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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왼발 네 번째 발가락
김기화 지음 / 북나비 / 2022년 9월
평점 :
시간이 지나니 무릎 뿐만이 아니라 오른쪽 팔꿈치 까지 쓰라리고 아팠다. 까지고 생살이 드러나 피까지 맺혀있고 오른팔과 하께 땅바닥을 짚었던 왼손 엄지손가락과 손날 부분엔 시커먼 멍도 생겼다. 덕분에 얼굴은 흙먼지와 모래알에 눌린 흔적뿐 상처를 면하긴 했다. (-19-)
세번째와 다섯 번째 발가락 사이에서 양쪽의 눈치를 보며 어정쩡하게 매달린 작은 발가락은 또 다른 나의 모습이다. 나의 왼발,네번째 발가락은 그렇게 기둥 하나를 놓친 채 미완의 모습으로 세사에 나와 내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요건 중 하나가 되었다. 사실, 그건 흠도 아니고 어떤 일을 할 때 받는 핸디캡도 아니다.그런데 짧은 발가락에서 싹튼 열등감은 너울성 파도처럼 자존감까지 삼켜 버릴 때가 많았다. (-26-)
스물 여섯에서 하나가 빠진 스물다서 개의 뼈로 된 나의 왼발, 무엇이든지 부족하고 못난 것은 잘못이 없다. 하다못해 굽은 나무도 갈마가지가 된다 했고 눈먼 자식이 효도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동안 내 몸무게를 버텨준 나의 왼발, 그 발이 버텨줘 걷고 뛰고 서 있었다. 나의 왼발, 네번째 발가락은 내 몸에 붙은 죽비와 같았다. (-30-)
돌아가신 할머니가 시집올 때 가져왔다는 절구가. 팔십 년은 족히 지난 절구가 이 년만에 다시 불려 나왔다. 나무가 삭아서 바다로 모이는 하천처럼 골이 깊게 패 비위생적이라고 우겼지만, 올해는 내가 졌다. (-112-)
비가 오고 천둥, 번개가 치는 날은 작은 몸을 사시나무처럼 덜덜 떤다.그동안 뭐가 무서워서 그러는지 몰랐다가 최근에야 알게 된 것도 있다.전기밥솥 취사 음과 페트병 여다는 소리다. 가스 불이나 촛불에고 겁을 먹지만, 불꽃 축체를 즐기러 나갔다 겁먹었던 날의 일은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하다. 무섭다고 집을 향해 도망치느라 왕복 팔차선 도로를 무단 횡단했다. 그 후 한동안 밖으로 나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녀석은 영리하고 똑똑하다. (-124-)
도로 건너로는 나란히 늘어선 논배미 따라 하천이 흐른다. 물길 따라 이어진 산책롤르 걷느 사람들 모습이 달팽이 같다. 물길을 따라가다 보면 고속도로가 보이는데 이전엔 없던 새로 생긴 아파트단지가 낯설다. 고만고만한 높이의 건물을 지난 시선의 끝에 하늘과 맞닿은 선이 있다. (-175-)
내가 신은 등산화 역시 어느날은 타인처럼 어느 날은 분신처럼 지내온 고마운 인연 중에 하나다. 뽀얗게 쌓인 흙먼지를 하얀 장갑으로 툭툭 털어낸다. 돌부리와 나무 그루터기에 채였을 상처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내 발의 상처처럼 여겨져 쓰다듬어 본다. 그동안 내 발은 신발이 감싸준 덕분에 편안하게 산길을 누볐을 것이다. 내가 서로 다른 크기와 색깔의 울타리 같은 인연들로부터 위안을 얻으며 살아온 것처럼 말이다. (-247-)
안양 문인협회 소속 김기화님은 『그설미』, 『눈부신 당신의 시간을 헤아리며』, 『나의 왼발 네번 째 발가락 』을 출간하였다. 한 권한 권 책들은 내 아이를 시집 보내듯 마음의 생채기가 돋을 때가 있었다. 남들은 느끼지 못하는 인생사, 상처와 아픔 속에서, 내 속상함을 삭히면서 살아온 지난날의 세월의 편린들, 그러한 것들이 켜켜히 모여서, 시간이 되고, 내 삶의 근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저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타인의 시선을 항상 마음에 품고 살아왔다.
어느덧 할머니가 되었다. 견뎌온 세월,버텨온 세월,그 안에 왼발 네번째 발가락은 나의 죽비였다. 성장하다 만 발가락은 발가락 마디가 하나 사라졌으며.나의 숨어있는 장애가 내 아이와 내 손주에게 되물림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조심스럽게 삶을 살아오게 된다. 후회와 죄책감이 들게 되는 순간이다. 견딘다는 것은 희생 뿐만 아니라 시간의 머무름도 포함될 수 있다.그리워하게 되고, 남들보다 불편하지만, 그 불편남이 타인에게 민폐가 되지 않지를 바라는 그 마음이 느껴진다. 수필이 슬프게 침전하는 가운데, 위로와 치유를 얻게 된 것은 , 내가 가진 것이 저자보다 가진 것이 많다는 것에 대해서 , 나를 부끄럽게 하였다. 한편 내가 가지지 않은 것을 저자에게 있다는 것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지금 견딤이 저자의 견딤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에 , 심리적 위안와 내 삶의 등대 같은 하나의 지향점이 되고 있었다. 견딤이란, 낡음이란, 소중함으로 전환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