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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저민 프랭클린 자서전 ㅣ 현대지성 클래식 43
벤자민 프랭클린 지음, 강주헌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8월
평점 :
사람을 가르칠 때는 가르치지 않는 것처럼 하고, 모르는 것은 그들이 깜빡 잊은 것처럼 여기게 하라.
또 포프는 이렇게도 조언했다.
확실하더라도 얌전하고 조심스레 말하라.
포프는 이 행을 내 생각에 적절하지 않은 다른 행과 짝지어놓았지만, 다음과 같은 구절과 짝지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37-)
와츠 인쇄소로 자리를 옮기고 몇 주가 지났을 때 와츠는 나에게 식자실에서 일해달라도 했다.그래서 나는 인쇄실을 떠나야 했고 식자공들은 신입 직원 환영을 위한 술자리를 갖겠다며 나에게 5실링을 내라고 했다. 인쇄실에서는 그보다 적은 돈을 냈기 때문에 나는 그런 요구를 강압이라 생각했다. (-87-)
1736년 나는 아들을 천연두로 잃었다. 당시 네 살에 불과하던 예쁜 아이였는데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까지도 아이에게 종두를 접종하지 않은 걸 후회한다. 아이가 종두 접종으로 죽으면 자신을 결코 용서하지 못하리라 생각해 아이에게 접종을 시키지 않는 부모들에게 조언하자면, 접종을 하든 하지 않든 간에 후회항 일이 생긴다면 더 안전한 쪽을 선택하는 편이 낫다는 걸 내 사례가 말해준다. (-182-)
이런 다툼의 근본 원인은 식민지에 드넓은 땅을 보유한 지배자들인 세습 총독들에게 있었다. 지역 바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세금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그들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인색하게 반응했다. 요컨대 그들의 방대한 땅이 과세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으면 대리인들에게 반드시 지시를 빠르겠다는 각서를 받기조 했다.의회는 3년 동안 이런 부당한 행위에 맞서 싸웠지만 결국에는 굴복하고 말았다. (-236-)
펜실베니아의 새 총독 데니 대위는 나를 대신해 앞에서 언급한 메달을 영국 왕립학회에서 받아와 시 당국이 그를 위해 마련한 연회에서 그 메달을 내게 수여했다. 그러면서 데니 총독은 내 됨됨이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면 정중하게 나를 향한 존경심을 표현했다. 식사가 끝난 뒤 당시 관례대로 사람들이 여기저기 모여 술을 마셨다. 그때 데니 총독이 나를 옆방으로 슬쩍 데리고 가서는 내가 자신에게 가장 객관적인 조언을 해줄 것이고 자신이 수월하게 통치할 수 있게끔 가장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며 나를 잘 사귀어두라는 조언을 영국인 친구들에게서 들었다고 했다. (-274-)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2/0902/pimg_7300591133542159.jpg)
18세기 초에 태어난 벤저민 프랭클린을 미국 양키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었다. 미국 보스턴 청교도 부모에게서 1706년 태어난 벤저민 프랭클린은 그 당시 초등학교 중퇴였지만, 식자공으로 일하면서,돈을 조금씩 조금씩 모았다. 세상의 이치를 일찌기 깨우쳤던 벤자민 프랭클린은 독실한 칼뱅주의자였으며, 그는 절제, 침묵,질서, 결단, 절약, 근면, 성실, 정이, 중용, 청결, 평정, 순결, 겸손,이 열세가지 덕목을 습관화하였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인생의 미덕이 되고자 하였다. 그가 보여준 청교도 정신은 3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효하며,미국 사회의 정신적 뿌리의 원형이자. 미국 달러에 그의 초상화가 새겨져 있었다. 그가 보여준 삶은 사람과 사회에 대해서 경계를 넘지 않고, 질서를 추구하면서, 사람에 대한 배려와 이해를 우선하게 된다. 상황에 따라 침묵을 지키고 살아가며, 때로는 엄격하고 단호한 결정, 자신만의 리더십을 추구하면서, 미국 사회 안에서 정계에 입문하게 된다. 스스로 절약을 함으로서, 모범이 되었으며, 정의와 겸손으로 사람과 함께 뜻을 모았으며,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서,비걱하게 타협하지 않는 것, 유혹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원칙을 지키며 살아가며, 어릴 적 자신의 어린 아들을 잃은 아픔을 절감하면서, 벤자민 프랭클린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바로 잡아가면서 살아가고자 하였으며,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면서, 총독과 함께 일을 하는 방법,의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그의 자서전 속에 깊이 새겨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