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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인문학 - 그 골목이 품고 있는 삶의 온도
임형남.노은주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10월
평점 :
천천히 걸어가는 속도로 편안하게 이야기를 듣는 것, 골목에서 만나는 인문학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문학이란 궁극적으로 사람 이야기이며 사람의 자취라고 보면, 골목이야말로 사람의 자취와 사람 이야기가 듬뿍 담겨 있는 나이테와 같은 장소일 것입니다. (-9-)
서울의 오래된 골목길들도 더럽고 냄새난다고 밀어버리려는 사람이 있었고, 드물게 골목이나 서울의 오래된 구불구불한 동네의 가치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예전에는 가치를 지키려는 사람은 좀 진부한 사람 혹은 쓸데없는 고집쟁이로 몰렸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며 반듯한 넓은 길이라는 것이 결국 사람보다 자동차를 위한 길이 되었고, 지을 때는 번드르르하던 연립주택과 다세대주택이 20년도 지나지 않아 땟국 짜르르 흐르는 볼품없는 풍경으로 전락했다. 아파트 역시 그런 운명으로 접어들 무렵 사람들이 점점 얼마 남지 않은 골목으로 몰려들어 이제는 아주 바글거린다. 그리고 그들은 그 골목에 이상한 생명체를 이식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백송의 분신과는 좀 다른 '상업성'이라는 기생명체다. (-41-)
눈을 쭉 따라 들어갔더니 길 끄트머리에는 대문이 달려 있었다. 호기심에 그 앞을 걸어갔다. 문이 잠겨 있었고 틈으로 들여다보닌 제법 큰 건물이 보였다.'여남강당'이라는 건물이었다. 그 건물은 영양 남씨의 시조인 남민 南敏의 위패를 모시던 여남서원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97-)
익선동이 그렇게 변화하고 있다.서울 한가운데 이런 고요함을 가만히 놓아둘리가 없다. 몇몇 '선각자' 가 그곳으로 들어가 시간의 때가 곱게 내려앉은 한옥들을 손보아 '모던' 하면서도 '빈티지' 한 느낌의 카페로 고치는 일이 도미노처럼 혹은 한겨울의 들불처럼 번져 나가기 시작하면서 이곳은 서울의 도 다른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젊은이들이 몰리고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몰리면서 이곳 역시 사람은 자꾸 밀리고 커피나 피자, 여유와 낭만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추상'으로 채워지고 있다. (-141-)
남성성과 자의식 과잉의 콜레지오네에 비해 네즈미술관은 복잡한 심경을 가진,그러나 부드럽고 정중한 일본의 성격이 그러나는 건축이다.대나무와 깊은 그늘로 길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소박하지만 엄정한 진입로를 거치면 ,과장된 크기와 칼로 베어낸 듯 날카로운 지붕이 있는 새로 지은 미술관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 안은 넓은 정원에 조경이 다양하고, 네 개나 되는 다실 등 여러 건물로 꾸며져 있다. 역시 일본의 정원답게 마무리가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으며 정연하다. (-202-)
남산골 한옥마을에 들어서면 제일 처음 만나게 되는 집이 바로 '순정효황후 윤비어천가'라고 가운데 마당이 있는 네모반듯한 집이다. 골격이 늠름하고 집안의 공간이 호방하면서도 구석구석은 아기자기한 집인데, 단순하면서도 기품이 있다. (-255-)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은 이문설농탕이라는 곳이다. 1902년에 우리나라 요식업 1호로 등록했다고 하니 개업한 지 110년이 넘었다. 이문설농탕은 음식 맛도 좋지만 연륜만큼이나 많은 사람이 들락거렸고, 특히 일간지에 연재되었고 후에 <장군의 아들> 이라는 영화의 원본이 되었던 홍성유의 소설 『인생극장』 에서 혈기 방장하던 시절의 '종로 주먹' 김두한이 자주 들락거렸던 식당으로 여러 번 나와 그 이름이 귀에 익숙하다. (-304-)
몇 년 전 여름의 끄트머리쯤 양동마을에 드렀다.평소처럼 동네 초입에서 만나는 향단과 관기정을 들르고 심수정고 들르고 서백당으로 갔다. 대문채를 들어서는데 어떤 어르신이 대문과 바로 붙어 있는 사랑채의 높다란 마루에 앉아서 쭈삣거리며 들어서는 우리를 반겼다. 알고 보니 그분은 서백당의 종손이었고,낯선 이들의 방문을 환영하며 마음 편히 둘러볼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340-)
저자 임형남과 노은주는 부부이며,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동문이며, 1999년부터 부부는 『가온건축』을 운영하고 있으며, 두부부가 쓴 책이 공저로 되어 있었다. 책 『골목 인문학』 을 선택한 것은 우연한 이유였다. 지역 도시재생 프로그램 중 하나가 골목기획이며,그 기획을 소화하기 위해서 참고한 책이 바로 『골목인문학』 이다. 이 책은 우리가 생각하는 골목에데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덜어내고,골목의 낡음에, 새로움과 인문학적 요소를 채워나가고 있었다.바낡음이 '역사'로 탈바꿈하는 셈이다. 정돈되고,정리되며, 전통을 살리고, 문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골목 인문학의 핵심 본질이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 골목에 대한 이미지, 골목이 사라지는 이유, 골목인문학의 필요와 가치,문제의식까지 통섭할 수 있게 된다. 골목은 생산보다 쇠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가치가 소멸되고 있기 때문에,골목은 방치된다. 그래서 그 가치를 만들기 위해서, 골목을 다시 해체하고, 다시 정비한다. 도시재생,재건축이 여기에 등장한다. 골목은 사라지고 있으며,그 원인으로 골목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자본주의 사회가 추구하는 자본과 상업을 심어주고, 골목의 집집의 부동산 가치,투자가치를 높이기 위함이다. 하지만 골목의 좁은 길을 길게 넓히는 과정에서 한옥집 ,함석집이 도로로 편입되면서, 골목은 사라지고,그 빈자리를 자동차가 차지하고 있다. 한 때 우범지대로 생각했던 그 공간에 대한 인식 탈바꿈이 시작되려면, 무엇을 보존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선별기준이 명확해야 한다. 즉 골목에는 길이 있고, 공동체가 있으며,역사와 전통이 있다. 특히 역사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역사와 문화재를 끼고 있는 골목은 대체적으로 개발이 제한되어 있었다. 골목이 주는 이미지,조용하고,아늑하다는 것을 부각시키며,삶의 느림에서 얻는 산책길, 여유와 낭만으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삭막한 도시와 이웃 간의 정이 사라지고 있는 요즘 현실 속에서, 골목이 회복되려면, 어떤 것, 골목이 만들어지려면,골옥의 가치와 의미를 부각시킬 수 있는 수단과 도구, 스토리가 필요하다.여기에 빠름이 아닌 느림으로 채워질 수 있는 사회적 정서가 어떤 것이 있는지 하나 하나 따져 물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