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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학부모로 산다는 것
박성수 지음 / 공명 / 2022년 8월
평점 :

"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
우리 아이들이 어떤 꿈을 갖느냐는 것은 아이들이 우리의 가정 형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상당히 관련이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인지된 가정형편, 즉 사회 경제적 위치에 대한 각인은 실질적으로 아이들의 꿈을 구체화하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45-)
우리사회에느 공부는 우리를 속박하는 사슬이 되었습니다. 차별의 도구가 되었습니다.'공부 못하니 배달이나 하지' 라는 말은 이렇게 노동의 위계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노동에는 귀천이 있다. 그런데 귀한 노동을 하려면 공부를 잘해야 한다. 공부를 못하면 힘든 노동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사회적 선호도가 낮은 직업은 공부를 못한 사람이 선택하는 것이고, 좋지 않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 왜? 공부를 못한 사람들이니까.' (-123-)
초등학교 시절에 소달구지 타고 논두렁을 오가던 농촌 마을에서 살았습니다. 1971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 새마을운동이 막 시작될 무렵입니다. 2학년 때까지 수업이 끝나면 담임선생님이 모든 학생에게 배급 방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1학년 때는 봉지가 없는 빵을 나누어 주었고,2학년 때는 비닐봉지에 든 빵을 주었습니다. 간식거리가 없던 때라 참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159-)
각분야에 성공한 분들이 왜 꼭 대학 졸업장이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지만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학력이 갖는 의미는 남다를 뿐 아니라 지나치게 과도합니다.'학식이 있어야 덕망이 있다; 는 사농공상의 유교적 전통이 강하고, 학벌의 영향력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190-)
고등학교 졸업식 날 교문에는 서울대학교 합격자 명단이 적힌 현수막이 휘날렸습니다.이걸 보고 한 친구는 졸업식장에 가지 않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대학 입시에 패배자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쓰라림입니다. 죽어라 공부를 했지만 서울대학교에 합격하지 못한 친구들은 하루아침에 실패한 학생이 되엇습니다. (-202-)
우리 사회는 객관식 점수 신화에서 벗어나야만 새로운 인재관을 정립할 수 있습니다.사회공동체를 위한 품성을 함께 갖춘 인재가 우리 민주주의의 발전의 초석이고 우리 사회의 진정한 인재입니다. 어떤 사람을 미래 인재로 볼 것인가는 우리 사회의 앞날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223-)
그럼에도 공부 잘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패권이 유지될 수 있던 이유는 뿌리 깊은 유교주의,'숭문주의' 그리고 오늘날에는 '능력주의' 라느 도그마를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리학적 유교주의와 결합된 능력주의는 단순히 인간의 학습 능력이라는 능력주의를 넘어서 인격적 우월성을 부여하는 강력한 사회적 도그마입니다. (-238-)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공부를 잘하면, 사회생활에서, 출세할 길이 열린다는 환상을 가지고 시작한다. 초중고 졸업후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하고 난 뒤, 총동창회에 모이게 되면,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만들어 나갔다. 출세지향적인 대한민국 국민들의 사고방식은 사농공상의 유교적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과거에 비해 많이 퇴색되었지만, 학연,지연, 혀련에 따라서, 자신의 위치라던지,사회적 역할이 달라지고 있으며, 여전히 상인을 천시하는 문화가 바닥에 있다. 힘들고, 더럽고,더러운 일에 대해 천시하는 문화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좋은 대학교에 입학하면 현수막이 걸려서, 지역에 널리 알리는 것을 기본으로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에서는 빌게이츠,마윈, 마크저커버그와 같은 이들이 나오지 않는다는 자조섞인 메시지가 광복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대학교 중퇴를 하게 되면, 자신의 학력을 숨겨야 하며,당당하게 내세우지 못한다. 미국의 제프 베조스가, 자동차 창고에서,창업을 시작했다는 것이 남의 이야기로 들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결코 우리가 넘어설 수 없는느 사회적 한계가 공존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게 되면, 우리 사회의 교육에 대한 문제를 넘어서서, 사회적 한계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 넘어지지 않고, 길을 걸어가는 것,객관식 점수에 연연하면서, 점수를 따는 대입교육에서 탈피해, 사고력과 논리력을 우선하는 올바른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노동의 천시가 반복될 수록 우리 사회는 점차 낙후될 여지가 있으며, 사회적인 변화, 기술 적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할 개연성이 커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