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의 딸
남외경 지음 / 작가교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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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3월5일.

경남 고성군 동해면 네산리 160번지 남외경.

류만순. 우리 할머니가 몇 달 전에 준비해 두신 남색 주름치마 원피스와 흰브라우스에 앞머리를 정수리 오른쪽으로 묶고, 작은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일본에서 몇 년 동안 살아 오신 할머니는 자신의 손으로 일본식 교본을 만들어 맏손녀인 내게 입혀주신 것이다. (-13-)

8살 어린 소녀의 머리 위에 내리는 칠월 땡볕은 날카로웠다. 할매는 작은 양푼이에 보리밥과 된장종지와 열무김치를 삼베보자기에 싸서 마루에 놓아두셨다.

소녀는 학교 가는 길에 평돌바위를 지나 옴마 밥을 전해 드려야 할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다. (-53-)

자야 아지매집 초가지붕 처마엔 진흙과 볏집이 알맞게 버무러진 제비집이 안정된 폼새로 매달려 있었다. 노란 부리 사이로 바알갛게 물든 혓바닥을 내민 채 먹이를 구하러나간 어미를 기다리는 새끼들이 대여섯은 될 터였고, 욕심쟁이 둘째는 눈알이 튀어나올 듯 허공을 노려보며 앞발은 둥지 밖으로 빠져나왔다. 어미가 물어주는 것을 기다리느니 차라리 자신이 나가겠다며 곧 모이를 구하러 날개짓을 할 품으로. (-83-)

아부지가 돌아가면서 어장을 팔았다.

아부지와 한 몸 같던 '복만호(福萬號)' 와 어업권도 넘겼다.

어부의 삶이 그렇게 마감을 하게 된 것이었다.

복만호와 그물 어장이 없으니 친정에 가도 생선회를 사 먹어야 한다. (-107-)

그나마 마을의 범생이를 찾아가 몇 가지 협상(책 보따리 들어주기, 소꼴 베어주기, 아이스께키 사주기, 제기나 연 만들어주기 등)을 정한 뒤에 숙제를 베끼거나 몽당 크레파스로 어설픈 그림을 도화지에 그려댔다.

일기장에는 단 두세줄의 문장이 적힌 채 아이들의 침 묻은 여필 자국만 길었다. (-162-)

내 귓저에는 늘 물결이 찰랑거렸다. 대문 앞이 바다인지라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읽던 책을 덮고 잠드는 시간까지 물결음이 들렸다.

서울 살던 내 또래의 소년이 어머니의 자장가를 듣던 순간에 나는 바다가 불러주는 해조음(海潮音)에 귀 기울였다.

음력 이월 초하룻날은 '영등할미, 바람할미'가 옷힌다.

할미를 맞으려고 정월 그믐날 저녁에 양푼이를 들고 황토를 파러갔다.(-221-)

집집마다 이엉을 엮고 나면, 동네 장정들이 본격적인 품앗이가 시작되었다. 누군가는 이엉을 나르고, 계단을 타고 지붕으로 옮기고, 솜씨 좋은 옹이 아부지가 아래쪽부터 덧씌우기를 시작하면 점점 샛노란 새 지붕이 태어났다. (-273-)

바닷가, 어부의 삶은 고달픈 삶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 때 당시 , 농부의 삶은 농약으로 시작하여, 농약으로 끝날 대가 있다. 어부의 삶은 바다 위에서의 사투로 시작하며, 바다의 위태로움과 함께 해야 한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연상하게 된다. 1961년생. 강원도 고성군 못해면 막개 출신인 저자 남외경 씨는 어부의 딸이 무엇인지 그 삶 속의 고단함을 엿볼 수 있었다..

여덟 살, 그 때는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였다. 1학년, 학교에 가는 것도 일이었고,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것도 일이었다. 그때부터 어부의 딸의 삶과 노동은 시작된다. 줄줄이 낳게 된 아이들, 지금과 다르게 아이들은 천방지축, 어촌에는 자동차가 거의 없었던 그 시절, 어촌의 삶, 걸어서 십오리를 걸어야 했던 그 시간이 문득 문득 떠오를 때가 있었다. 두 발로 걸어다닌 길이었기에,그길 하나하나에 추억이 어른거린다. 바다로 나아가지 않으면, 바다위에서 직접 길어오른 싸디 싼 생선회도 손수 사먹어야 했다.그것이 어부의 삶이며, 저먼 바다에서 육지로 들려오는 해조음(海潮音)이 무엇인지, 시큼한 바다내음새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삶 속에 생명체의 죽음, 핏냄새가 바닷가에서 밀려오곤 한다. 방물장수 엿장수, 각설이 타령, 고무줄과 오자미놀이, 그리고 자연속의 꽃이 그 삶의 일부가 되었다. 키를 쓴 오줌싸개는 소금을 꾸우러 가야 한다.무료한 시간, 심심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 화투점을 보는 게 일상이었다. 바다의 삶과 농촌의 삶의 차이는 태풍에 대한 대처였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바람이 불게 되면서, 여름, 가을을 지나가는 태풍은 그들의 삶이었으며, 그들에게 하나의 생존 수단이었다. 위험과 사투하며, 온몸에 바다 소금 냄새를 풍기게 되는 그 시간이 켜켜히 쌓이면서, 유년시절의 고유한 맛과 멋을 느끼면서, 함께 더불어 갈아가곤 한다. 함께 하되, 견디면서 살아가며, 서로에 대한 삶을 존중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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