽음을 몸에 익히는 것은 자유를 실습하는 것이다.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배운 사람은 농가 되지 않는 방식을 배운 셈이다. (-218-)
문득 나는 셀리의 시 한 편이 떠오른다.
"어떤 나무는 지나간 가을을
어떤 나무는 재빠르게 다가오는 새봄을
어떤 나무는 사월의 꽃봉오리와 소나기를
어떤 나무는 유월의 암자에서 부르는 노래를
그리고 모든 나무는 사랑의 꿈을 꾸었습니다." (-316-)
나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어느 정도 용기가 필요하다. 에세이로 쓴다면, 그것은 사실이 된다. 반면 자전 소설로 쓰여진다면, 허구와 현실이 오롯이 반영된다. 1954년 123월 4일 생 작가 신정일은 자신이 1981년 안기부에 끌려가서 고초를 겪었던 7일간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자전소설 『지옥에서 보낸 7일』 에 서술하고 있다. 60대에 자신 20대의 삶을 반추하였다.1981년이후 21세기 지금까지, 40년간 삶의 생지옥이 무엇인지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있다. 특히 저자는 1981년, 그 당시 자신의 고통의 장소가 안기부 전북 분실이라고 추정하고 있었으며, 자신이 소지한 불온 책들이 스스로 지옥으로 들어가는 지옥 열차라고 묘사하고 있었다.
우리의 삶은 한순간에 바뀔 수 있다. 어떤 상황과 어떤 조건이 인간의 본성과 엮이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표출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나의 고향 "진안군 백운면 백암리 2621번지,나의 부모님 아빠 신영철, 엄마 정병례" 라고 자백해야 하는 순간이며, 국민학교 졸업장을 가진 상황에서 ,그는 대학을 엘리트,지식인으로 존재를 바꿔 버린다.
모든 것은 책에서 시작되었다. 시대의 금서를 소지 하면 잡혀들어가는 무시무시한 안기부가 있었다. 박정희 정권에서,전두환 정권으로 바뀌면서, 전두환은 문제 소지가 있는 이들을 안기부라는 도구로서 처단하였다. 북한에 가지 않지만, 자백을 끌어내 북한에 다녀온 것처럼 해야 했다.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자백이 중요했다. 그가 7일동안 죽음의 문턱에서 ,고문에 의해, 삶을 마감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인간의 악독한 면의 적나라함을 스스로 느꼈으며, 몸서리쳐질 정도였다. 자유와 평등이 사라진 채,그 안에 억압과 착취만 존재한다. 실토하면, 살아남을 것이고, 실토하지 않으면 고문은 지속된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 없는 사상이라는 덫에 걸린 쥐와 같은 풍전등화 속에 놓이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쥐와 같은 처지에 놓여지는 순간,간첩이라는 말을 꼭 듣고 싶었을 것이다. '간첩 자백을 받아냄으로써, 그들의 삶이 평온해지며, 누군가의 불행에 대해 도피할 수 있게 된다. 우리 삶의 불행이 끊어지지 않는 이유는 권력 앞에서 무기력해지는 개개인의 삶이 여전히 느껴지고 있어서다. 생지옥과 같은 삶, 북한에 다녀온 간첩이라는 억울한 누명은 남북 분단이라는 시대의 전환을 고스란히 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