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는 여름밤
몬구 지음 / 잔(도서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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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더 된 일이다. 2주에 걸쳐 스쿠터로 전국 일주를 한 적이 있다. 출발 전에는 스쿠터로 전국 일주를 하는 일이 하는 일이 그렇게 힘든 줄 몰랐다. 몰랐으니까 출발했겠지. 주변에서 말리는 말도 들리지 않았다. 중간에 정 힘들면 용달차에 실어서 집으로 돌아오면 그만이었다. 나는 진한 초롯빛 베스파를 탔고, 일행인 그녀는 혼다사의 하얀색 줌머를 탔다. 지금은 둘 다 단종되었다. (-15-)

4106. 이 숫자가 내 휴대전화 번호 뒷자리가 된지 꽤 오래다. 20년 가까이 쓰고 있다.'4106' 은 로우파이 밴드인 아메리칸 아날로그 세트가 발매한 앨범 『노우 바이 하트 』의 총 재생 시간인 '41분 06초' 에서 가져온 것이다. (-66-)

살면서 죽을 만큼 누군가를 미워해 본 적이 없다. 그런 마음이 쉽게 나지 않을뿐더러 그러는 내 모습이 싫을 것 같다. 그래서일까?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면 서둘러 덮어두려고 한다. 더 미워하고 싶어도 억지로 일시 정지를 누르는 것이다. 그러고는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 감춘다. 그렇게 감춘 감정을 따로 쌓아 두는 창고가 있을 정도다. 그 정도로 미워하는 감정을 싫어한다. 어쩌면 끔찍이도 무서워하는 걸 테지. 그렇게 미움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관찰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다. 남을 미워하면 오히려 내가 미움받을 수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미움을 피하는 건 아닐까? 반면 무턱대고 주변 사람을 격렬하게 미워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사람은 후회가 없을까? 모르겠다. 속마음을 어떻게 알겠는가! (-124-)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장래 희망은 '귀여운 할아버지'다 .좋아하는 캠프 캡을 쓰고, 청바지에 컨버스를 신고,우쿨렐레를 손에 들고 산책해도 어색하지 않은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 하지만 그런 외적인 모습보다도 자기 일을 꾸준히 하면서 호감 가는 사람으로 늙고 싶다는 뜻이다. 막연히 언제까지나 젊음이 계속될 거라고 믿던 시기의 나는 '귀엽다'늠 말을 편협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귀여움이란 단순히 외적임 모습이 아닌데, 그걸 그때는 몰랐다. (-181-)

비에 젖은 운동화

비에 젖은 운동화를 신어 본 사람은 안다.빗물이 얼마나 깊이 스미는지. 추억은 비와 같아서 세포 하나하나에 깊이 스민다. (-233-)

뮤지션이자 자가 몬구다. 그는 밴드 몽구스로 데뷔한 가수이며, 100여 곡이 넘는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책 『장르는 여름밤 』은 가수, 뮤지션으로서의 작가의 모습이 아닌, 자신의 삶의 일부분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오토바이로 전국 일주를 하였던 무모한 시절이 있었으며, 단종된 오토바이가 가져다 주는 스릴을 경험하게 된다. 마라톤을 즐기는 어드벤처 뮤지션, 귀여운 할아버지가 되고 싶은 철없는 그의 모습에서, 그의 또다른 자아는 관종이었고, 음악 덕후이다.

살아가다 보면, 나답게 살아간다는 것을 잊고 있을 때가 있다. 불안과 걱정이 나답게를 지워 나갔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늙어야 하는지 잊고살아가며, 주어진 시간 대로 흘려 보낼 때가 있다. 삶을 갈망하면서, 죽음 앞에서 허망해지는 순간이 불현듯 찾아와서,내 삶의 정답과 신념을 오답으로 바꿔 버릴 때가 있다. 음악인으로서, 특유의 예민함과 관찰, 여기에 더해,그가 보여주는 삶의 관조적 자세를 그가 쓴 에세이에 말을 풍덩 담궈서, 텍스트 향기에 몰입하다 보면,그의 삶이 마치 나의 삶에 스며드는 것처럼 빠져들 때가 있다. 나의 흔들리는 인생 나침반이 북극점이 바뀌는 순간이며, 그의 인생의 일부분이 나의 인생의 일부분으로 스며들었다. 비로서 책에 몰입하는 순간이다. 울고 웃고, 분노하고, 기쁘고, 즐겨운 삶, 그러한 삶이 층층히 쌓이면서,내 삶의 금자탑이 될 수 있다. 같은 여름이라 하더라도,그 여름을 바라보는 시선은 사뭇 달라지게 된다.적을 만드지 말것, 사람을 미워하지 말것, 책에 나오는 그의 삶에서, 내가 취해야 하는 것이었다. 나의 삶과 너의 삶이 서로 겹쳐지게 되고, 한 여름 뜨겁게 달구었던 매미 소리가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한 때, 시끄럽고, 소음처럼 여겨졌던 그 순간이 그때는 지긋지긋하지만, 시간이 지나 기억이 추억이 되는 순간, 그리움으로 바뀔 수 있다. 그것이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몬구 특유의 청춘기이며, 장르는 여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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