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문트 바우만 - 유동하는 삶을 헤쳐나간 영혼
이자벨라 바그너 지음, 김정아 옮김 / 북스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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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폴란드에서 반유대주의를 경험했고, 나치를 피해 폴란드를 탈출했고, 소련에서 난민으로 살았다. 굶주림에 시달렸고, 군인으로 전쟁을 겪었고, 폴란드에서 친소련 정권을 완성할 때는 공산주의 정당의 선전원으로 일했다. 스탈린주의의 몰락을 목격했고, 전후 폴란드에서 권위주의와 불완전한 민주주의가 서로 힘을 겨루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바우만은 평생 두 번 난민이 되었다. 한번은 1939~1944년, 다른 한 번은 1968년이었다. 유랑하는 삶은 바우만의 선택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삶이 바우만을 덮쳤다. (-14-)

패거리를 이룬 소년들은 지그문트의 존재를 발판 삼아 '유대인 박해 의식'을 수행했다. 소년들에게는 그런 행동이 '애국하는 폴란드인'이 될 기회였다. 민족주의에서 비롯한 이 정체성,'애국하는 폴란드인'에서 중요한 요소가 반유대주의였으므로, 소년들은 자신들이 '폴란드인의 정체성을 수호' 하는 데 헌신한다고 증명하고자 유대인인 지그문트를 사냥했다. (-45-)

루블린은 폴란드의 새로운 정치 질서를 상징하는 임시 중앙 정부가 들어선 임시수도가 되었다. 임시 정부는 전쟁이 끝나면 자유선거를 시행해, 새 국제 정치 질서에 걸맞은 방향으로 폴란드를 탈바꿈시키겠다고 약속했다. (-161-)

그 뒤로 몇 달 동안,바우만은 낮에는 국내보안대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학교에서 공부했다. 하지만 주경야독은 오래가지 못했다. 1952년 12월 소련 모스크바에서 '의사들의 음모'가 터지자 소련과 동맹국들이 반유대주의에 휩싸였다. 주로 유대인인 의사 집단을 겨냥한 날조한 혐의가 동유럽 전역에서 유대인 숙청을 부추겼다. 폴란드와 국내보안대도 그 물결을 비켜가지 못해,바우만도 목표물이 되었다. (-271-)

가장 흥미로운 보고서는 소규모 토론에 참관한 정보원들이 작성한 것이다. 열띤 토론이 오가는 이런 자리에서는 참석작들이 자제력을 잃고 진짜 속내를 말하기 마련이다. 폴란드 정치에서 매우 중요한 토론 주제 하나가 물가 인상이었다. 국가가 통제하는 시장에서 물가 인상은 마우 정치적인 결정이다 정권이 두려워하는 일이었다. (-387-)

앞서 말했듯, 폴란드를 떠나는 사람이 가져갈 수 있는 돈은 1인당 5달러 뿐이었다. 당국은 은행계좌의 잔액을 입증할 서류를 원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1968년에 바르샤바의 상점에서 괜찮은 물건을 찾기가 쉽지 안았는데도, 돈이 있는 유대인은 되는대로 물건을 사들였다. 그런데 출국 서류에 기재된 물건은 모두 사용한 증거가 있어야 했다. 새 물건은 반출 금지였다! 출국에 팔료한 방대한 행정 서류 비용을 치르고자 해외에서 들여온 자금을 쓰는 것도 불법이었다. (-446-)

나는 야니나의 책을 읽은 뒤에야 내가 홀로코스트를 얼마나 몰랐는지 정확히 말하면 얼마나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았는지를 되돌아보았다. '내가 속하지 않았던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뚜렷해졌다. 그때껏 나는 순진하게도, 기존에 알던 지식으로 홀로코스트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겠거니 지레짐작했다. (-552-)

지그문트 바우만은 1925년에 태어나 2017년 사망한다. 폴란드에서 태어났으며, 폴란드 사회에서 반유대주의의 실체를 온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이 와중에 유럽 전역에는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을 온몸으로 겪었던 지그문트 바우만은 히틀러가 자행한 유대인 제노사이드 , 홀로코스트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고찰하였다. 100년전 유대인이 잔혹하게 가스와 실험의 희생양이 되어서 ,죽을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죽는 것이 유대인의 정서상 , 폴란드 사회에 만연해 있었던 , 유대인혐오주의,반유대주의 정서가 나타났으며,그들이 죽은 것이 폴란드의 미래를 위해서, 국가 차원으로 볼 때, 애국하는 길이었다. 중국과 조선이 일본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고, 일본인을 죽이는 길이, 두 나라의 시선으로 볼 때,애국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유대인혐오주의는 맥락이 일치하고 있었다.

2017년에 세사을 따났던, 백년 가까이 살아왔던 지그문트 바우만은 폴란드라는 특수한 장소에서 두번의 난민으로서 겪었던 지난날의 기억과 경험들이 , 유대인 혐오와 유럽 전역에서 발생한 제노사이드가 발생한 원인과 인과관계와 연결되었으며,그가 생각하였던 수정 자본주의의 보편적인 특징, 사회학과 철학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정치철학을 만들어 나갈 수 있게 된다. 그가 살았던 그 시기에는, 민족, 언어, 봉교, 전통의 실체에 대해서, 유대인이 만든 시온주의와 그것이 만들어진 전 과정을 그의 삶 전체에서 살펴보고자 하였다. 유대인 박해의식이 애국하는 폴란드인을 만들었다. 폴란드 사회 정역에서, 유대인은 그닥 필요하지 않았고, 매장되어 마땅하였다. 하지만 그 당시 그들을 쫒아냉 명분이 부족하였으며, 양대전을 빌미삼아,유대인을 빈털털이인 상태로 국외로 추방 하여 내밀어 버리게 된다. 바르샤바 대학교 교수였던 지그문트 바우만이 시온주의의 성지였던 이스라엘 하이파 대학교에서 지도교수이자, 교육자로 명성을 날릴 수 있었던 건 그가 겪었던 전쟁과 68 혁명이 그의 사상의 원 뿌리로 만들어졌기 에 가능했다. 그에게 처해진 감시와 첩보작전, 억압의 실체, 친미 ,친서구 사회학자로서, 그가 보여준 학자로서의 자질들, 그것이 그의 삶 속에서, 아내 야니나와 함께 하였고, 조국 폴란드에서 나와 첫째 딸 안나와 두 쌍둥이와 함께 이방인으로서 살아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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