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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읊자 미소 짓다 - 선문답과 현대시의 교감
고재종 지음 / 문학들 / 2022년 1월
평점 :
철학자 이승종의 『우리와의 철학적 대화 』 를 보면 인간이 자연 속에서 행한 "생존에 필요한 초보적인 작업은 세상 만물을 인간의 입장에서 갈라보자는 것이었다. '나' 와 나 아닌 것,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더운 것과 찬 것, 해로운 사람과 이로운 사람 등등, 이러한 가름을 해나가다 인간은 가름을 좀 더 용이하고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이름' 을 고안하게 되었을 것이다. 먹을 수 있는 것은 '음식'으로 , 없는 것은 '독' 으로, 해로운 사람은 '적' 으로, 이로운 사람은 '친구' 로 등등, 언어는 이러한 가름의 작업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 꽤 그럴 듯한 언어 생성의 기원을 묘파하는 글이다. (-16-)
제비가 떠난 다음 말 시누대나무 빗자루를 들고
제비집을 헐었다.
흙가루와 알 수 없는 제비가 품다 간 만큼의 먼지와 비듬,
보드랍게 가슴털이 떨어진다.
제비는 어쩌면 떠나기 전에 집을 확인할지 모른다.
마음이 약한 제비는 상처를 생각하겠지
전깃줄에 떼 지어 앉아 다수결을 정한 다음 날
버리는 것이 빼앗기는 것보다 어려운 줄 아는
제비떼가 , 하늘 높이 까맣게 날아간다.
-이윤학 『제비 』 (-41-)
존 밀턴의 『실낙원 』의 주요 인물들은 신, 아들, 사탄, 아담, 천사들까지 모두 남성이며 여성은 사탄의 머리에서 나온 죄와 아담의 갈비뼈로 만든 이브 뿐이다. 이것은 여성이 모두 남성에게서 파생된 존재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렇게 생긴 사회는 전적으로 가부장적 구조이다. (-97-)
선이 무엇인가, 내가 좋아하느 일을 하는 것이다. 악이 무엇인가,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시키는 것이다. 그러기에 선도 악도 생각지 말라는 것은 내가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 일이 모두 다 무의미해질 때, 선과 악의 분별을 넘어선 더 큰 문제가 닥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종교의 은혜로운 메시지에 반해 사람은 결코 구원받지 못한다. 아우슈비츠의 사진을 보고도 인간의 구원을 믿는
현상학의 태구 에드문트 후설(1859~1938) 은 마음이 가진 특성을 '지향성(intentionality)'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의 마음은 늘 무엇인가에 쏠린다는 것이다. "지향성 없이는 객관과 세계는 우리에 대해 현존하지 않는다" 고 말이다. 정미를 들고 그녀에게 가는 나의 마음이 곧 세계의 현존인 것이다. (-121-)
마음 그릇인 일원상 속에 가득 담긴 이 마음을 찾아야 할 대상, 지켜야 할 대상, 밝혀야 할 대상, 바루어야 할 대상, 길들여야 할 대상, 가꾸어야 할 대상, 채워야 할 대상, 뭉쳐야 할 대상, 맑혀야 할 대상, 비워야 할 대상이라고 정의한다. 이렇게 마음을 수련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이 가장 어렵다. (-208-)
진지한 것은 삶의 예의다.하지만 너무 진지한 것은 또 집착이다. 때론 나비처럼 가벼움 속에 삶의 희열과 예술이 있다.그 가벼움이 고정관념과 규정을 미끄러지듯 스치며 횡단해버린다. 신발은 발에 신는 것이기에 신발이다. 모자는 머리에 쓰는 것이기에 모자이다. 하지만 그런 이성적이고 규정적이고 불변적인 진리라고 여겨지는 은산철벽 같은 것을 깨서 나비처럼 가벼운 희열의 날개를 다는 것이 선이다. (-216-)
프랑스 철학자 엠마누엘 레비나스 (1905~1995) 는 "타인의 얼굴은 일종의 계시이다. 타인의 얼굴은 나에게 명령하는 힘으로 다가온다. 이 힘은 강자의 힘이 아니라 상처받을 가능성, 무저항에서 오는 힘이다." 라고 한다. 여기서 타인의 얼굴은 강자가 아니라 바보와 같이 하릴 없는 약자의 얼굴이다. 무력하고 무저항하기에 그 얼굴이 바로 계시다. 세상에서 무력하고 무저항하는 얼굴로 사람들의 모든 경계심과 분별심을 풀어놓는 게 바보와 성인이 아니고 누구던가. (-259-)
평생 시 한줄 소설 한 편 읽기 않고도 많은 돈을 벌고 높은 권력을 누린 채 떠난 사람은 전생에 업이 없어서 그렇게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았을까. 하지만 그는 그 많은 재물과 높은 권력을 얻는 데 있어서의 불의와 불공정, 그 많은 재물과 높은 권력을 얻는 데 있어서의 불의와 불공정, 그 많은 재물과 높은 권력으로도 이웃의 생존의 외침에도 돌아보지 않은 업은 분명코 그의 해탈을 막았을 것이다. 그는 선(善) 의 관계성을 불선(不善) 의 관계성으로 전락시킨 업을 후생만이 아니라 현생에서 이미 혹평으로 받는다. (-306-)
그렇게 화두 곧 '생각'을 놓치니 삶이 보이지 않고 우리는 헤아려지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헤아려지지 않는다."는 것은 너와 나의 관계조차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는 지경에 놓여 있다는 말이다. 사람에게 고뇌 곧 스트레스는 그것과 적당한 관계를 유지할 때는 정신의 쇄신과 생명의 선도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양어장에서 서울 판매처로 미꾸라지를 실어 나를 때 수조에 메기를 몇 마리 넣어두면 장시간의 여로에도 미꾸라지는 싱싱함을 유지한다고 한다. 메기에게 먹히지 않으려고 미꾸라지가 활발하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323-)
