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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노동시집
김윤태.맹문재.박영근.조기조 엮음 / 비(도서출판b) / 2003년 12월
평점 :
공장
덜컥 덜컥 덜컥
공장이 기계가 돌아갑니다.
무수한 직공의 피묻은기계가
소리를 지르며 돌아갑니다.
덜컥거리는 기계소리
그것은 가련한 일군의 울음소리입니다.
굴뚝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
그것은 그들의 한숨의 모임입니다.
비오는 어느날, 공장의 창문이 열리면서
핏기 없는 얼굴 하나이 가냘픈 손으로 턱을 고이고
지나가는 비단옷 입은 행인을 내여다보다가
창안에 호령소리, 그의 얼굴은 사라집데다
지금의 공장은 그렇게 고생이라니
언제나 웃음소리 그곳에서 새여나오리까
『사람은 일해야 마땅하고, 일하면 반드시 먹는다 』 고 이웃집 선생님은 가르칩데다. (조선시인전집,1926) (-41-)
거지반 헐벗고
도적이 버리고 간 옷을 주서 입고
가을바람을 안으며 거리에 나선다.
잃어버린 옷 같은 건 쉬 도루 작만하려니
하였든 것인데
그냥 우는 아기와 함께 아침을 건너
언제도 몇 차례 쫓겨날지 모르는 회관에의 길을 간다.
가다가
옛처럼 욕보게 무딘 네거리에 서면
불보다도 붉은 깃발 데모의 나날
정녕 미움을 아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리워
사뭇 참다운 것
우리의 잎이 그리워
도적이 버리고 간 옷을 입고도
내사 바램이 많아서 한거름이라도 물러서진 못하겠다. (전위시인집, 1956)(-182-)
전태일
한국의 아들아
네 이름은 무엇이냐
내 이름은 전태일이다
한국의 산악들아 강들아 들판들아 마을들아
한국의 소나무야 자작나무야 칡덩굴아 머루야 다래야
한구의 뻐꾸기야 까마귀야 비둘기야 까치야 참새야
한국의 다람쥐야 토끼야 노루야 호랑이야 곰아
너희의 이름은 무엇이냐
우리의 이름은 전태일이다
백두에서 한라에서 불어 오다가
휴전선에서 마나 부둥켜안고 뒹구는
마파람이 높바람아
동해에서 서해에서 마주 목놓아 우는
하늬바람아 샛바람아
너희의 이름은 무엇이냐
우리의 이름은 무엇이냐
우리의 이름이라고 뭐 다르겠느냐
우리의 이름도 전태일이다.
깊은 땅 속에서 슬픔처럼 솟아오르는
물방울들아
너희의 이름은 무엇이냐
우리의 이름이라고 물어야 알겠느냐
한국 땅에서 솟아나는 물방울치고
전태일 아닌 것이 있겠느냐
가을만 되면 말라
아궁이도 못 들어갈 줄 알면서도
봄만 되면 희망처럼 눈물겨웁게 돋아나는
이 땅의 풀피리들아
너희의 이름도 전태일이더냐
그야 물으나 마나 전태일이다.
청계천 피복 공장에서 죽음과 맞서 싸우는
미싱사들 시다들의 숨소리들아
너희의 이름이야 물론 전태일일 테지
여부가 있나
우리가 전태일이 아니면
누가 전태일이겠느냐
어찌 우리의 숨결 뿐이겠느냐
우리의 맥박도 야위어 병들어 가는 살갗도
허파도 염통도 발바닥의 무좀도
햇빛 하나 안 드는 이 방도
천정도 벽도 마루도
삐걱거리는 층계도
똥 오줌이 넘쳐 냄새 나는 변소도
미싱도 가위도 자도 바늘도 실도
바늘에 삐려 피나는 손가락도
아~깜깜한 절망도
그 절망에서 솟구치는 불길도
그 불길에서 쏟아지는 눈물도
그 눈물의 아우성 소리도
무엇 하나 전태일 아닌 것이 없다.
전태일이 아닐 때
우리는 배신이다 죽음이다.
우리는 살아도 전태일 죽어도 전태일이다.
