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기억 지우개 - 지워지지 않을 오늘의 행복을 당신에게
이정현 지음 / 떠오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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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낀다는 건 그런 거다.

좋아하는 것 중 좀 더 좋아하는 것.

아끼는 것은 대상을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손가락으로 세며 떠올릴 수 있다. 줄무늬 셔츠 두 벌, 기분 좋아지고 싶은 날에 꺼내 입는 겨울코트 , 담에 늘어지는 여름꽃, 2호선 지하철에서 바라본 한강 위의 풍경, 그리고 정성스레 포장된 초콜릿을 하나씩 벗겨먹듯 울고 싶은 날이면 찾아듣던 노래들도. (-17-)

더는 필요하지 않은 것을 뱉는다. 금세 헌것이 된 탁한 숨과, 삼키고 소화할 수 없는 필요의 나머지들. 입으로 들어오는 것에 비해 나가는 것에는 한가지가 더 있다.

입으로 삼키지 않지만,

입으로 뱉는 것.

말은 만들어내 뱉는다. (-37-)

부럽고, 고맙고, 또 무섭다. 마른 잡초 무성한 속을 헤집고 뒤적이게 한다. 끝내 엉망으로 만든다. 나는 어떤가. 과연 내게도 저런 사랑이 남았을까, 다시 찾아올까. 갈구하듯 사랑을 마하면서고 바스락거리는 손만 비빈다. (-85-)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살 수 있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살아간다는 것과 그들에게 베풀기 위해 살아간다는 것은 다르게 들린다. 나 살길만 찾아 헤매던 내가 아주 조금 못나 보였다. 연이어 그는 잊지 못하는 순간이 하나 있다고 했다. 회사에서 지금의 부서로 옮기고,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첫 여행을 간 나를 잊지 못한다고 계획과 경비 모두 스스로 마련한 첫 여행. 첫날 호텔 스파에서 몸을 담글 때 부모님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고.

"내 자식 이제 다 키웠구나' 하는 그런 후련한 표정을 짓더라니까."

어째선지 그의 말에 가슴이 저리다. 말로 대답을 뱉기 전에 이유를 알았다. 나는 아직 보지 못한 표정이다. 떠올려보려고 해도 근심 어린 표정만 기억이 난다. 지고 살았다. 잊으려 하며 살았다. (-123-)

자국이 아닌 상처, 자국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과 생채기를 내고 싶다는 마음은 멀지 않겠다.

가파른 절벽 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어여쁘고 위태롭다. (-233-)

내가 죽어도 세상은 그대로일까.

나 하나 없어지면, 세상 모든 게

모래처럼 바스러지는 건 아닐까.

나이로부터 시작된 망상이 삶과 죽음에 다다를 때마다, 강에 종이배 띄워 보내듯 욕심을 하나씩 흘려보내기도 했다. 덕분에 연연하는 것들이 차츰 줄어갔다. 돈이나 사람. 그 밖에 나를 둘러싸는 모든 것에 대한 욕심. 바라는 게 줄어드니 어쩌다 욕심나면 그리 밤잠을 설치게 되었나. 손에 쥔 볼펜 한 자루도, 그리고 사람도.(-312-)

시간이 지나고, 장소에서 벗어날 때, 지나고 보면 , 좋은 기억을 담아가고 싶어질 때가 있다. 살아가면서, 『나쁜 기억 지우개 』 는 항상 나의 내면 속 불행의 씨앗이 될 때가 있다. 지혜로운 삶을 살고 싶어도,그러하지 못한 내가, 때때로 흔들리면서 살아가곤 하였다. 사랑하면서 살것인가,베풀며 살것인가에 따라서, 나으 삶은 달라질 수 있다. 작가 이정현 『나쁜 기억 지우개 』는 우선 책 제목에 마음에 들었다. 나를 들여다 보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너의 여러가지 모습이 담겨지고 있었다.제목이 마음에 든다는 건, 내 곁에 가까이 두고 싶은 소장용이라는 의미일 게다. 지난 세월, 켜켜히 불행의 끄트머리에서, 절벽 위에 서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의 삶은 흔들리게 되고, 사람, 관계,존재를 모조리 무시하며 살아가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삶이라는 건 그런 거다. 주어진 것에 대해서 인내하며 살아가고, 나의 삶에 필요한 씨앗들을 가까이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소중한 사람, 좋아하는 사람, 아끼는 사람과 가까이 하며, 오래 동안 지속적인 관계를 만들어 살간다는 것은 주어진 삶을 행복과 기쁨으로 채워나가는 매우 중요한 조건이자 상황이 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었다. 오만과 자만에 파묻혀 사는 나에게 하나의 매를 들고 있는 심정이었다. 좋아하고, 사랑하고, 아끼고, 행복을 주는 그러한 존재, 그들이 내 주변에 있음을 , 그것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살아가는 나에게 반성의 메시지를 느끼게 해 주었다. 살아가고, 견디면서, 내 안에 더러운 삶의 찌꺼기들을 덜어내기 위해서, 연연하지 않으면, 집착하지 않는 것, 내 삶의 행복은 내가 아끼는 사람이 누군지에 따라서 결정될 수 있으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며, 함께 아끼며 살아가는 법을 스스로 꼽씹어 보게 된다. 그리고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다짐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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