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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꿈을 띄우다 - 대한민국 항공역사의 발자취를 따라서
최원문 지음 / 상상예찬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이념을 달리하는 정당과 단체들이 난립하여 사회 전체가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있을 때,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하여 실시될 총선거를 반대하고자 일어난, 1948년 4월 3일 제주도 폭동 사건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사회는 어수선하게 돌아갔다. 그러던 5월에 접어들어 통위부 조선국방경비대는 항공병과 전차병 등 '경력자 우대' 를 위시한 군인 모집 공고를 신문에 내고 거리의 여러 곳에는 벽보도 나붙었다. 항공부대가 창설된다는 것이다. 드디어 항공기술인들이 해방된 조국의 본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조선국방경비대 제6사단 7연대 (충북, 청주 소재)의 이강준 대위로부터 집으로 전갈이 날아왔다. 조선국방경비대에 항공대가 창설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몇 차례의 권유를 받은 후 학업을 중단하고 1948년 6월 15일, 제6사단 7연대에 입대하고 제3대대 1중대에 배속을 받게 되었다. 이 일은 곧 나의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26-)
AT-6의 정비 매뉴얼 번역은 검사반의 김만섭이 맡았다. 기술용어에 대하여는 필자와 홍성표 검사반장이 도왔다. 정비사의 재배치가 이루어졌고 필자는 AT-6 109호기를 맡게 되었다.AT-6 비행훈련지원을 위한 정비작업으로 바쁜 매일이 계속되었다. 요란한 엔진소리에 속도는 느리고 무장은 전혀 안 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비행기가 전 금속제 라는 점에서 정비사들은 모두 흐뭇해했다. (-46-)
대전비행장은 일제치하에서 한생들의 활공 훈련용으로 만들어진 것으로서 '국내 비행장 일람표' 에도 들어있지 않은 미약한 것이었다. 특히 눈이나 비가 오는 겨울철에 비행기가 이착륙만 했다하며 어김없이 활주로는 진창으로 변해버리는 열악한 것이었다. 잔디도 없는 맨땅에다 램프도 없고 불과 10미터 안팎의 좁은 폭에 1,000미터 안팎의 짧은 활주로는 중무장을 한 F-51D 전폭기의 출격작전에는, 더욱이 훈련이 불충분했던 우리 조종사들에게는 매우 부적합한 곳이었다. (-122-)
한국전쟁을 통해서 가장 큰 활약을 한 비행기였는데도 가까이 에서 구경조차 할 수 없었고 부럽기만 하던 F-86F 전투 폭격기를 직접 다룰 수 있게 되었다는것에 모두의 설렘은 이루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말로만 듣던 제트엔진을 처음 대하는 감격과 F-51D 와는 비교가 될 수 없는 발전된 기체구조와 성능 무장 화력제어능력 등에 모두의 감탄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172-)
다음해인 1967년에 접어들어 국정 운영사의 필요해서 뿐 아니라 나라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헬리콥터 외에 대통령의 대형 전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각계의 여망에 따른 청와재의 요청을 받아 공군에서는 기 계획을 추진하게 되었다. 여유 있는 나라살림이라면 제대로 된 장거리용 제트여객기를 사오는 것도 좋겠지만 최종적으로 결정된 방안은 이미 사용 중에 있는 4기의 피스톤 엔진이 달린 프로펠러 형 C-54 수송기 201호를 개조하는 것이었다. (-226-)
해가 바뀐 1978년 정초, 그룹 내 한일개발(주) 사장을 얼마 전 맡게 된 조중건 부사장으로부터 호출을 받았다.이번에도 의외의 제의를 받았다. '한일개발을 막상 맡고 보니 사우디 지역 여러 곳에서 건설공사를 벌리고 있는 중요한 시기에 회사의 매니지먼트가 너무 엉망으로 돌아가고 있어서 이것을 바로 잡아달라는 청을 하기 위해 부른 것이니 나를 좀 도와 달라'는 간곡한 사연이었다. 필자는 그룹의 해결사가 된 느낌마저 들어 당초엔 그 제의를 한사코 거절하였다. "아니 건설은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인데 무엇을 하라는 것이지요?" "(-280-)
1990년 8월 31일부터 이틀 동안 6.225 전쟁 중 공군 유일의 전투부대로서 휴전 때까지 대북 출격작전을 감행해 오던 강릉공군기지에서 한국전쟁 발발 40주년을 기념하는 '6.25 참전용사 초청행사'가 있었다. 53명의 옛동지들이 참석하여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그중에서 포함되었던 24명의 예비참전 정비장교들이 뜻을 함께한 관심사는 당시까지 유지되고 있는 친목모임인 정우회는 필시 얼마 후에느 회원들이 모두 타계해서 소진되어 버릴 것인즉 영속될 수 있고 사회적으로 특히 항공분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범국가적 조직을 출범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299-)
저자 최원문의 『하늘에 꿈을 띄우다 』 를 읽어보면, 항공기술의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이 6.25 국난의 위기를 극복하고, 항공분야에 있어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데 있어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는지 간파할 수 있다. 저자 최원문은 1929년 충부 청주 출신이다. 그가 비행기에 관한 배움과 실제 항공 정비를 할 수 있었던 시기는 대한민국 국내외적으로 혼란기와 엮이고 있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태평양전쟁, 6.25 전쟁을 거치면서, 대한민국 항공 사업이 어떻게 변하였는지 이해할 수 있다. 강릉공군기지를 근거로 하여, 북한과 전쟁 대치를 하였던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으며,이후 6.25 전쟁 이후,대한항공 기술담당 임원으로서, 항공사의 선진화를 위한 10년간의 노력이 표출되고 있다.오로지 항공 정비, 항공기술에 매진하였던 저자에게 이후 항공 관련 경영에 일을 할 수 있었던 계기를 만들었으며, 대한민국 대통령 전용기가 처음 어떻게 준비되었는지 흐름을 꿰뚫고 지나가고 있다. 미약하고, 부족했던 1960년~1970년대 대한민국 현주소르 엿보게 된다. 일본의 강압하에 살았던 암울한 시기를 지나서, 6.25 전쟁에서 공군으로 애국심을 몸으로 체득하였던 당시,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활주로의 상황 뿐만 아니라,. 그 당시 대한미국 남한의 도로 현주소, 전쟁 현주소를 A부터 Z 까지 간파하였으며,기록과 경험에 근거한 시대적 변화를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