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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응의 빛살 ㅣ 파란 로고스 PARAN LOGOS 4
이찬 지음 / 파란 / 2021년 10월
평점 :
김수영이 선취한 두 갈래의 '그림자'이미지는 플라톤이 정립했던 시뮬라크르의 저열한 가치 체계 전체를 전복하고자 했던 들뢰즈의 철학을 통해 좀 더 깊은 사유의 선으로 확장될 수 있을 듯하다. 적어도 들뢰즈에 따르면 ,'하는' 의 '그림자'는 플라톤이 추방하고자 했던 가상으로서의 시뮬라크르일 것이며,"민주주의의 싸움" 의 '그림자' 는 들뢰즈의 새로운 시뮬라크르일 것이 틀림없다. (-42-)
1990년대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은 멕시코의 시인 옥타비오 파스는 보들레르의 시 『만물조응』 을 두고 "인간은 사물들의 언어를 궁극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 언어와 의미의 숲을 헤쳐 나간다" 라고 읊조린 바 있다. 이 해석은 물론 '만물조응' 으로 표상되는 우주적 아날로지가 근대인의 경험적 현실에서 결국 구현되거나 관철될 수 없는 상태, 이미 깨어진 거울 현실에서 결코 구현되거나 관철될 수 없는 상태, 이미 깨어진 거울 형상에 이르렀음을 암시한다.(-186-)
시인은 "내 시는 외부의 어떤 상황이 아니라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진광풍의 부침을 반조하는 세계다. 설사 외적 상황을 건드려 시화했다 하더라도 그 외적 상황이나 정경의 묘사는 그것을 통해 내명세계를 투사해 본 반사물인 것이다." ( 『헛날갯짓』 )라고 말한다. (-281-)
꽤 오래 살았다. 당신은 땅과 사랄이 서로를 떠미는 기찻길에서 차라리 노랗고 키 큰 중장비를 사랑했네. 담요를 덮고 술잔을 치우고 조율만 잘된 기타를 만지작거리면서
우리는 반짝이는 곳만 바라보았다. 누가 저건 항공장애등이라 했고 누구는 저걸 납품하는 회사 이름을 안다고도 했지만 누구도 오래된 건물과 밤바람을 추억할 순 없었다.
또 오겠다고 쉽게 말하면서 , 자주 모이는 작은 별빛인 척하면서 아무도 기중기가 되고 싶다고 말할 순 없었다.
나는 캄캄한 하늘, 반짝이는 꼭대기에 앉아
하얀 안전모 같은 고양이를 안고 싶었다. -『수색 』 부분 - (-370-)
"냄새의 고고학"이라는 표제어에 축약된 것처럼, 시인의 몸 깊숙이 새겨진 "바다" 는 "어스름 속 단발머리 아이" 였던 과거의 한 시절이든 "두루마리 휴지처럼 소리를 풀어내는 여긴 어디?" 라고 묻고 있는 현재의 순간이든 기어코 사라지지 않는다. (-491-)
이처럼 '천지만물'의 감응과 감통의 관계를 인술하고 있는 『주역 』의 괘로는 풍택중부(風澤中浮)의 택산함(澤山咸)을 예시할 수 있을 것이다. (-570-)
날이갈수록 가벼운 것이 좋아진다. 가벼워진다는 것은 무릎의 각도를 펴고 바람을 쐬는 일 조금 더 무게를 덜어 내며 무게와 무게 사이로 물길을 내는 일이다.
물들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며 차곡차곡 챙겨 넣어 두었던 계단 아래 창고 속에서 탈출하는 아침. 펑퍼짐하고 가장 가벼운 옷을 고른다 색깔도 맵시도 다 버리니 매달릴 일 없이 잠시 누워 있다 일어나기도 하고 그대로 다시 누울 수 있으니 좋다.