빛고을에 때아닌 총성이 요란하던 날
학생들 손에서 총을 !빼앗아 들고 싸우다가
전사한 양아치들아
너희듥도 당당한 전태일이었구나
먹을 것 마실 것 있는 대로 다 내다가
마낌없이 나누어 주면서
새신랑 맞는 처녀의 가슴으로
떨리기만 하던 티상(창녀)들아
너희들도 청순하고 자랑스런 전태일이구나
전태일 아닌 것들아
다들 물러가거라
눈물 아닌 것,아픔 아닌 것 절망 아닌 것
모든 허접쓰레기들아 모든 거짓들아
당장 물러들 가거라
온 강산이 한바탕 큰 울음 터뜨리게 (난 뒤로 물러설 자리가 없어요, 1984) (-266-)
면목동 죽세공
세상 밖에 밀려나와 시린 눈 호로 뜨고
낮별이나 찾으며 바구니를 엮는다
생긴대로 살고 싶어 대나무를 쪼개고
칼날에 반짝이는 햇빛으로 비쳐보면
그립고 그리워라 대창 던지던 시대에
대활로 푸른 하늘 겨누던 아버지
대피리 불면서 하염없던 어머니
대나무에 맡겼던 생애는 왜 덧없었을까
꺽이지 말거라 당부하던 이곳에서
아버지 피 쏟으며 대밭에 쓰러졌고
어머니 댓잎을 흔들며 미쳤어도
어우러져 살고 싶어 바구니를 엮는다
둥글게 둥글게 휘어가는 삶으로
마디마디 옹근 세월 불에 달궈 구부리고
빈 마음도 비틀어 얼기설기 곁지른다
날과 씨 여러 올이 엇갈려 밑바닥 되고
서너 겹 둘러서 테두리가 짜여지면
예전엔 이웃들 살림살이 담았건만
무얼 담나 지금은 걱정이 앞서나니
희망없는 세상밖에 바구니를 들고 서서
맞별이나 떨어지길 기다리며 눈을 감는다.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1981) (-397-)
용접공의 노래
잘라버려야 할 쇳덩어리와
이어 붙여 하나로 만들어야 할 쇳조각들을
우리만큼 정확하게 가려낼 줄 아는 사람이 또 어디 있겠어
쇠와 불의 성질을 낱낱이 헤아려
불길의 세기며 불길을 들이밀어야 할
때와 곳까지 제대로 짚어낼 줄 아는 사람이
한낱 돌메이 속에 잠들어 있는 불씨들을 깨워내
창끝처럼 불길을 모아내는 일이나
쇠의 두께와 굳기를 살펴 정신을 한데 모으고
숨을 멈춘뒤 힘껏 불길을 통해내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어
박자와 호홉을 맞추는 일은 더더욱 그렇고
머리로 배운 게 아니야
온몸으로 배우는 거지
이 세상 밑바닥을 붉은 알몸으로 휩쓸어 다니면서
날선 모서리 죄 잃어버리고 난 뒤
솟구치는 노여움과 일렁이는 슬픔을
제대로 다스릴 수 있게 될 때까지
불은 아닌 내 것이 아니었고 쇠는 쇠대로
단호한 어둠으로만 남아 있었지
그러나 이제는 환하게 보여
쇳덩어리 속에 감추어진 마디와 결들
굽이치는 불의 흐름들이
그러므로 내게 물어 봐
이 세상을 칭칭 봉애먄 쇠사슬과
철조망들을 끊어버리기 위하여
동강난 경원선이며 경의선을 이어 붙이기 위하여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가를 , 혹은
당신들의 좁다란 가슴속에서
폭죽처럼 핀아났다가 시들어버리는
불씨들을 끌어모아 되살려내는 비결에 대하여
나에게 물어봐, 차갑게 굳어버린 머리가 아니라
펄펄 끓는 이 가슴과 억센 이 팔뚝에 (가시나무 그늘 아래서, 1994) (-519-)
아 김경숙 동지여
서글서글하고
목청 높여 노래 잘 부르던 김경숙
방가운 친구들을 생각하며
짓뭉개진 꿈을 이루려던 경숙
사장은
이런 경숙이들을 착취하여 번 돈을 미국으로 빼돌리고
별볼일 없다고
폐업을 결정하였다.
1979년 와이에이치 무역 동지들 신민당사 농성사건
"폐업 철회하라
노동자도 사람이다
생존권 보장하라
민주노동운동 보장하라"
혈서로 결단하고
선보에 서서 목이 터져라 외치던 경숙이가
시체로 발견되었을 때
그때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하고 있었는가
1,200 여 경찰이
노동에 닳고 찌든
와이에이치 184명 동지들을 개 다루듯이 연행할 때
우리는 무엇하고 있었느냐고!
