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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세계사 - 전면개정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1년 10월
평점 :
초판 원고를 쓰던 1987년, 스물여덟 살이었던 나는 최루탄 가루 날리는 거리에서 낮을 보내고 구로 공단 근처의 '벌집' 자취방에 돌아가 밤새 볼펜으로 원고지에 글을 썼다. 그때 세계는 냉전의 막바지에 있었고 대한민국 국민은 독재의 담벼락을 무너뜨렸다. 나는 독재자가 국정교과서와 신문 방송을 동원해 국민에게 주입한 역사해석과 싸우려고 그 책을 썼다. 반공주의와 친미주의라는 이념의 색안경을 벗지 않고는 문명의 변화를 직시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6-)
전쟁의 원인은 다른 데 있었다. 20세기까지 살아남았던 역사의 괴물, 갈 수만 있었다면 '달도 삼켰을 제국주의'였다. 군사력으로 다른 지역의 다른 인간집단을 정복하고 지배한 행위는 인류 역사에 늘 있었다. 그러나 근대의 제국주의는 알렉산드로스 카이사르 칭기즈칸의 정복 전쟁과 달랐다. 거대한 식민지를 거느린 영국과 프랑스는 단순한 군사 대국이 아니라 산업혁명을 이룬 자본주의 강국이었다. 한발 늦게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든 독일 일본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65-)
세계 경제질서도 달라졌다. 연합국 지도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부터 새로운 국제 금융질서와 무역 질서를 구상했고, 종전 후 곧바로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을 출범시켰다. 중앙은행이 개별 상업은행의 부도를 막고 예금주를 보호하는 것처럼 두 국제금융 기구는 개별 구가의 금융위기를 예방하고 문제가 생기더라도 불길이 번지지 않게끔 막았다. (-128-)
히틀러는 유럽에 거주하던 유대인 절반을 죽였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600만 명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예루살렘의 홀로코스트 역사박물관은 지금까지 300만 명 넘는 희생자의 신원을 확인했다. 독일이 승전했다면 전 세계의 유대인을 다 찾아 죽였을 것이다. 나치는 유대인만 죽인 게 아니었다. 난치병과 정신병 환자, 중증 장애인, 동성애자는 국적을 가리지 않고 죽였다. 하지만 나치가 저지른 모든 범죄 가운데 최악은 단연 홀로코스트다. (-194-)
혁명정부는 국민투표로 왕정을 폐지하고 이슬람 공화국을 수립했다. 그러나 종교 권력과 정치권력을 하나로 융합한 나라가 진정한 공화국이 되기는 어려웠다. 호메이니가 혁명수비대를 동원해 공포정치를 펴자 지식인들이 대거 이란을 탈출했다. 그런데 이집트와 모로코를 전전하던 팔레비가 치료를 위해 미국에 들어가면서 예기치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급진 이슬람주의자들이 팔레비의 송환을 요구하면서 1979년 11월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을 점거하고 외교관 70여 명을 인질로 붙잡은 것이다. (-230-)
베트남의 사회주의 혁명은 프랑스 일본 미국 군대와 싸운 백 년의 전쟁이었고 말 그대로 '상처뿐인 승리'를 거뒀다. 북베트남 의 도시와 산업시설은 융단폭격에 잿더미가 됐다. 밀림의 풀과 나무는 화학물질에 말라 죽었고 미군 불도저가 파괴한 마을은 황무지로 남았다. 수많은 애국자가 죽었고 팔다리를 잃은 부상자와 전쟁고아가 넘쳐났다. (-270-)
최초의 폭발 실험은 1952년 11월 1일 하와이에서 서쪽으로 5천 km 떨어진 마셜제도의 산호섬에서 했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줄곧 사용해온 핵실험 장소였다. 10.4Mt 의 수소 폭탄 '아이 마이크' 가 터지자 줄기 지름 12.8km, 상단 지름 43.4km 나 되는 버섯구름이 48km 상공까지 피어올랐다. 산호섬은 사라지고 지름 1.6km, 깊이 60 m 의 웅덩이만 남았다. 폭발 지점의 중성자 밀도는 초신성의 1천만 배였고 우주의 모든 원소가 만들어졌으며 자연에 없는 원소까지 생겼다. 소련도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 중수소화 리튬이라는 고체를 사용한 '건식 폭탄'이어서 항공기로 운반할 수 있었다. (-320-)
자본주의 체제가 내부 모순으로 무너지고 공산주의 사회가 오리라고 한 마르크스의 주장은 오류로 드러났다. 그러나 생산력 발전이 사회조직과 사상과 문화의 변화를 가져오는 동력이라는 견해는 하나의 이론으로 존재할 자격이 충분하다.우리가 지금 그런 현상을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자본주의는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 과학혁명이 일으키는 물질적 생산력의 발전을 통해 다른 체제로 이행할 것인가. (-384-)
거대한 두 개의 힘이 있을 때 서로 충돌할 수 있고 과정에서 거대한 힘이 생기게 된다. 역사는 그 거대한 힘을 이용하여, 사회를 바꾸고, 인간의 의식과 지각을 바꿔 놓는다. 그러나 그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판 안에 있을 땐 느끼지 못한다. 과거 왕정국가 체제였을 백성들의 생각과 그때보다 풍요로운 시대를 사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갈 때,서로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서로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불행의 기준이 달라진다. 왕정 사회 안에서, 머슴으로 살아도 불행하다고 느끼지 못하고,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군가에게 착취당해도 불행하다고 자각하지 못하는 이유다. 그러나 역사를 공부하고, 역사를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생각이 바뀔 수 있다. 인간의 세계관이 전면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유시민의 약사 책은 민주주의 이후 우리가 바라본 역사와 패턴을 달리한다. 그래서 『거꾸로 읽는 세계사』이며, 저자의 삶의 성장과 이 책의 변화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책의 앞부분에는 드레퓌스 이야기가 나온다. 이 사건은 에밀졸라의 '나느 괄한다' 에 등장하곤 하는데, 민주주의의 시작점을 드레퓌스 사건이라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역사의 흐름과 역사적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기존의 역사 안에 있는 역사에서 새로운 시선으로 역사를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주고 있다. 최근 들어서 역사서에 발칙함,엔터테인먼트 적 요소를 들이밀고 있었던 이유, 그 시작이 바로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 를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즉 우리가 역사를 국정교과서나 어떤 목적에 의해 쓰임으로 인해 대해 바로 보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소위 베트남 전쟁, 4.3 사건 등 대한민국의 입장으로 불 때 불편한 역사의 경우 그러하다. 우리가 일본의 역사 왜곡을 비판하면서, 우리가 스스로 자행하는 역사 왜곡에 대해서 관대하게 바라보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 책을 통해 기존의 약사 상식에 대해서,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하나의 사건에 대해 다르게 바라보면, 역사의 흐름뿐만 아니라,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이후 진행되는 역사적 흐름이 왜 발생했는지 꼼꼼하게 느껴 볼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