살 안에서 살 밖으로 살 밖에서 살 안으로 드나들 수 있으니 묶인 것들을 적시고 적신 것들을 다시 풀어 햇살에 내어놓으니 아침이 솜털처럼 웃는다. 향낭(香囊)이다. -『가벼운 것이 좋다 』 전문 (-664-)
옥타비오 파스가 "아이러니는 아날로그가 피를 흘리는 상처이고, 필요악이라는 의미에서 숙명적 예외이고 사고(事故)이다. 아이러니는 만일 우주가 문자라면 그 문자에 대한 각각의 해석은 상이하다는 것과 상호 교감의 합창은 바멜탑의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라고 말한 대목을 오랫동안 느릿느릿 음미해 보라. 이 대목을 통해 과학적 세계관이 생활세계에 부리박은 현대 세계에서 아날로지와 아이러니가 끊임없이 어긋날 수밖에 없을 그 길항 관계의 역동성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754-)
문학 평론가 『이찬』의 저서, 감응의 빛살이다.이 책을 읽고자 한다면 그의 전작 『헤르메스의 문장들』, 『시/몸의 향연』 을 읽은 뒤, 『감흥의 빛살』 을 읽어보는 것이 효과적이다. 저자는 2012년 제7회 기말진문학상 젊은평론가상을 수상할 정도로, 문학평론가로서 남다른 사유가 도드라지고 있으며, 이 책 『감응의 빛살』은 문학평론집으로 난해하고, 어렵게 느껴졌다. 책에는 주역 이야기를 기반으로 자신이 사유와 철학적 메시지를 시 작품과 연결하고 있으며,사화화한다. 책에는 들뢰즈의 철학, 보들레르의 시가 반복되고 있으며,왕가위, 봉준호의 영화를 등장시키고 있다. 시의 시상과 시인이란 어떤 존재인지 괘괄적으로 볼 수 있다.
시인은 시어를 통해 세상과 감응한다. 그래서 문장을 압축하고, 본질만 남기고, 하나로 줄여 버린다. 그래서 맥락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단어단어가 해체되고, 의미와 가치, 배경까지 전방위적으로 훑고 지나간다. 문학평론가느 그 각 역할을 한다. 시인이 알고 있지만 시에 압축해 놓은 것, 시를 읽는 독자는 모르는 것을 채워준다. 시인은 철학적 사유를 기반으로 사유의 깊이를 심층적 계단을 형성하고 있다. 시어와 시상의 변주가 도드라지고 있으며, 인간의 삶과 죽음을 훑고 지나가고 있었다.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 삼라만상의 이치, 상투적 인식구조 뿐만 아니아, 운명과 사상으로 예언자가 되고자 하였다. 절제와 여백의 미학이 시에 들어가며, 『플라톤과 시뮬라크르』 에 근거하여, 시뮬라크르의 내면 속 의미를 프라톤 철학에서 질 들뢰즈 철학으로 이행되는 전 과정을 평론집으로 엮어 나간다. 즉 어떤 우연적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의 사건이 연쇄적으로 다른 사건으로 연결되며, 그 과정에서 사유의 파동이 발생할고 있다. 저자는 시인의 역할을 철학자에 준하고 있다. 시인에게 철학이 없다면, 시는 힘을 잃어버리며, 시화하기 힘들다.인간이 자아의 근원을 이해하지 못하고, 시뮬라크르, 우주 삼라만상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의 내면 속 욕망에 충실하되, 부와 권력, 애욕, 명예, 향락, 탐욕의 실체에 접근해 나갈 수 있다.인간사회를 자연에 결합하면, 혼돈과 집착의 실체를 파헤치며, 시가 가지는 모티브와 상징, 은유의 실체에 접근해 나간다. 시인 김수영의 시가 가지고 있는 힘을 철학과 엮을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며, 예술적 초월은 어떻게 형성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으며, 인간의 상투적 의식구조에 강응하게 되는데,그 원리를 주역의 원리와 엮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