가슴만 조이고 겁에 질려 있지는 않았는가
어떤 이들은 투신자살
어떤 이들은 어느 폭력배들의 폭력에 의한 죽음이라는데...
알 수 없이 죽음을 당한 우리 동지 김경숙
한창 어여쁘고 아름답게 피어야 할 스물 한 살의 꽃다운 나이
누가
그 꽃을 짓뭉개고
순진무구한 패기를 짓밟았는가
그러고도 뻔뻔스럽게
노동법을 개악하고
고속도로 경제성장 이룩했다고
기업이 커졌다고 우쭐대고 폼잡고....!
아....아 김경숙
8월 불볕더위보다 더 뜨겁게 살다 산 동지여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고
만민 평등 외치다 쓰러진 우리 동지여
나는
다시 동지의 이름을 뜨겁게 부른다
그리고
또다시 결단한다
결코 좌절치 않으리나
절대 굴복치 않으리아
우리 다시 힘 모아 일어서는 날
뜨겁게 김경숙 동지를 부둥켜 안는 날
그리고
삼천리 방방곡곳에 김경숙 동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그날을 위하여
우리 모두 단연코 각성! (동지여 가슴 맞대고, 1986) (-566-)
노동자 탓이요.
한보 무너질 때
쫓겨난 사람은 노동자입니다.
삼미 넘어갈 때
길거리에 나앉은 사람은 노동자입니다
기아 쓰러질 때
배고픈 사람은 노동자입니다.
주식이 폭락하고 환율이 급등할 때
주식 한 장 달러 한 장 가져보지 못한
노동자 허리만 졸라매야 합니다
노동자인 내가 죄인 되어
월급 묶이고 상여금 못 받아도
찍소리 없이 고개 숙인 채
잘리지 않기만을 바라야 합니다
한 달에 한 번 자식들과 삼겹살 먹으러 나간 게
아내 생일 날 큰맘 먹고 구두한 켤레 사준 게
올 여름휴가 프라이드 끌고 해수욕장 간 내가
과소비요 물가 상승의 주역이 되어
신문과 텔레비전에 오르내립니다
에이 더러버서 노동자도 못해 먹겠습니다. (그리고 여섯 해 지나 만나다, 1999) (-742-)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은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 분신 자살을 하게 된다. 그리고 9년 뒤, YH무역사건으로 블렸던 당시에 발생한 사건은. YH 여공이 신민당사 점거 농성 사건으로, 김경숙을 강제연행하는 과정에서,사망에 이르게 된다.1920년대 가난한 농촌 사회를 주축으로 형성되었던 대한민국은 서서히 기계가 들어서고, 공장이 들어서면서, 수제품이나, 방직공장에서 생산해낸 봉제 , 의류산업을 기반으로 경제성장의 교두보를 확보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의 장기근로와 저임금, 노동자의 피와 살을 갈아서, 자본으로 바꿔 버리는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이 숨어있었다.
대한민국, 열악한 노동 현실을 수록하였던 책 , 『한국대표노동시집 』 을 본다면, 근 100년동안 우리 사회를 바뀌 놓은 노동의 흔적들이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처음 흙을 터전으로 농사를 지었던 조선인은, 일제의 수탈정책에 의해, 조선 땅에 기계가 들어왔고, 경공업 위주의 공장이 설립되었다. 당시 기계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던 모습, 공포스럽게 바라보았던 그 상황이 시를 통해 자세히 묘사하고 있었다. 이후 박정희,전두환 쿠데타와 정권이 바뀌면서, 근대화 경제발전을 가속화하게 되었다. 노동자의 처우 개선에는 도외시하면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지 않게 된다. 자본가의 이익 카르텔에 따라서, 움직이는 대한민국의 처절한 아픔과 위선이 고스란히 시를 통해 기록되어 있었으며,미싱사 시다, 건설 노동자, 공장에서 단순반복, 위험한노동현실을 마주하기에 이르렀다. 평화시장 봉재노동자였던 전태일의 분신자살, 가발 업체 YH 무역 여성 노동자 김경숙의 죽음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노동운동이 들풀처럼 이어지게 된다.여성의 생리휴가를 강조하였고, 일과 휴식 보장을요구하였다. 그 전태일 정신이 지금까지 50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어지고 있으며, 전태일 기념관에서, 잔태일 열사를 기리고, 추모하는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자본가의 착취와 업압이 사라진다면, 노동시는 앞으로 과거의 한 역사가 될 것이며, 노동자의 처우는 충분히 개선될 여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