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간입니다
원장경 지음 / 그래비티북스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온몸이 기울었다. 팔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눈이 감기지 않았다. 눈알도 움직이지 않았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온몸이 굳었다. 그대로 바닥에 누웠다. 그때 저 멀리 총구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았다. 이때 난 알았다.

나는 죽었다.

아파서도 앓아누워서도 안 되는 내가, 죽었다. (-34-)

병사들은 이미 뜯기고 있었다. '그들' 은 총알 따위 무사하고 벽 넘고 언덕 타고 사방으로 들쑤셨다. 실전 경험 없는 어린 병사들은, 아니 설령 있다하더라도 이런 괴물들의 상대는 될 수 없었다.(-101-)

그날, 아내는 내게 벨트 호신술을 가르쳐 줬다. 버클형 벨트를 사준 이유였다./

그 벨트 버클이 지금, 유난히 햇빛을 잘 받고 있었다. 마치 눈길 좀 달라는 것처럼 빛났다. (-141-)

마침내, 은발이 있었다. 찾았다. 근데, 아니, 찾은 게 아니었다. 뒷모습만으로도 아내가 아닌 걸 알 수 있었다. 실루엣 , 키, 옷차림, 풍기는 기운이, 아내 특유의 분위기가 없었다. 저 여자는 내 아내일 수가 없었다. (-210-)

제가 쓰는 이 편지가 여러분께, 그리고 제 가족 특히 아내에게 무사히 전달되길 바라며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마음이 급해 글씨도 내용도 엉망이겠지만, 그냥 편하게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54-)

우리 삶 어디에도, 현실 속 좀비는 없다. 실제 우리 앞에 , 좀비와 비슷한 이들을 찾아본다면, 나병 환자들이 거기에 해당될 수 있다. 단 외모만 그렇지, 실제 좀비의 특수한 능력은 그들에게 현존하지 않는다. 현재 우리 앞에 놓여진 수많은 좀비들은 격리되거나, 갇혀 지낸다. 소록도에 있는 그들조차도, 우리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 앞에 거의 보이지 않는 그들이기에 ,강력한 힘을 지닌 못생긴 좀비 이야기에 열광하게 된다.

소설 『나는 인간입니다 』는 전혀적인 한국형 좀비소설이다.소설에서 , 주인공 모 회사 박복한 가장이 있다. 전형적인 회사원으로서, 가정에 충실한 가장에 불과하다. 그러한 박복한 과장이 음주운전을 하고, 예고되지 않은 죽음을 겪게 되어야 했다.

박복한 과장은 죽었지만, 죽지 않았다. 말 그대로 박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박복한 과장이 눈을 떳을 때, 어떤 바이러스에 걸려 있는 주변 사람들을 보게 된다. 오로지 자신만 인간으로서, 살아남게 된다. 자신의 아내, 야전 직업 군인처럼,군대를 실제 나온 박복한 과장보다 더 군인으로서, 자세를 보여주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다. 그러한 아내가, 괴물이 되었고, 막복한 과장은 절망하게 된다.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 홀로 인간이 되어야 하는 삶, 괴물이 된 아내를 회복시키고 싶었던 박복한 과장의 눈물겨운 사투와 고통, 지뢰에도, 수류탄을 던져도, 어떤 무기에도 죽지 않는 좀비의 모습 속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고자 하였던 박복한 과장은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비책을 찾기에 이르었다. 지극히 가정적인 좀비 소설 속에, 우리가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도 극복할 수 있다는 점 뿐만 아니라, 좀비로 살아가는 상황이 있더라도, 잃어버리면 안되는 것이 무엇인지 한 권의 소설 속에 함축되어 있다. 절망 속에 따스함이 느껴지는 한국형 좀비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