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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하면 반칙이다 - 나보다 더 외로운 나에게
류근 지음 / 해냄 / 2022년 10월
평점 :
"지금 살아 있는 나를 위해서, 아니지 나에 대해서 울어본 적은 있어?"
시바, 나는 매일 울었다.
이문재 시인은 왜 내가 완전히 취해 있거나 죽음 근처의 잠에 빠져 있을 때만 전화를 하는 것인가. 내 동지 김주대 시인은 아무 때나 전화를 해서 내 안부를 묻는다. 부인 잘 있어?
그래, 장미 정원 위에 쌓이는 눈을 바라보며 시를 읽던 소년이 있었지. 오늘 같은 날, 가난하고 맑은 친구와 마주 앉아 말없이 술 마시기 참 좋은 날...그러나 나는 고독의 근유을 어루만디며 남대문시장으로 가리라. 기꺼이 십전대보차를 마시리라. 종편 뉴스에 잔뜩 고무돼 있느 주인 아주머니의 눈가 주름을 그윽이 바라보리라. (-49-)
세상은 어쩌면 <발간 머리 앤>을 본 사람과 안 본 사람으로 나뉠 것 같다. 그게 만화든 소설이든 애니메이션이든 드라마든 말이다. 삶의 깊고 푸르고 멀고 환하고 가슴 뛰는 의미를 잃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장래 희망이 돈이고, 신앙이 돈이고, 첫 사랑이 돈이 된 세상에서 19세기 소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가슴에 별처럼 아프게 박힌다. 지금 더렵혀진 모든 '어른'들에게 빨간머리 소녀는 말한다.
"우리에게 내일이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가요? 한 번도 실수하지 않은 첫날이잖아요?" (-117-)
검색해 보니까 세종문화회관은 최대 객석수가 3,022 개였다. 나는 그 즉시 메시지를 보내서 따져 물었다. 이게 어찌된겨? 꿀도사가 답신을 보내왔다. 나머지는 다 천장에 거꾸로 앉아서 회의를 했다는겨. 세상에는 니가 아무리 알려고 해도 모르는 세계가 있는겨. 꿀에다 부적 타서 먹으면 점점 더 알게 될겨.
방근 전에 꿀 다섯 통이 도착했다.
"30만 원 x 5 = 150만원 (부적값 안바듬)"(-174-)
빗소리를 들으며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나는 것은 참으로 난감한 잉이로구나. 나는 살다가 가끔씩 손가락에 가시가 박히는 알의 빈도로 아버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버지는 그러니까 참 얼마나 외로운 사람이었을까! 아버지는 그러니까 참 얼마나 외로운 영혼이었을까! (-206-)
증오와 갈등과 혐오와 분노와 탐욕과 폭력과 음모와 천박과 이기와 파렴치의 각축장 한가운데 오늘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분다. 불길하게도 일짝 피어난 봄꽃들이 다 질 것이다. 나는 살아남은 나를 가엾어하며 슬퍼하며 또 한잔해야지. 이 술집엔 순 늙고 진 이웃들만 앉아 있다. 순한 초식동물들 같다. 눈물겹다. (-276-)
지금 우리는 시를 읽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현실에 모든 시간과 노력을 솓게 되면서, 시에서 얻을 수 있는 위로와 낭만을 도외시하고,우선순위에서 벗어날 때가 있다. 시인이 가난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 신념과 소신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고고한 백조처럼 살아간다는 것이 어려운 대한민국이다. 진지하면, 사회에서 배제되고, 고구마 백개 먹은 기분이 든다고 말하는 작금의 세상 살이에서,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충주에서 자란 시인 류근의 에세이는 나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였다.결국 남는 것은 부끄러움과 죄책감, 세상에 대한 미안함이다.
에세이를르 읽으면서, 나에게 시인의 기준을 말하고 있는 듯했다. 한구 사회에서 시인이란 무엇이며, 시인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 넌지시 말하고 있다. 시인 류근은 1966년생이며, 이십대 중반 ,1992년 《문화일보 》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하게 된다. 학창시절부터 오롯히 시인이 되기로 하였던 그에게 ,스물 여섯이 되어서 ,시가 밥벌이가 된 것이다.
이상을 중시하는 시인은 낭만주의자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고, 가난도 덤으로 얻게 된다. 그의 에세이 『진지하면 반칙이다 』에는 우리의 현실에 맞춰서 살아가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의 고난이 느껴지곤 한다. 이 책에서, 그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질문 두가지, 『시인은 술을 왜 먹는가? 』, 『시인은 술을 들기는가 』 에 대한 힌트를 얻게 된다. 나와 소통하는 이들 중에서 시인이 다수 있다. 그분들과 자주 만나는 곳은 술집이었다. 그리고 말술을 즐겨 먹곤 한다. 가난으로 인해 세상과 멀어질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세상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스스로 진지함에서 벗어나는 길이었다. 이상과 멀어지고, 현실과 타협하고, 세상의 입맛에 맞게 시를 쓰게 된다. 뒤돌아서서 술 한잔 기울이며, 눈물 한잔 기울이게 된다. 고뇌와 슬픔이 술을 부르게 되는 것임을 ,류근 시인의 삶에 오롯히 느껴지고 있었다. 시인이 정치에 관여하는 세사을 살고 있다.
책의 백미는 『태백산 꿀도사 』시리즈에 있다. 진지함과 거리를 두고 있는 『태백산 꿀도사 』이야기에서, 나는 삶에 대한 존중, 사람에 대한 민폐에 대해 한번 더 꼽씹어 보게 된다. 삶에 예의를 갖추고, 타인에게 민페가 되지 않기 위해서, 조심스럽게, 돌다리도 건너오면서 살아온 지난 날을 꼽씹어 본다. 그 기준에 벗어나면, 응징하느 것을 너무나 다연하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태백산 꿀도사』이야기에서 넘어갈 수 밖에 없다. 라면을 삼시 세끼 먹는 지난한 류근 시인에게, 가난한 이에게 가난을 무기로 합법적인 사기를 치는 이 가 바로 태백산 꿀도사이다. 시인 류근은 그 가난한 이를 너그럽게 대하고 있었다. 그러한 존재가 내 곁에 있다면, 그런 이들을 밉상이지만, 미워할하 수 없는 상대로 인식하게 된다. 이 대목에서, 인생을 돌아보았다. 세상은 온전히 깨끗하게 살 수 없다. 그러면서, 깨끗한 삶을 꿈꾼고 있다. 그래서, 주변에 한 두 명 정도,태백산 꿀도사와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깨끗한 물 위에 풍팔 일으키는 사람, 스스로 바꾸지 않으면, 훅 들어오게 만드는, 나를 강제로 바꿔 놓은 소중한 민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