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어디로 가니 - 식민지 교실에 울려퍼지던 풍금 소리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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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한국말도 아닌데 '랑' 자 붙은 말이 생각납니다. '호모나랑스 Homo Narrans'란 말입니다. 인류를 분류하는 라틴말의 학명이라는데, 조금도 낯설지 않은 것을 보면 귀에 꼬부랑의 그 '랑' 자 효과 때문인 듯 싶습니다. 지식이나 지혜가 있다고 해서 '호모사피엔스' 요, 도구를 만들어 쓸 줄 안다 해서 '호모 파베르'라고 하는가, 아닙니다. 몰라서 그렇지 과학 기술이 발전한 오늘날에는 그런 것이 인간만의 특성이요 능력이 아니라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어떤 짐승도 , 유전자가 인간과 거의 차이가 없다는 침팬지도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별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땅과 숲을 보며 꽃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11-)

한국어를 쓰지 못하던 교실 풍경은 어땠을까.

우리 반에는 말 없는 아이가 있었다.

'가네실' 이라는 산골에서 살던 아이였는데 , 원래 말이 없던 아이가 아니었다. 일본말이 서툴렀기에 날로 말하는 습관을 잃어가게 된 게다. 애들은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있는데, 그는 혼자거 교사 담에 기대어 그들을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었다. 때로 자기 차례도 아닌데 자진해서 교실 당번을 바꾸어주었다. 그래서 노는 시간에도 텅 빈 교실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일이 많았다.'후타'(딱지) 가 있고부터는 그 애는 더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아이들이 그 애를 쭉 따라다녔다. 언제나 주말이 되면 선생님한테 벌을 섰다. (-100-)

훨씬 뒤에 안 이론이지만 산업시대를 지배하는 것은 늑대처럼 눈이 정면에 달린 짐승들이라고 했다. 스탈린이아 히틀러 형의 독재자들은 먹이를 쫓아 오직 한 방향으로만 달리는 '파라노이아' 형 인간이가.그러나 21세기의 지식 정보시대는 토끼나 사슴처럼 눈이 양옆에 달려 사방을 보면서 도주할 수 있는 '스크조프레니아'의 인간형이 주도권을 잡는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127-)

"아 내 동생아 너를 위해 운다.

너 부디 죽지 말거라.

막내둥이로 태어나 부모 정을 독차지한 너

부모님이 너에게 칼날 쥐어주고 사람 죽이라고 가르쳤으리요

사람을 죽이고 죽으라고 스무 네 해 동안 너를 키웠으리요." (-232-)

창씨개명은 '정신동원' 으로 분류되었지만 병력동원과도 관계가 있다. 일본인은 같은 성이 거의 없어 보통 성만으로 인물을 구분한다. 반면 조선인은 같은 성이 많으니 성을 부르면 여러 명이 대답하니 지휘에 혼선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결국 창씨개명이 병력동원의 전제조건이었던 셈이다. (-281-)

천자문에 북쪽이 없음을 간파한 사람은 별로 없다. 뿐만 아니라 천자문에는 '봄 춘' 자도 없다. 반면 다음 계절인 여름, 가을 ,겨울은 나온다. 인간의 생활에서 주요한 북(北) 자, 춘(春) 자가 빠진 것이가. 요즘 사람들의 관점에서만 특이하게 여길 일은 아니다. (-331-)

『너 어디서 왔니』, 『너 누구니 』, 『너 어떻게 살래 』, 그리고 『너 어디로 가니 』 이다. 그는 1934년 1월 15일에 태어나 , 2022년 2월 26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삶을 보면, 끊임없이 과거로 퇴보하지 않고, 현재를 붙잡으려 고 애를 썼다.소통의 본질을 그의 삶에서 기록되었다. 일제시대를 살아오면서, 천자문, 소학을 익히고, 학생들의 미래를 위한 학문의 초석을 만들어 나간다. 그가 위대한 건,그가 남겨놓은 학문의 깊이가 아닌, 그가 우리에게 하나의 숙제를 던지고 갔다는 것이다. 즉 과거를 반성하고,미래를 준비하는 삶이 우리가 가져야 하는 올바른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쓴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네 권에서는 어떻게 살고, 어떻게 상아가야 하며, 앞으로 어떻게 죽을 것이며, 후대에 무엇을 남겨놓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인생의 철학적 흐름를 열거 하고 있었다.그가 살아온 과거에서, 한국의 우수성과 위대함에 대해서,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였으며,그것이 왜 합당한지 끊임없이 탐구하였다. 중요한 것은 그가 젊은 생각을 죽을 때까지 유지하려고 했다는 점이며,그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젊은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대목이다. 현재는 젊게 살아가고 있지만,우리들 또한 이어령 교수님처럼 여든이 될 것이며,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가 셩험해 보지 못했던 과거의 모습들응 앞으로 경험하게 되고, 그 안에서 해답없는 문제와 마주하게 된다. 이어령의 세계관을 확장시키는 것,그가 남겨놓은 학문의 씨앗을 뿌려서 이어나가는 것, 열매를 맺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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