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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다른 세계에 산다 - 자폐인이 보는 세상은 어떻게 다른가?
조제프 쇼바네크 지음, 이정은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9월
평점 :

어느 날 저녁, 파리 근교의 한 체육관에 사람들이 모였다. 팀 버튼의 영화에서 듯 기이한 외모의 꺽다리 사내가 강연을 하고 있었다. 느릿느릿한 목소리에 억양은 이국적이었지만 정확한 단어를 사용했으며 재치가 돋보였다. 청중은 간간히 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17-)
어렸을 때 나는 이집트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다. 몇 년 동안 내 머릿속은 그 나라의 정보와 역사, 파라오의 30개 왕조 목록으로 가득했다. 최근에 파리 거리를 거닐다가 우연히 어느 진열창 앞에 멈춰 섰다. 이집트학을 가르치는 모 사설 기관 이름을 읽으며 나는 마음이 죄어드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46-)
사람들은 자폐인이 반복해서 즐겨 하는 판에 박힌 행동을 보며 경직되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자폐인 편에서는 그런 행동을 함으로써 심리가 안정되며 별다른 의문을 제기하지 않아도 된다. 옷을 입을 때 항상 맨 앞쪽에 놓인 셔츠를 입는다면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쉬워진다. 또 셔츠를 고른 다음에 해야 하는 다른 일이 정해져 있다면 안심이 되는 알고리즘을 지닌 셈이다. (-128-)
그로부터 몇 년 뒤 나는 시험 삼아 몇몇 선택과목을 수강하기 시작했는데, 대체로 흥미로운 분야를 다루는 수업이었다. 다시금 주변부로 이동한 것이다.특히 고대 중동 전문가인 다니엘 보디 교수는 내게 강한 이상을 남겼다. 비록 연말에 몸무게가 늘어나는 현상과 초콜릿의 관계를 비롯해서 정치 및 보건에 관한 그의 모든 견해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와 함께 공부할 때면 우가리트어나 히타이트어, 다른 고대 아람어가 어김없이 등장했다.게다가 그는 심리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이후 나는 다른 대륙의 대학에서 그가 기이한 형태를 보인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나는 그런 풍문이 다 칭찬이라고 생각한다.그의 수업은 성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그래서인지 나는 더 열의 있게 들었다. (-194-)
사람들은 흔히들 그런 상황에서는 "말하기 전에 입에서 혀를 일곱번 굴려야 한다" 와 같은 격언을 기억하라고 조언한다.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은 변덕스런 기분에서 나오는데,그런 기분은 시간이 조금 지나 이성적인 판단을 하게 되면 변할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런데 자폐 아동이나 청소년들은 단지 기다린다고 해서 그런 상황을 피해갈 수 없다. 그들은 보통 말로 상처를 주려는 의도가 없고, 또 자기가 그런 말로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점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207-)
단 인간 서커스의 익살꾼들과 달리 나는 공연을 끝내는 순간에 가면을 벗어 던질 수 없다. 학회라는 자리의 특성상 끝까지 진지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어떤 역할을 떠맡으면서 마지막 몇 초만이라도 그 역할을 벗어던지며 정상이라고 인정받을 권리가 없다는 사실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246-)
나는 방에 혼자 있을 때면 내가 자폐인이라고 느끼지 않는다.하지만 길거리로 나서면서 문제에 부딪친다. 나는 내적 세계 안에서 길거리로 나서면서 문제에 부딪친다. 나는 내적 세계 안에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판단하며 남들 못지 않게 자유를 누린다. 내가 외부의 어떤 일을 시도할 때 어려움이 생기고, 나는 그 일을 해내기도 하지만 대체로 실패한다. 그렇다면 나는 항상 자폐인일까? 아니면 밖에 있을 때만 자폐인일까? (-290-)
정상과 비정상에 대해서, 우리는 모호하고,애매한 입을 취한다. 나의 기준에 비추어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게 되는데, 그 기준이 상당히 개인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놓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어떤 일을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하는지 검증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와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이들,그들이 다수가 아닌 , 소수가 되었을 때,그들의 겪는 어려움이 어디까지인지 이해할 수 있다면,우리 삶은 서로 배려하고,이해할 수 있는 태도를 견지할 수 있다.
저자 죠제프 쇼바네크는 190이 넘는 키에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닌 자폐인이다. 그의 지적인 생각은 여느 평범한 일반인과 다를 바 있지만, 세상은 그를 단순하게 보지 않고, 역설적으로 이상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수많은 장애 관련 책들이 일반인들의 기준으로 쓰여졌고, 장애인 복지 정책 들 대부분이 그러하다. 정작 장애를 가진 이들 ,자폐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느끼지 못하고 있다. 즉 저자는 어려서,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스스로 말할 수 없었다.그래서, 의사는 병과 무관한 처방을 하게 되었고, 치료를 놓치는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다. 소위 자폐인들이 자신의 병의 상태가 어떤지 모른채, 이런 방식을 처리되기 때문에 생기는 오류다.
정상과 비정상, 자폐와 비자폐에 대한 기준은 모호하다. 그로 인해 여러가지 해석의 불분명함이 발생하게 되는다, 자신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의도치 않게 상대방에게 상처를 남길 수 있다. 그래서,우리는 오판을 하기 쉽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그 근거를 논하기 전에, 해결책을 만들기 급급하다. 자폐인들이 동무원 서커스단 처럼 취급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 사회가 강조하는 사회성, 사회적 규칙에 대해서, 자폐인들이 뒤떨어지는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자유와 평등이 그들에게 멀리 있고, 차별과 혐오,배척과 같은 부정적인 경험들이 눈앞에 보여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그들에게 긍정적인 겸험을 습득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 선택과 결정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조제프 쇼바네크의 생각과 판단 결정은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