그리고 『임제록 』 에 '수처작주 입처개진' 곧 자기가 처한 자리에서 주인이 되면 그곳이 바로 진리가 펼쳐지는 곳이라는 말도 있다. 모두 리좀적 사유의 예들이다. 그러고 보면 들뢰즈는 불교에 이미 있던 사유를 객관적 상관물을 동원하여 구체화시킨 것일 뿐인가. 지혜는 많은데 실천은 없다. 사회가 점점 삭막해지는 이유다. (-375-)
칼날 위에 무지개가 매일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시르 쓰는 데 있어 앞이 침침하고 흐려진 날이면 느리게, 조심하며 시신의 칼날을 숫돌에 잘 벼려 두는 것이다. 식칼도 대검도 검도도 아닌 굳이 용도를 확정 지을 필요가 없는 시심의 칼을 무지개가 사는 집으로 간직하고 싶은 것이다. (-447-)
강이 흐르는 것만으로도 시간들은 눈부시다 가의 속살까지 번쩍이는 시간들이 들이닫는 느낌은 서늘하다 못해 비명 같다 가끔 바람이 회오리쳐 가고 옥수수 이파리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 올라 들판 가득 소리의 물결을 풀어 놓는다 소리의 물결 속으로 방울새들이 날아오르고 색색의 종달새도 오른다 소리와 시간들이 용수철처럼 튀어오른다 엘런트라를 몰고 온 남녀가 팔짱을 끼고 강둑을 걷는다 그들은 그들의 가슴께에서 느끼는 감각으로 눈이 감긴다 한여름 강면에서는 고요가 나른하게 빛살처럼 일렁인다. (-472-)
일기일회(一期一回) 라고 했던가. 그러게 단 한 번의 만남으로 평생의 삶을 창조적으로 일군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줄탁동시라고 할 수 있다.,제자의 재능과 성실함을 단번에 간파하고 공부로 이끄는 것, 그 스승의 통찰력과 부름에 직지인심과 같은 마음으로 따르는 것,이렇게 둘이 동시에 이심전심이 될 수 있는 것은 서로 간의 신뢰와 애정과 성실에 값하는 노력이 있어서 가능했을 터이다. (-477-)
삶이 먼저 있고, 필요에 의해서,자의적으로 사람과의 공동체가 형성되면서, 사회가 만들어지고 있다. 언어가 없었던 원시사회가 , 필요에 의해 언어가 만들어졌고, 서서히 세상을 이해하는 최소한의 기준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개념은 만들어 졌으며, 서로에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한 역할을 강조하게 된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깊숙히 파고들어가면서, 집착과 갈망 속에서, 열등감, 트라우마를 견디며 살아간다. 단순히 생존을 위한 삶에서 벗어나 서서히 언어에 의한 다양한 학문이 만들어졌으며,지혜와 지식을 얻고 싶어진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는 이 책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바로 시가 가지는 본질, 시인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존재로 남아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다.즉 시인 고재종은 『시를 읊자 미소짓다 』에서 시에 대한 본질과 존재가치, 시인의 역할과 본질을 논하고 있었다. 단순히 세상을 시에 투영하는 것을 넘어서서, 세상이 돌아가는 근본 원리를 깨우치는 것,그것이 시인의 역할과 합목적성이며, 시가 가지는 직관의 힘을 진실에 투영하고자 한다. 거미줄에 거미가 있는 것은 단순한 자연의 현상이다. 시인은 그 너머를 보아야 한다. 자연의 법칙은 인간의 사유에 채워 넣어서 구겨넣을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삶과 자연의 지혜를 엮을 수 있는 힘, 인간에게 이로운 가치로 전환되어진다는 것은 시인의 심층적 사유에 의해서다.
그래서, 시인 고재종은 선불교와 시를 엮어낸다. 인간의 마음을 비워야 할 것, 마음에 대한 이해, 우리의 집착의 근원, 제행무상과 무아의 경지, 물질적 가치의 부질없음, 마음이라는 것에 대한 허구와 왜곡에 대한 이해, 이러한 추상적 가치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고 있었다. 즉 시는 단순히 시상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경험과 자신의 독서 편력,여기에 세상을 어떻게 바꿔 나갈 것인지에 대한 의지가 반영되고 있다. 제비가 단순히 집을 떠나는 것을 넘어서서, 그것이 가지는 의미를 간파하며, 인간의 삶, 인간의 감벙과 감각에 투영하고 있었다. 제비가 떠나는 것이 인간의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보다 더 쉬워진다는 것, 제비는 인간의 상처를 이해하고, 그에 대한 배려로, 스스로의 자리르 내어준다. 단순히 경이로운 관찰과 통찰을넘어서서, 인간 스스로 변화될 수 있는 구심점을 자연속의 관찰에서, 만들어 나갔다. 그것이 이 책을 읽는 이유였고, 마음과 마음 그릇에 대해서, 이 세계의 모든 사물과 생명은 순환되며, 업보로 만들어질 수 있다. 그리고 세상의 현상에 대한 이해, 선과 악을 구별하지 않는 삶이 자신의 삶과 사유를 확장시킬 수 있는 동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스스로 바보로 살것인지, 성인으로 살것인지 스스로 정해야 하는 명분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