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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추하다 ㅣ 개미시선 31
김준엽 외 지음 / 개미 / 2017년 12월
평점 :
포도청 같은 목구멍들
포도청 같은 목구멍들을 풀칠하려고 쉴 새 없이
노동하다가 하루의 해가 저물면
지친 몸으로 버스 차창에 의지한 채
고개 숙이고 버스 바닥을 응시하는
그대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윗사람들에게 미움받고
아랫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아도
포도청 같은 목구멍들을 생각하여
울분과 분노를 속으로 삼키며
일은 묵묵히 하지만
그대의 가슴속에는
피 같은 눈물 흐르고 있겠지요.
작은 성냥을 열고 들어가
성냥 알들이 불씨를 달라고 하면
한납의 미움 받고 며시받으면서
모으고 모아 둔 불씨를
낡은 호주머니에서 꺼내어
하나의 불씨도 안 남겨 둔 채
다 주고선 자신은 추위에
몸을 떨었습니다. (-18-)
사람이 그리워
사람이 그리워 사람이 그리워
툇마루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
바라보고 있건만
누구 하나 나를 바라보는 사람은 없고
길 잃은 개만 바라보네
지나가는 사람 중에 아느 사람이 있어
불러보나 모른 체하면서
지나가고 철모르는 아이만
대답을 해주네
저 많은 사람 중에 나한테 눈길 한 번 주는
사람이 없나 저 많은 사람 중에
나한테 말 한마디 걸어주는
사람이 없나
사람이여 제발 눈길 한 번
줄 수 없나요 말 한 마디 걸어주소
내 다리가 원수로다
내 다리가 원수로다. (-33-)
시인에게
아무도 당신 곁에
머물 수 없다면
당신이 쓰고 싶었던
아름다운 시를 쓰세요
그래도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암았다면
사랑하는 별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세요
설령 사랑하는 사람들이
당신이 싫다고 말한다면
오오, 그대여
그때는
나의 곁에서 잠시 쉬다가 가세요. (-53-)
외출
힘든 마음 혼란하다 전동휠체어 운전해 집을 나서서
온 강둑 위로 바람이 분다.
덧없이 흘러가는 것인데 왜 내려놓지 못하나 아무런
생각 없이 강둑 다린다.
다시 돌아갈 길을 더듬는 중에 안 그래도 될 것을 하고
알게 되었다. (-63-)
수급자로 산다는 것
어렵다 80십만원으로 한 달을 사는데
최소한 삶을 지탱하는 지겟작대기
언제 비탈 아래로 넘어질지 모르는 수급권
언젠가는 탈락될지 모르는 불안을 안고
주는 대로 살아간다 매일 잔고를 보며
살고 싶다,미치도록 (-70-)
청풍명월 찻집에서
제천과 청풍을 잇는 산골에
햇살이 눈 시리다
마른풀 앙상한 나목 사이
굽이굽이 도는 시오리길
계곡은 수려하고 하늘도 푸르러
햇살은 저리도 좋은데
청풍명월 맑은 물
푸르게 흐르고 흘러서 어디로 갈까
돌아눞는 계곡 시선 끝닿은 골짜기에
창 넓은 빈 찻집
마른꽃 널린 카페에 앉아
한 잔의 차로 마음을 녹이니
인걸은 간데 없고
낡은 스피커에 애설픈 옛 노래
가슴 깊이 잠들었던 그리움이 깨어나 정수리를 친다. (-83-)
나비의 여행
가는 길마다 살랑살랑
꽃잎에서 노는 나비
오늘은 어디로 멋진 나비들을
만나려 갈까?
기분 좋은 벌꿀을 먹으면서
여행지를 정하는 나비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많아서 설렘이 찾아 드네
날이 따뜻해질수록 더 맛있는 꿀을 찾아서
아름답게 날개를 피는
나비 한 마리 (-107-)
박힌 가시
맨몸으로 세상에 태어난 순간 나도 모르게
바늘보다 더 아픈 가시들이 내 작은
온 몸에 박혀 버렸네
움직일때마다 피로 샤워를 한 듯 아파서
크게 소리를 지를 수 있도록
더욱 깊이 박혀 버려서 평새을 눈물로 참을 수밖에
없게 되어서 멍이든 채로 숨 쉬는 나의 삶 (-118-)
뇌 병변 장애, 지체 장애,뇌성마비장애, 중복장애를 가진 시인 여덟명 이 함께 하여, 만든 시집 『반추하다 』 에서는 우리 삶 속에 깊이 박혀 있는 차별과 혐오, 외면과 불평등을 시에 투영하고자 한다. 평범한 삶을 살아강는 것이 꿈이었던 그들의 삶은 꿈을 느끼기도 전에 상처와 고통을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들에 대해서, 침묵으로 일갈하거나, 시선을 피하는 그들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워지게 된다. 외병변 장애가 가지고 있는 공통된 문제들은, 바로 언어 장애였으며, 평생 수급자로 살아야 하는 아픈 삶이 있다. 오로지 그 하나에 의지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삶이 죽고 싶을 정도로 비참하고, 수치스럽다. 그럼에도 살고 싶은 그들의 삶의 희노애락은 평범한 일반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며, 더 나아가 사회에 이바지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말하고 있는 너무나 당연한 것들 하나하나가 , 태어나자마자 예기치 않는 사고로 인해 한순간 인생이 바뀌어야 했던 그 순간들을 견디면서, 살아온 지난알들이 세상의 시선과 이심과 무관하게 아름다움으로 바뀌게 된다. 따스한 시선이 그리워지고, 따스한 소통을 원하는 그들에게, 삶이란 단순히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넘어서서, 나의 존재를 스스로 느끼며 살아가면, 나의 가치를 삶에 반영하고 싶은 소소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죽음을 바라보기 전에 ,삶을 응시하면서, 선입견으로 똘똘 뭉친 우리 사회가 견고한 장애를 가진 이들을 바라보는 차별과 선입견에서 어느 정도 해방되기를 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