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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쓰고, 함께 살다 - 조정래, 등단 50주년 기념 독자와의 대화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0년 10월
평점 :
정말 '죽기를 각오' 했습니까? 그 각오를 하기 전에 '소설을 쓰지 않는다면' 또는 '소설을 쓰지 못하게 방해를 당한다' 면 '차라리 죽을 수밖에 없다' 또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이러한 결의도 수십 번씩 반복, 확인했습니까?
귀하의 질문을 열 번 이상 거듭 읽으며 그러한 진정성을 확인하려고 했습니다. 죽음을 맞대면한 자아 결의와 확인 없이 감상적으로 예술의 길을 선택했다가는 십중팔구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15-)
『천녕의 질문』 에 대한 독후감이 어찌 그리도 저의 내심과 똑같이 일치합니까. 『태백산맥 』은 해방 공간 8년사를 다루면서 열 권, 『아리랑』 은 식민지 전야부터 해방까지 42년사를 다루면서 열 두 권, 『한강 』은 이승만 정권 말기부터 박정희 정권 몰락까지 20년사를 다루면서 열 권으로 썼습니다. 그러면 우리 현대사 70년 동안의 총체적 문제를 다루는 『천년의 질문 』 은 몇 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아무리 짧아도 열 권은 되어야 했습니다. (-96-)
'상처 많고 고통 많은 우리의 참담한 역사에 대해서 쓰자!'
그것을 피해 서거나 그것을 외면해서는 진정한 이 따으이 작가라고 할수 없다는 의식의 푯대를 세웠습니다. 저는 그 길이 가장 올바른 작가의 길이리고 생각했고, 우리의 처절한 민족사를 진실하고 생생하게 엮어내서 앞으로 다시는 그런 처참하고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작은 것울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작가의 소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햇습니다. 저는 반도 땅에 갇히는 작가로 한계에 부딪힌다 해도 우리 민족에게 필요한 작가가 된다면 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한편으로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라고 한 누군가의 말의 의미를 되새기기도 했습니다. (-191-)
제가 아는 어떤 선배가 선생님의 『태백산맥 』 을 읽고 소설 쓰기를 포기했다고 했습니다.이제 저는 선생님의 『아리랑 』을 읽고 똑같은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어찌해야 되겠습니까. 선생님께서 쓰신 에세이를 통해서 이런 질문에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너무 답답해서 불쑥 나온 말입니다. (-244-)
작가는 도저히 쓰지 않고는 안 되는 필요와 긴박성 때문에 소설을 써내게 됩니다. 제가 『풀꽃도 꽃이다 』를 쓴 것도 이 땅의 교육 문제가 더 이상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되도록 심각했기 때문입니다. (-310-)
『천년의 질문 』 에서 작가가 독자들이 깨닫고 동감하기를 바란 것은 여러가지 입니다. 그중에 중요한 것 하나가 바로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고 나무와 숲의 상관관계를 동시에 알아차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총체적 안목을 확보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하는 주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고, 그 파악이 곧 국민의 길을 여는 열쇠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367-)
1943년 전라남도 승주군에 태어난 조정래 는 광주 서중학교, 서울 보성 고등학교를 거쳐 동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게 된다. 그가 쓴 책들 가운데는 대하소설 3부작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이 있으며, 『천년의 질문』, 『풀꽃도 꽃이다』, 『정글만리 』, 『허수아비춤』, 『사람의 탈』, 『인간연습』, 『비탈진 음지』, 『황토』, 『불놀이』, 『대장경』 이 있었으며, 중단편 소설집으로 , 그림자 접목』, 『외면하는 벽』, 『유형의 땅』, 『상실의 풍경』, 『어떤 솔거의 죽음』 이 있었으며,그는 황홀한 감옥에 살아가면서, 취재에 근거한 독자적인 문학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처럼 그가 보여준 여러 발자취는 대한민국의 민족정신과 상호 엮어나갈 수 있었으며, 박경리의 『토지 』에 비견될 정도였다. 이제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아흔을 마라보는 나이에도 글을 쓰고 있으며, 죽을 때까지 그 뜻을 꺽지 않고 있었다. 컴퓨터가 아닌 검정 네임펜으로 글을 쓰는 그의 고집스러움, 그리고 그는 여전히 글에 대한 갈망이 숨어 있으며, 자신이 이 세상에 남겨놓을 변화의 씨앗을 결코 잊지 않았다. 책 제목 하나하나에 함축적인 의미를 담아내고 있어서 그가 보여준 문학세계는 여전히 유효하며, 우리 앞에 놓여진 문제와 사회적 가치의 본질에 대해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그가 보여준 문학 세계가 앞으로 다음 세대가 엮어나가야 하는 소설의 가치에 대해서, 소설의 정수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으며, 죽을 각오로 글을 쓴다는 것이 결코 허투루 드리지 않았다.